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틴천장화
서명의 방을 나와 쏟아지는 관람객들과 함께 천천히 걷다 보면 시스틴 예배당이 나온다. 이 곳은 오늘날 교황님이 선종하시면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이 곳에 모여서 묵상과 투표로 다음 교황님을 선출하는 곳이다.
이 성당이 유명해진 것은 이 곳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예배당 안에 들어서면 천장에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파스텔 톤의 우람한 인간들의 모습이 여행자를 압도한다.
시스틴 예배당의 천장화는 중앙에 9개의 사각형과 양쪽 8개의 삼각형 그리고 4개의 모서리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에 있는 9개 사각형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구약성서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8개의 삼각형에는 그리스도 선조들의 모습을 담았다. 또한 8개의 삼각형 사이에는 구약의 예언자와 이방인의 무녀가 그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4개의 모서리에는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구원의 장면을 담고 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일주일 동안 빛과 어둠, 해와 달, 바다와 육지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였다. 그리고 원죄를 지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고 대홍수를 일으켜 벌하지만 노아 만이 방주를 타고 살아남는다.
천장화의 중앙의 9개 사각형에는 이 과정을 차례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중 하이라이트는 인간의 창조이다.
다섯째 되는 날에 동물을 만든 하나님은 자신을 닮은 인간인 아담을 만들어 동물들이 인간을 따르도록 하였다. 작품을 살펴보면 아담이 생명의 기운을 받기 위해 손을 뻗어 하나님에게 향하고 있으며 천사들로 둘러싸인 하나님은 손가락으로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아담은 이제 막 깨어난 듯 연약해 보이고 하나님의 모습은 역동적이며 절대적이다.
미켈란젤로는 하나님의 얼굴을 당시 교황이었던 율리우스 2세의 모습으로 그렸다. 하나님이 최초로 인간을 창조하고 그의 육체 속에 영혼을 불어넣으려는 순간, 막 닿을 것 같은 아담과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표현한 것은 현대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이다.
미켈란젤로는 1475년 3월 6일 피렌체 근교 카프레세 마을에서 피렌체 공화국 하급관리인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6살에 어머니를 잃은 미켈란젤로는 채석장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덕에 어릴 때부터 조각에 관심이 많았다.
13세에 기를란다요의 제자로 들어간 그는 그림을 배우다가 당시 최고의 권력자이자 예술후원가인 로렌초 데 메디치의 눈에 들어 메디치 궁전으로 들어가 최고의 예술 수업을 받았다.
하루는 미켈란젤로가 숲의 신인 판을 조각하고 있는데 로렌초가 지나가며 판은 나이가 들어 저렇게 이가 성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자 바로 이빨에 충치를 조각해서 로렌초로부터 나의 자식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그 후 미켈란젤로는 로렌초와 그의 아들들과 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총애를 받았으며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들로부터 인문학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행복은 계속되지 않았다.
로렌초가 죽고 다음 대를 이은 그의 큰 아들 피에로가 자신을 싫어하자 미켈란젤로는 피렌체 궁전을 나와 공방을 차리지만 별 인기를 끌지 못한다. 이때 미켈란젤로가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로마에서는 고대 로마시대의 조각품이 큰 인기를 끌며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이를 사업에 이용하려는 미켈란젤로의 친구는 그에게 바쿠스 조각상을 만들어 땅속에 묻었다가 로마로 가져가 팔 것을 제안했다.
실직한 아버지와 철이 없는 두 동생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미켈란젤로는 이를 승낙하고 조각상을 만들어 친구에게 건넸다. 로마로 간 조각상은 고위 공직자인 리아리오 추기경에게 비싼 값에 팔렸다. 하지만 곧 조각상이 가짜임이 들통나자 미켈란젤로는 로마로 와서 죗값을 치러야만 했다. 하지만 추기경은 로마로 온 미켈란젤로에게 죄를 사면해 주는 대신 베드로 성당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조각품을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렇게 탄생한 조각상이 <피에타>이다.
피에타는 연민 또는 동정을 나타내는 이탈리아 말로 이후 십자가에 내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의 모습을 지칭하는 언어가 되었다.
현재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피에타 상을 보면 예수의 얼굴은 성모 마리아의 왼쪽 팔에 둔 채 예수의 몸을 넓게 벌린 다리와 치마 사이에 넣어 완벽한 삼각형 구도로 만들어져 있다.
예수의 상체와 팔에 보이는 근육으로 예수의 몸은 생동감이 넘치고 예수의 몸을 잡고 있는 마리아의 오른손은 옷자락에 눌러진 채 사실감을 더하고 있다. 예수 아래로 자연스럽게 펼쳐진 치마의 주름과 예수를 받치는 마리아의 왼손은 손금이 보일 정도로 섬세하다.
마리아의 얼굴이 어려 보인다는 사람들의 평가에 미켈란젤로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동안은 자연스럽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피에타가 완성되자 사람들은 당시 24살밖에 안된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밤에 성당에 몰래 들어가 마리아의 가슴띠 부분에 피렌체 출신 미켈란젤로라고 새기고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별을 보고 다음과 이야기했다고 한다.
저렇게 아름다운 별을 만드신 하나님도
어떤 서명도 남기지 않았는데…
나도 앞으로는 내 작품에 어떤 서명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첫 번째 배신
피렌체로 돌아온 미켈란젤로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피렌체의 정치적 상황은 어지러웠다. 프랑스의 침략으로 로렌초 메디치의 아들인 피에로 메디치는 로마로 도망가고 없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침략을 예견한 신부 사보나롤라가 정권을 잡았지만 금욕 정치를 펼치다가 시민들에 의해 화형을 당한 상태였다.
이제 정권은 공화파인 소데리니와 마키아벨리가 잡았다. 그들은 당시 누구도 손댈 수 없었던 5미터 대리석에 메디치가의 독재를 몰아내고 공화정의 정신을 보여주기 위한 <다비드>상을 만들어 줄 것을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하였다. 아버지 때부터 공화주의자였던 미켈란젤로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메디치가에 첫 번째 배신을 한다.
1501년부터 시작해 3년에 걸쳐 완성한 <다비드>는 성경 속 인물로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로 무찌른 소년을 말한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다비드를 청년의 모습으로 완성했다. 건장한 청년으로 태어난 다비드는 부릅뜬 두 눈으로 로마로 도망간 피에로 데 메디치를 노려보고 있었다. 또한 근육들이 튀어나올 듯한 팔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으며 핏줄이 선 손은 다시는 독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돌을 움켜쥐고 있다.
1503년 다비드 상이 완성되자 피렌체는 천재들의 대결로 시끄러웠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베키오 궁전의 500인 대회장의 양 쪽 벽면을 장식하는 벽화작업을 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천재가 작업을 마치기도 전에 각자 외부적인 요청에 의해 밀라노와 로마로 향했기 때문에 이 대결은 맥없이 무산되었다.
미켈란젤로와 율리우스 2세
교황의 요청으로 로마로 간 미켈란젤로는 그의 거대한 묘지 건축을 의뢰받았다. 미켈란젤로는 40개의 조각에 필요한 대리석을 구하기 위해 대리석의 본고장인 카라라로 갔다. 카라라에서 대리석을 구입하고 다시 로마로 돌아오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1505년 겨울 로마로 돌아온 미켈란젤로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교황을 만날 수가 없었다.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신축공사와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재정적 여유가 없어 미켈란젤로를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0살의 미켈란젤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만 무능한 아버지와 철없는 동생들 때문에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이후 어렵게 교황을 알현한 미켈란젤로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교황은 영묘 작업을 포기하고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에 12제자를 그리라는 지시를 내린다. 조각가인 그에게 천장화를 그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는 미켈란젤로를 시기한 당시 바티칸 공사의 총책임자인 브라만테의 계략이라고 미켈란젤로는 생각했다.
브라만테는 부족한 바티칸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 영묘 작업이 중단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영묘 작업의 책임자인 미켈란젤로에게 천장화를 그려줄 것을 제안하였다 만약 미켈란젤로가 천장화 작업을 포기하면 그의 동향 후배인 라파엘로에게 그 작업을 대신할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라파엘로는 시스티나 예배당 위에 있는 교황의 집무실을 꾸미고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에게 딸린 식솔과 자존심에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이 얼마나 방대한 것인지 당시에는 실감하지 못했다.
천장화 작업에 들어간 미켈란젤로는 작업을 어느 정도 해 나가자 이 일이 자신의 소명도 자신의 전공도 아님을 깨닫고 교황을 찾아가 다시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교황은 무례하다며 미켈란젤로를 마구 때렸다. 비참한 마음을 먹은 미켈란젤로는 카라라의 산속으로 도망쳤다.
교황의 눈을 피해 산으로 달아난 미켈란젤로는 동굴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새벽에 잠이 깨어 태양이 떠오르는 장면을 보고 감동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그려야 한다는 소명을 받았다. 그리고 볼로냐에서 전쟁을 하고 있는 교황에게 돌아가서 용서를 구하고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한다. 교황은 미켈란젤로의 계획을 승인하고 작업을 지시한다.
사명감이 붙은 미켈란젤로는 의욕적으로 피렌체의 공방 시절 함께 했던 몇몇 예술가들을 불러 작업을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는 물감을 만드는 조수 두 명 만 남겨두고 모두 쫓아낸 후 혼자서 작업을 하였다. 길이 41미터, 폭 13미터, 높이 2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을 혼자서 창조했다. 지상 5층에서 7층 정도 되는 높이의 공간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60대의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성격은 무척 괄괄했다. 아들 나이의 미켈란젤로에게 종종 작품이 언제 완성되느냐고 재촉했고 그때마다 미켈란젤로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콴도 포트로>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말로 언젠가 되겠지요라는 뜻이다.
작품이 반쯤 완성되었을 때 조급증이 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브라만테를 동행하고 천장화를 확인하러 갔다.
작품을 본 브라만테는 놀랐다. 내심 졸작을 그려 교황에게 질책을 받으리라고 생각하였는데 천장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걸작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급해진 브라만테는 교황에게 나머지 부분은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했지만 교황은 거절했다. 오래전부터 교황은 브라만테가 벌였던 비리와 미켈란젤로에 대한 부조리한 처사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황은 미켈란젤로를 더욱 신임하고 있었다.
작업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천장화가 완성되었다. 당시 천장화를 본 사람들은 모두 경탄과 감동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구약에 나오는 천지창조부터 노아의 방주까지의 장면이 화려한 색으로 펼쳐져 있었고 300명이 넘는 실물 크기보다 큰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인물은 실물보다 3.5배나 더 크게 표현하였다.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장식은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미켈란젤로는 다음과 같이 간단한 편지를 한 장 부친 뒤 예배당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아버님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예술의 한계를 뛰어넘었던 천장화를 완성하고 피렌체 돌아와 머물던 미켈란젤로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어린 시절 미켈란젤로와 같이 놀았던 로렌초 데 메디치의 둘째 아들이 교황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레오 10세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사치가 심하였으며 우리가 잘 아는 면죄부를 팔아 종교개혁을 유발한 교황이다. 레오 10세는 최고의 예술가로 인정받는 미켈란젤로에게 메디치 가문의 성당인 산 로렌초 성당의 정문 조각을 맡긴다.
이후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을 구입하여 14년간 이 일에 매달리지만 레오 10세가 사망하자 공사가 중단된다.
그다음 레오 10세의 사촌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클레멘스 7세로 교황에 오르자 미켈란젤로에게 산 로렌초 성당에 있는 메디치가의 영묘와 도서관 작업을 맡긴다. 하지만 당시 부족한 재원으로 사업이 자주 중단되자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고의적으로 작업을 지연시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