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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Sep 20. 2020

송네 피오르드

무시무시한 아름다움.

오슬로 시내를 여행했다면 노르웨이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피오르드를 감상할 시간이다. 가장 많은 여행자가 방문하는 송네 피오르드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깊은 피오르드를 보여준다. 이곳은 날씨가 맑을 때도 좋지만 비가 약간 내리는 날씨에 도 좋다. 궂은 날씨에는 원시시대의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피오르드는 빙하 시대 빙하의 압력으로 깎여진 U자 협곡으로 내륙의 중간을 칼로 찢어 놓은 것처럼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차 마치 넓은 강이나 호수처럼 보인다. 빙하가 깎아낸 피오르드의 수심은 수백 미터에 달하며 인근 바다보다 더 깊은 곳도 있다. 병풍처럼 늘어선 절벽은 천 미터를 넘으며 그 사이로 쏟아져 내려오는 폭포들은 장엄한 장면을 연출한다.


오슬로에서 송네 피오르드를 감상하기 위해서 뮈르달행 기차를 타야 한다. 4시간 후 도착한 뮈르달 역은 산 위에 있는 곳으로 마치 화성에 온 듯이 식물은 보이지 않고 기괴한 암석들과 바위들로 싸여 있다.


여름이지만 뮈르달 역이 있는 산 정상은 불어오는 바람으로 제법 쌀쌀하다. 뮈르달을 출발한 기차는 얼마 후 93미터 높이의 키요스 폭포가 나타나면 잠시 정차한다. 웅장한 폭포를 감상하기 위해서이다.



승객들은 기차에서 내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으면 폭포 밑으로 한 여인이 나타난다. 그녀는 손짓으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비현실적인 연출이지만 여인을 따라 폭포를 향해 가면 그곳에 싱그러운 세상이 숨어 있을 것 같다.


뮈르달에서 플롬까지는 20km에 불과하지만, 해발 표고 차가 860m에 달해 기차는 거의 수직으로 내려간다. 기차가 180도 회전해 절벽 아래에 놓이면 여행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하는 철로 중 하나이다.



플롬은 인구 500명에 불과한 산속 작은 마을이지만 피오르드 관광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로 연간 방문객이 50만 명을 넘는다. 많은 여행자들은 아담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다운 이 마을에서 하루를 보낸다.



시간이 없는 여행자라도 여기서 한두 시간의 하이킹을 즐긴다. 산 위를 오르거나 호수가를 걸으며 북유럽 산골마을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통영처럼 항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플롬에서 크루즈를 타면 본격적인 피오르드 관광이 시작된다.



산과 하늘 그리고 구름을 거울처럼 반사하는 물살을 가르며 크루즈가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나가면 유람선 뒤로 플롬은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었다가 점차 사라져 간다. 마을은 보이지 않고 유람선이 협곡의 구비를 돌아가자 피오르드의 장대한 자태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협곡의 깊이와 바다 호수의 고요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피오르드의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시작되었다. 유람선에 탄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은 넋을 빼앗긴 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데 여념이 없다.



잉크 색 같은 물살을 가르며 놀고 있는 바다표범들의 서식지를 지나 협곡에서 쏟아지는 거대한 폭포 앞에 도착하면 배를 잠시 정차한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마시기 위해서다. 대자연의 물을 마시는 여행자의 얼굴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듯 연신 상글벙글하다.



자연의 종합 선물 세트라 할 만한 피오르드 한복판에 이르자 모든 여행자들이 말이 없다. 간간히 사진을 찍는 사람들 외에 모두 깊은 사색에 잠겨 있다. 무아지경이다.


피오르드 감상을 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크루즈 내에 있는 매점에서 누구나 찾게 되는 음식이 있다.



우리 입맛에 맞는 <미스터 리> 컵 라면이다. 이 라면을 만든 사람은 한국인 이철호 회장이다. 그는 6.25 전쟁 때 입은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 1954년 17세의 나이에 노르웨이로 오게 되었다. 40여 번의 수술 끝에 건강을 되찾은 그는 생계를 위해 구두닦이와 호텔 벨보이 그리고 요리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리고 52세의 늦은 나이에 한국식 라면사업을 시작하여 무려 20년 이상 노르웨이 라면 시장의 80% 내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이민자 최초로 자랑스러운 노르웨이인 상을 받기도 했으며 노르웨이 초등학교와 고교 교과서에 그의 이야기가 실렸다.



고요와 평화로움을 맛보는 2시간 동안의 피오르드 여행을 끝내고 나면 유람선은 구드방겐에 도착한다. 협곡에 자리 잡은 구드방겐은 호수와 숲이 하나로 된 수정같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예부터 피오르드 주위는 자연조건이 험하지만 농사를 짓거나 목축 또는 어업을 할 수 있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 많이 생겨 지금까지 내려온다. 이 곳에 이르면 여기서 여행을 끝내고 그냥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크루즈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계곡과 산허리로 이어진 험준한 계곡을 올라 1시간 정도 달리면 보스에 도착한다. 여기서 베르겐행 기차를 타면 송네 피오르드를 감상하기 위한 대장정은 끝이 난다.



이동하는 버스나 기차의 창가를 통해 들어오는 피오르드 주변 마을의 숲과 호수 역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을 이룬다. 하지만 피곤한 몸으로 저절로 눈이 감긴다. 마치 꿈속에서 노르웨이 숲을 거닐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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