여행 그 목표는 아름다운 삶

아직 끝나지 않았다.

by 손봉기

여행사를 창업하고 처음 여행상품을 만들고 상품 이름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대학시절 후배가 내 이름의 영문 이니셜이 좋다며 기회가 되면 꼭 사용하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래서 붙여진 상품 이름이 SBK이다.


시간이 지나 회사가 성장하면서 초창기 내가 지은 상품 이름과 여행사 이름이 촌스럽고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전략기획부에 새로운 이름을 요청했다. 몇 달의 고심 끝에 돌아온 대답은 그대로 가자는 것이었다. 다만 디자인만 바꾸겠다고 했다.


SBK 상품으로 다녀온 여행자가 지난 20년간 700팀, 1만 명이 넘었다. 그동안 상품을 인솔하면서 가장 아찔한 순간은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공항으로 이동하는 중에 일어났다.


파리 호텔에서 공항을 가기 위해 서둘러 북역으로 가서 공항행 열차를 탔는데 열차 고장으로 중간에 멈추었다. 곧 수리가 가능하니 기다리라고 했지만 1시간이 지나도 기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손님들과 의논 끝에 택시를 타러 나서려는 순간 열차가 움직여 겨우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공항에 도착했다. 당시에 1분은 하루같이 길게 느껴졌다. 이러한 상황은 그 후 뮌헨과 런던에서 반복되었다.


가장 최악은 프라하에서였다.


당시 독일 항공을 이용해 귀국을 하는데 프라하에서 뮌헨을 경유하여 인천으로 와야 했다. 그런데 프라하에서 뮌헨 가는 비행기가 아침 8시와 10시 두 편이 있었다. 우리는 늘 10시 비행기를 이용해 8시 비행기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10시 출발시간에 맞추어 8시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그때서야 우리가 탑승할 비행기가 8시 비행기였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인솔자는 물론 두 팀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50명의 모든 고객이 항공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 결과 바로 눈 앞에서 비행기를 놓쳤다. 우리는 인천으로 가는 모든 비행기를 알아보고 요금에 상관없이 되는대로 고객을 인천으로 보냈다. 그래도 절반 이상 고객이 남았다. 프라하 시내로 돌아와 호텔에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 날 비행기 편으로 고객을 인천으로 보냈다. 하지만 몇 분은 항공권이 없어 출발하지 못하였고 결국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모두 귀국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해 여름 성수기에 벌었던 수익 전체를 그 순간 실수로 인하여 모두 날렸다.


이후 여행은 계속되었으며 나는 그 속에서 무수히 많은 분들을 만났다.


고흐 미술관 앞에서 갑자기 쓰러져 응급처치 후 살아나신 아버님이 처음 하신 말씀이 아들 이야기였다. 사별한 부인 대신에 맞이한 아내와 아들의 관계가 나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 그분의 아들과 함께 여행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 번은 장애가 있는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 때문에 인솔을 하면서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고 시내버스만 타고 다녔다. 그래서 일정이 많이 늘어졌지만 한 마디 불평도 하시지 않고 오히려 돌아가면서 그 자녀의 손을 잡아주었던 고마운 여행자분들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또한 젊은 시절 여행을 왔다가 결혼을 하여 배우자와 다시 오신 분들이 있는가 하면 여행 중 사귀면서 결혼한 커플만 10쌍이 넘어 기쁜 마음으로 축의금과 화환을 보냈다. 가장 감사한 고객은 우리 회사의 상품을 매년 하나씩 이용하시면서 모든 상품을 이용한 분들이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년 내내 우리 회사 홈피를 들여다보신다고 한다.


지난 20년간 인솔하면서 수많은 분들과의 관계와 추억이 나의 보이지 않는 재산이 되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10년이 넘었는데 지금도 연락을 주시고 만나는 분들도 있다. 이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나처럼 고객과 함께 여행을 하며 마음으로 인솔을 하였던 10분의 인솔자와 사무실에서 상담을 비롯하여 모든 업무를 지원한 회사 구성원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코로나로 이 모든 분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했다. 대신 긴 휴식이 주어진 나는 지나온 삶을 글로 정리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여행을 통하여 사람들의 삶을 아름답게 한다는 회사의 목적에 한참이나 벗어난 삶을 살아왔다.


처음에는 이 목적에 부합하려 무척이나 노력했지만 어느 날부터 구성원이 많아지고 그분들과 함께 가야 하는 책임과 부담감이 늘어가면서 매출과 성장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두 가지 모두 잃어버렸다.


하지만 20년 넘게 회사를 유지하며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특히 자식들에게 아버지가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여행사를 만들고 지켜왔다는 보람도 느낀다.


코로나가 하루빨리 잠식되어 코로나로 고통받는 모든 분들이 활짝 웃으며 다시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우리 회사 역시 영업을 재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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