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박물관

아테네 학당

by 손봉기

로마는 천년 간 로마 제국의 수도였으며 이후 중세시대에는 교황령의 중심이었으며 187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자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었다.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심도시로 살아왔던 로마는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 그리고 판테온 등의 고대 유물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바티칸은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난 후 교황령의 중심이었다. 이후 1929년 교황 비오 11세가 무솔리니와 라테라노 협약에 의해서 바티칸시국은 독립국가로 인정받았다. 라테라노 협약에 의해 교황은 교황령을 독립국가로 보장받았고 무솔리니는 교황령을 제외한 이탈리아 국가의 영토를 확보하면서 로마제국을 부활시킬 발판을 확보했다.


하지만 바티칸 박물관의 역사는 이보다 훨씬 앞서 있다.


1506년 농부가 로마의 에스킬리노 언덕에서 포도밭을 파다가 우연히 <라오콘 상>을 발견하였다. 율리우스 2세는 이 소식을 접하고 조각상을 구입하고 자신의 거처에 딸린 벨베데레 정원에 전시하였다.


당시 벨베데레 정원에는 아폴로 조각상이 있었는데 라오콘 조각상이 함께 전시되자 고대 그리스 조각의 열풍이 불면서 당대인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받았다.


바티칸 박물관 역사의 시작은 역설적으로 이렇게 이교도의 조각상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시 바티칸은 모든 우주에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미친다는 것에 입각해 고대에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 조각을 전시하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금도 바티칸 박물관 안에 있는 벨베데레 정원에서 이 두 조각상을 감상할 수 있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다.


로마에 온 여행객들은 이 두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따가운 여름 햇빛을 감수하며 몇 시간이고 박물관 앞에서 기다린다. 최근에는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이 가능하여 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예약을 하지 않은 여행자는 여전히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바티칸 박물관을 입장하면 미켈란젤로의 두 작품이 있는 시스틴 성당에 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서명의 방>이다.


1509년 성 베드로 대성당의 재건축을 결심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자신의 직무실이자 서재인 <서명의 방>을 장식하기 위해 25살의 패기 넘치는 젊은 라파엘로에게 이 작업을 맡긴다.


라파엘로는 고심 끝에 네 벽에 철학과 신학 그리고 문학과 법학에 관한 테마를 가진 그림으로 장식하였다. 그중 철학을 주제로 한 <아테네 학당>에는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서양 철학자들이 타임머신을 탄 듯 시간에 관계없이 모두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특징인 원근법이 적용된 <아테네 학당>의 배경 건물들은 라파엘로가 상상해서 만들었다. 거대한 규모의 건물 끝에 이성과 태양의 신인 아폴로와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가 조각되어 있다. 아폴로는 계몽과 이성이 지닌 교화의 힘을 상징하며 아테나는 인간의 지식과 예술적 업적을 상징한다.


아폴론 동상 아래 무리 지어 있는 군상들 중 자신의 논점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며 설명하고 있는 소크라테스가 보인다. 카키색 옷을 입고 머리가 벗어진 소크라테스 앞에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모습이 보인다.


<너 자신을 알라>로 유명한 서양 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는 철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이 무르익은 고대 그리스에서 당신이 진짜 아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다. 그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랑과 이상 그리고 행복 중에 남에게 듣거나 책에서 본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고민해서 내린 판단이 있는가를 물었다.


그는 정답보다는 먼저 내 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답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나아진다고 생각하였다.


문답을 통한 무지에 대한 자각과 국가를 덕과 철학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은 당연히 많은 젊은이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기득권과 관습에 빠진 지배층들은 소크라테스를 두려워했다.


그가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자신들의 부와 권리를 빼앗아 갈 것 같아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선동죄로 감옥에 가두었으며 사형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지배층들은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탈출하여 다른 나라로 망명가기를 원했다.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던 감옥을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독약을 마셨다. 그는 자신이 도망을 간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이야기 한 철학들이 모두 거짓으로 판명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진정한 철학자라면 죽음마저 자신의 진실을 위해 바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죽음을 통하여 서양 철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소크라테스 아래로 계단에 턱을 괴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그는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과 겨울이 오듯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고 생각한 철학자인 헤라클리투스이다. 라파엘로는 그의 얼굴을 그가 존경하던 미켈란젤로의 모습으로 그려 놓았다.


그 옆으로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인 채 열심히 책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 사람이 피타고라스이다. 그는 봄과 여름이 가을과 겨울로 변해가지만 그 순서는 불변한다고 주장하였다. 피타고라스의 법칙으로 유명한 그는 모든 것들이 변화하는 속에 변하지 않는 실체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수학적 방법을 이용하였다.


피타고라스 주위에 있는 인물을 살펴보면 칠판을 들고 있는 소년이 그리스의 신들을 부정한 아낙사고라스이며 그 뒤에 흰 터번을 쓰고 이슬람 복장을 한 인물이 아랍의 철학자인 아베로에스이다.



아베로에스는 중세시대에 종교에 종속되어 있던 철학을 독립적 지위에 올려놓는데 공헌하였다. 아베로에스의 옆에서 흰 옷을 입고 우리를 향해 쳐다보고 있는 철학자는 유일한 여성 수학자인 히파티아이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뛰어난 미모와 천재적인 학문 재능으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기독교 광신도들에 의해 화형 당했다.


히파티아 옆으로 노란색 상의에 청색 천을 두른 철학자는 피타고라스의 스승으로 아낙시만드로이다. 그는 제자의 책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저술 내용과 비교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피타고라스의 무리에서 가장 왼쪽 구석으로 가면 기둥에 기대고 있는 제논과 에피쿠르스가 보인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의 말기 스파르타와의 전쟁의 패배로 절망과 혼란에 빠져 있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철학들이다.


그들은 인간의 고통과 불행은 모두 욕망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욕망을 대하는 자세는 달랐다.


청색 모자를 쓴 제논은 스토아 학파를 이끌었던 철학자로 자연법칙에 따라 현재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주장한 반면 포도 덩굴을 쓰고 있는 쾌락주의자인 에피쿠르스는 욕망을 적게 하고 마음의 쾌락을 위해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작품 정중앙에서 오른쪽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 왼손에는 그의 철학을 집대성한 <키마이오스>를 들고 있는 사람이 플라톤이다. 라파엘로는 그의 얼굴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로 묘사하였다.


고대 그리스에는 세상은 고정 불변하다고 해석하는 철학자와 세상은 변한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 두 가지 모두를 포용한 철학자가 플라톤이다.


그는 세계를 변하는 현실과 변하지 않는 이데아로 나누었다. 그리고 현실은 이데아를 반영하는 그림자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데아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가장 진실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플라톤 옆에서 오른 손바닥으로 땅을 향하고 있는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플라톤의 제자이지만 그의 스승과는 다르게 이데아보다는 현실과 경험 속에서 세상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직 눈에 보이는 것과 경험한 것에서 사물의 본질과 진실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그는 인간의 행복을 처음으로 이야기한 철학자로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덕을 실행해야 하며 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절제 그리고 중용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였다.


두 명의 중심인물 아래 계단에 늘어져 있는 철학자는 무소유를 실천한 디오게네스이다. 그는 인간이 진실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동네를 떠도는 개처럼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를 견유학파라고 부른다. 그의 관련된 유명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왔지만 예의를 갖추지 않고 그대로 누워있는 그에게 자신이 두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당신은 선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악한 사람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알렉산더가 선한 사람이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내가 당신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디오게네스의 말에 탄복한 알렉산더는 무엇이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주겠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 주시오.



그의 말을 듣고 한바탕 크게 웃은 알렉산더는 내가 왕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작품 오른쪽에 있는 인물들을 살펴보자. 가장 먼저 중앙에 컴퍼스를 들고 작두를 하고 있는 철학자가 유클리드이다. 기하학을 창시한 그는 인간의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황금비율을 발견하였다.



그는 황금비율을 증명한 수학은 아름답고 그 수학을 풀어낸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심미안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주장하였다. 유클리드 옆으로 지구의를 들고 있는 뒷모습의 인물은 2세기에 활약했던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이다.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그 맞은편에 천구의를 들고 있는 사람이 페르시아의 예언자이자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짜라투스라이다. 비록 지금은 이단으로 낙인이 찍혀 있지만 그에 의해서 현대의 모든 종교가 출발했다. 그들 옆으로 이 작품을 그린 라파엘로가 서명을 하 듯 자신의 얼굴을 그려 놓았다.


그는 자주색 옷과 검은 모자를 쓴 채 우리를 향해 바라보고 있다. 그는 작품에 나오는 인물의 포즈와 얼굴 표정을 연구하기 위해 실물을 보고 수백 점의 드로잉 습작을 그렸다. 그리고 실제 크기의 도안을 제작하여 프레스코로 그릴 벽에 옮겨 작품을 완성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다양한 자세와 표정을 한 철학자들이 쏟아내는 지식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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