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이자 이탈리아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 베로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여름밤의 오페라는 한낮의 태양보다도 더 뜨겁게 여행자의 마음을 불태운다. 오페라가 벌어지는 원형 경기장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적 현장으로 달려간 듯 생동감을 자아내고 무대 위 가수들은 바로 앞에서 속삭이는 듯 생생하다.
베로나의 중앙역에서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이 있는 브라광장까지는 2km정도이다. 천천히 걸어서 광장에 도착하여 카펠로 거리를 따라 10분정도 걸으면 줄리엣의 집이 나온다.
13세기에 지어진 집의 아치형 입구를 지나면 담벼락에 사랑의 내용을 담은 낙서가 빽빽하다. 조그만 안마당에는 1972년에 건립한 줄리엣의 동상이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그 앞에 줄을 서 있다.
속설에 의하면 줄리엣의 동상 오른쪽 가슴에 손을 얹고 사랑을 기원하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줄리엣의 오른쪽 가슴은 유난히 반짝인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로미오는 담을 넘어 현재의 안마당에서 발코니에 나타난 줄리엣과 밤새도록 사랑을 속삭인다.
저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빛은 무엇이지 ? 그것은 동쪽이니 줄리엣은 태양이다. 밝은 태양아 떠올라서 시샘하는 달을 죽이기를. 달님께 시종하는 처녀인 당신이 달 자신보다 훨씬 예쁘다 해서 달님은 이미 슬픔에 병들어 창백해 있다.
제 얼굴이 이렇게 한 밤의 가면으로 가려져 있으니 다행이예요. 그렇지 않다면 이 볼은 수줍은 처녀의 마음으로 빨개져 있을 거예요. 오늘 밤 당신이 제 말을 엿들었으니까요. 제 체면도 차리고 싶고 입 밖에 낸 말을 취소도 하고 싶어요. 하지만 체면이여 안녕! 당신은 저를 사랑하나요? 그렇다면 대답해보세요. 그 말을 믿어요. 하지만 아무리 맹세를 하더라도 깨뜨릴지 몰라요. 애인들의 거짓말은 조우브 신도 웃고 마신다잖아요. 아, 그리운 로미오. 사랑한다면 솔직히 그렇다고 말씀하세요.
집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가지 그림과 집기가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비안카의 <죽음으로 결합한 두 연인>의 그림이 눈에 뜬다.
베로나의 몬터규가와 캐플릿가는 일찍부터 서로 반목, 질시하는 사이였다. 일요일 저녁 줄리엣이 그녀의 집인 캐풀릿가의 무도회에서 로미오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 다음 날 길거리에서 몬터규와 캐풀릿의 양가 사이에 또 다시 싸움이 붙었다. 로미오는 줄리엣을 생각해 싸움을 말리려 했지만 줄리엣의 외사촌 티볼트가 로미오의 친구 머큐시오를 죽이자 그만 티볼트를 죽이고 만다. 그 때문에 영주로부터 추방형을 받는다.
그날 밤 로미오와 줄리엣은 로런스 신부의 도움으로 비밀 결혼식을 올리고 그녀의 방에서 몰래 만나 눈물속에서 첫날밤을 치른다. 다음날 추방 명령을 받은 로미오는 이웃 도시 만투바로 떠나고, 줄리엣은 목요일에 패리스 백작과 결혼하라는 부친의 명령을 받는다. 다급해진 줄리엣은 로런스 신부와 의논해 42시간 죽음의 상태에 빠지는 약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납골당에 안치되면 신부의 연락을 받은 로미오가 구하러 와서 둘이 함께 만투바로 도망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결혼식이 수요일로 앞당겨지면서 줄리엣은 화요일 밤에 약을 삼켰다. 이후 신부의 편지가 로미오에게 제때 전달되지 못했고,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만 받은 로미오는 절망한 채 납골당으로 달려와 그녀 옆에서 음독자살했다. 한 발 늦게 깨어난 줄리엣은 로미오의 단검으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 지 5일째인 목요일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단 5일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유명한 이유는 세상에 수많은 증오의 벽들이 있지만 사랑으로 없어지고 조건을 따지는 현실적인 사랑보다 순수한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때문이다. 현재도 각국의 연인들을 비롯하여 연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인 베로나를 찾아온다.
줄리엣의 집에서 동쪽으로 300미터가 채 못 되는 곳에 로미오의 집이 있지만 건물 외벽이 많이 허물어져 관광객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단지 집 우측 하얀 명판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1막 1장에 나오는 다음의 대사를 적어 놓았다.
로미오는 어디 있지?
너 그 애를 보았니?
줄리엣의 집에서 남쪽으로 1.2km 떨어진 샌프란체스코 알 코르소 옛 수도원으로 가면 줄리엣의 무덤이 있다. 지하 무덤으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5막 3장에 나오는 구절을 새겨 놓았다.
여기 줄리엣이 누워있다.
그 아름다움이 묘실의 빛의 향연으로 덮고 있다.
무덤에는 줄리엣의 집에서 보았던 <죽음으로 결합한 두 연인>의 그림과 석관이 나온다. 다시 올라와 수도원 정원으로 가면 세익스피어의 대리석상이 서 있고 그 옆에 있는 건물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로렌스 신부 앞에서 결혼한 성당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체는 성당의 담 밖에 묻혀 있다가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오면서 수도원에 안치되었으며 1937년에 공개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었던 베로나의 중심 광장에는 고대로마 원형 경기장인 아레나가 있다. 아레나는 프랑스어로 모래를 의미하고 이것은 격투 혹은 연극 등이 열리는 곳으로 바닥에 모래를 깔아 놓은 것에서 유래한다.
1세기에 지어진 아레나는 길이 152미터, 폭 128미터, 높이 30미터의 경기장으로 원래는 도시를 방위하고 있던 벽의 외관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시가지의 이동에 따라 현재는 베로나 시가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이 곳은 전 세계 오페라 팬들에게 꿈에 그리던 <순례지>로 변한다. 이곳에서 매년 6월부터 8월까지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의 공주인 아이다는 이집트에 끌려와 노예가 된다. 한 눈에 아이다에 반한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는 그녀를 향한 사랑과 파라오를 향한 충성 사이에서 갈등한다. 불행히도 라다메스는 파라오의 딸인 암네리스의 사랑도 받게된다. 라다메스는 결국 전쟁에 패하고 이집트에 몰래 숨어있던 아이다의 아버지인 에티오피아의 왕을 피신시키고 반역죄로 체포된다. 암네리스는 그에게 자신의 한 일을 부인하라고 권하지만 단호히 거절하고 아이다와의 사랑과 죽음을 선택한다.
공연 시작 전 2만 명의 관객들이 일제히 촛불을 밝혀 오페라의 지휘자와 연주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촛불 의식이 끝나면 공연은 시작된다. 맞은편 관객의 숨소리도 들릴 듯 음향의 효과가 뛰어난 원형극장위로 라다메스의 유명한 아리아 <청아한 아이다>가 울려 퍼지면 그 생생한 소리에 관객들은 숨을 죽인다.
아레나의 감동은 음향과 더불어 무대장치다. 서기 250년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을 무대로 만든 <아이다>는 중앙무대뿐만 아니라 원형극장을 형성하고 있는 돌 계단까지 세트로 사용한다. 오페라가 진행되는 내내 무대 위 조명의 수 많은 빛깔과 <이기고 돌아오라> <개선 행진곡> 등 웅장한 오페라의 음악과 노래 소리 그리고 아레나가 주는 고대의 향기가 어우러져 여행자를 어느새 고대 나일강변의 이집트 신전으로 데려간다.
특히 금관악기가 울려 퍼지는 2막 중간, 거대한 피라미드 무대 위로 찬란한 의상으로 치장한 300명의 무희가 올라와 춤을 추는 <대행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이리 저리 극속으로 빠져들어 현실이 저만치 떨어져 있음을 알게 되면 어느새 공연은 막바지에 이른다. 조바심이 난 여행자는 아쉬운 시간을 세지만 오페라는 절정을 넘어 끝을 향해 달린다. 오직 어둠으로 꽉 찬 무대 위로 무심한 별들이 반짝거리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다>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아이다와 라디메스의 2중창 무대이다. 무대 위 쓰러져 있는 두 여인의 숨소리가 점점 가빠지면서 노래가 하나로 되어간다. 지상에서의 삶의 고통을 털어버리고 구원을 알리는 그들의 목소리는 애절하지만 아름답다. 관객들은 이들의 노래에 빠져 그들의 사랑이 영원한 사랑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본다.
4막으로 구성된 <아이다>는 두 번의 쉬는 시간을 포함해 세 시간 넘게 이어지면서 자정을 훨씬 넘긴 12시 40분에 막이 내린다. 공연이 끝난 후 경기장 바깥의 모습은 장관이다. 고풍스런 건물들이 황금빛 조명 아래 빛나고 브라 광장에는 많은 레스토랑들이 불빛을 밝히며 새벽 2시가 넘도록 오페라를 본 사람들 수다를 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