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의 배신

by 손봉기

그냥 잠이 쏟아진다.


죽음의 그림자가 그의 얼굴에 어른거린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가능한 깊은 잠에 빠져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는 꿈속으로 어둠 속으로 끝없이 떨어진다.


며칠을 잠들었을까?


잠이 깨자 함께한 동지들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같은 신념으로 떠들며 일하였던 동지들이 차례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도 이제 인생을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하나님의 주신 생명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은인에 대한 두 번의 배신은 그에게 살고자 하는 희망을 빼앗았다. 더욱이 그가 어릴 적부터 신념화해 온 공화국의 몰락이라는 현실은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였다.



그는 일어나서 어두운 지하실을 걸었다. 그리고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위안은 지하실 흰 벽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하얀 벽을 만지면서 하나님의 형상과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는 일은 그에게 힘든 시간을 멈추게 하는 속죄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또다시 며칠이 지나자 점점 의식이 사라지고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는 어서 하늘로 가서 그의 죄를 고백하고 영원히 지옥을 헤매기를 갈망하면서 눈을 감았다. 여섯 살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1527년 로마는 기독교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사 코디 로마>라고 불리는 로마 함락 사건이 발생한다.


클레멘스 7세가 신성 로마제국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프랑스와 동맹을 맺자 이에 화가 난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이탈리아로 침입해 로마를 짓밟고 능욕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로마가 침략당하자 피렌체에서는 교황파인 메디치 군주제로부터 다시 공화정으로 복귀하려는 시민들의 반란이 성공한다. 정권을 잡은 공화정 세력들은 미켈란젤로에게 공화국의 국방위원으로 일해 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선뜻 대답하기가 두려웠다. 어린 시절부터 그를 키워준 메디치 가문을 두 번째 배신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부터 이어지는 공화정에 대한 신념은 그를 국방위원 직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그는 국방위원으로 외부 적들의 침입을 막아낼 피렌체 외곽의 튼튼한 성곽을 설계하고 건축하였다.


하지만 신념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후 신성 로마 제국과 로마 교황은 화해를 하고 교황의 편을 들고 있던 프랑스가 피렌체로 쳐들어와 일방적인 승리로 메디치가가 피렌체에 다시 복귀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숨기에 바빴다. 두 번의 배신으로 이제 살길은 묘연했다. 그는 그가 작업하던 메디치 성당의 지하실로 숨어 들어갔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곳이 그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그의 얼굴에 어른거렸다.


그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잠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희미한 어머니의 얼굴과 숨결을 만지며 뚜벅뚜벅 죽음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얼마 후 메디치 가문이 배신자들을 처단하고 피렌체를 장악하자 클레멘스 7세는 미켈란젤로를 찾았다.


두 번의 배신으로 미켈란젤로가 미웠지만 로마 함락 사건과 종교개혁으로 땅에 떨어진 가톨릭의 위신을 세우는데 그가 필요했다. 그는 시스틴 성당의 제단 뒤의 벽에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여 종교개혁에 대한 경고와 분노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교황의 부름으로 로마로 돌아온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천창화를 마주했다. 벌써 23년이 지나 있었다. 몸과 정신은 황폐해 있었다. 자신이 믿는 공화국의 신념은 과거의 일이 되었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했던 그에게 종교개혁의 혼란은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생각했다.


그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인간과 예술에 대한 심판의 마음으로 <최후의 심판>을 완성시켰다.



최후의 심판


모든 인간상의 포즈나 행동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표현되어 있는 작품 중앙에 예수가 있다. 그리고 예수 주위에 그를 따랐던 순교자와 선지자들이 있다. 예수 오른쪽에는 천국의 열쇠를 든 베드로가 보이고, 왼쪽에는 가슴 아픈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마리아가 보인다. 또한 십자가를 든 순교자 안드레아와 빨간 망토의 사도 요한도 보인다. 그들 아래로 화형을 당한 로렌스가 그는 자신이 화형 당했던 석 쇠를 들고 있다.


예수의 발아래에는 살이 벗겨진 채 순교를 당한 성 바르톨로메오가 영혼과 육체가 빠져나간 자신의 껍데기와 칼을 쥐고 있다. 미켈란젤로 자신의 얼굴을 그의 얼굴에 그려 넣으며 당시 자신이 느꼈던 당시의 심정을 담았다.


예수 아래로 요한계시록에 언급한 일곱 천사가 심판의 나팔을 불며 죽은 자들을 부르고 있다.


천사가 들고 있는 지옥에 갈 명단이 천국의 명단보다 훨씬 두껍게 그려져 있다. 또한 제일 왼쪽 아래에는 무덤에서 일어난 수많은 죽은 자들이 천사의 도움을 받아 하늘로 오르고 있다. 반대편 왼쪽에서는 보트에 탄 나룻배 사공이 죄인들을 후려치고 있다. 그들은 당나귀 귀를 하고 뱀한테 성기를 물린 미노스한테 형벌을 받고 불지옥으로 가야 한다.




미켈란젤로는 미노스의 얼굴에 당시 교황의 의식 담당관인 비아지오를 그려 넣었다. 그 이유는 작품 속에 완벽하게 표현된 나체 인물에 옷을 입히라고 자꾸 압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머리 위 왼쪽과 오른쪽에는 한 무리들의 천사가 그가 못 박혔던 십자가와 기둥, 그리고 가시 면류관을 들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회오리치는 구도로 최후의 심판의 과정을 전율하듯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최후의 심판>이 완성되자 당시 교황이었던 바오로 3세는 무릎을 꿇고 회개할 정도로 명작임을 인정하며 미켈란젤로를 베드로 대성당 개축사업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후 베드로 성당의 원형 지붕 돔을 디자인한 미켈란젤로는 노년에 들어 시력이 약해져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새로운 피에타 작업에 매달리다가 사망했다.



사후 미켈란젤로는 로마에 묻혔다가 고향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대성당으로 이장되었다. 당시 미켈란젤로의 유해를 로마에서 피렌체로 빼돌리기 위해 피렌체 측에서는 군인들까지 보냈다고 한다. 군대를 움직인 예술가의 장례는 구름처럼 몰려든 피렌체 시민들에 의해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미켈란젤로의 무덤에 새겨진 라틴어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만이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깨우지 말고 목소리를 낮추어 주시오.


2번의 배신과 공화정이라는 자신의 신념 사이에 미켈란젤로는 평생 괴로워했다. 또한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종교개혁의 혼란에 분노하면서도 방황하며 영욕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이 모든 상황에도 인간이 뛰어넘을 수 없는 이상과 예술을 추구하였다.


오늘날 그가 위대한 천재로 인정받는 것은 고통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예술적 열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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