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여행

숙명적인 육욕의 쾌락

by 손봉기

베니스의 매력은 베니스 중앙역인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역을 나서는 순간 베니스의 이색적인 풍경이 갑자기 영화 세트장으로 걸어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넘칠 듯 살랑거리는 파란 바다 위로 고풍스러운 파스텔 풍의 집들과 좁은 운하 위로 하얀 티를 입은 곤돌리에가 운행하는 곤돌라가 여행자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베니스는 <계속해서 오라>라는 의미의 도시로 1년에 천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와 도시 전체가 가라앉고 있다. 베니스 당국은 한때 여행자 수를 제한시켰으나 인간의 욕망을 제도로 단념시킬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섬 주위에 기둥을 세워 부력으로 섬을 띄우는 <모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섬을 지키기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118개의 섬들이 400여 개의 다리로 이어진 물의 도시 베니스에는 차가 없다. 모든 대중교통 수단이 배이며 관광객들도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를 이용한다.

역 앞에서 1번 바포레또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베니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인 리알토 다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보는 베니스의 전경이 가장 아름답다.



베니스 특유의 파스텔 톤 집들이 S자 운하를 따라 늘어서 있고 꽃으로 장식한 식당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수상 버스와 택시 그리고 곤돌라가 천천히 자기 길을 간다. 리알토 다리에서 조금 걸어가면 산마르코 광장이 나온다.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장엄한 입구라고 말한 산마르코 광장은 산마르코 성당과 듀칼레 궁전 그리고 코렐 박물관 등 삼면이 화려한 건축으로 장식되어 있고 나머지 한 면이 바다로 열려 있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최절정의 공간미를 자랑한다.



산마르코 광장에는 하얀 대리석의 열주가 늘어서 있고 그 열주 아래 1720년부터 내려오는 플로리안 카페가 있다. <꽃과 같은>이라는 뜻을 지닌 이 카페는 광장의 한편에서 세계사의 고비마다 많은 사상가와 정치인 그리고 시인들이 새 시대를 예견하고 노래한 곳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괴테와 바이런 그리고 토마스 만 등이 있고 현대인물로는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부터 영화배우 멜 깁슨까지 다녀갔다.


18세기 최고의 바람둥이로 불리던 카사노바도 플로리안 카페를 무대로 수많은 여성들과 사랑을 속삭였다.



산마르코 광장의 산마르코 성당은 예수 승천 후 최초로 예수의 복음서를 적은 마르코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지은 성당이다. 853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죽은 마가의 유해가 이슬람 신전 공사로 실종 위기에 처하자 베니스의 상인들은 유해를 몰래 베니스로 옮겨오기 위해 이집트 사람들이 싫어하는 돼지고기 바구니에 감추어 가져왔다. 그래서 성 마르코 성당 입구 천장에의 중앙에는 최후의 심판을 그 양쪽에는 성인의 유해를 가져온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성당안으로 들어가면 황금모자이크로 된 돔과 3천개의 보석과 80개의 에메랄드로 장식된 제단화 팔라도르 그리고 중앙제대 아래에 있는 마르코의 무덤을 만날 수 있다.



후세의 미술가들은 신약 성서의 4대 복음 성인들에게 상징물을 붙여주었는데 마태는 사람, 마가는 사자, 누가는 황소, 요한은 독수리이다. 마가복음의 시작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착안해 마가를 사자로 상징했다. 산마르코 성당은 물론 산마르코 광장 곳곳에 날개 달린 사자 상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세계 4대 영화제 중의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의 최고의 상이 황금 사자상이다.



산마르코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사랑스러운 핑크색 두칼레 궁전은 수년간 베네치아를 통치했던 두크가 의 중심 관청이자 왕가로 산마르코 성당과 해안 사이에 있다.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 공화국 총독의 청사로 9세기에 세워졌으며 그 이후로 시청과 법정 그리고 도제의 관청으로 차례로 지어졌으나 1577년 대화재로 처음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이후 재건축한 외관은 붉은 분홍색 대리석과 흰색의 이스트리아 대리석을 교차해 밝고 화려한 베네치아 공화국의 번영을 상징하였다. 또한 실내의 불타버린 르네상스 작품 대신 16세기 베네치아 거장의 작품으로 장식되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있는 곳이 궁전 안에 있는 대 평의원 회의실이다.


2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 평의원 회의실로 들어서면 천장과 사방 벽이 황금과 그림으로 장식되어 그 규모와 화려함에 모두 압도당한다. 이 곳에 틴토레토의 유명한 작품 <천국>이 회의실 정면 벽을 꽉 채우고 있다.



<천국>은 세계 최대의 유화로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중심으로 700여 명의 군상들이 제각기의 모습으로 하늘의 복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거대한 그림을 관람객들은 보고 또 보며 그 웅장함에 감동한다.


대 평의원 회의실을 나와 계단을 내려오면 죄수의 방이 있는 프리지오니 궁전으로 연결된 탄식의 다리가 나온다. 탄식의 다리는 당시 사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서 마지막 바깥세상을 바라보며 탄식한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한 때 이 곳에 투옥됐다가 유일하게 탈출한 사람이다. 그는 감옥 천장의 벽을 뚫고 궁전의 연회장으로 이동하여 밤새 몸을 숨겼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마치 연회에 참석해 술을 먹고 잠든 사람처럼 유유히 궁전을 빠져나갔다.


카사노바는 여성을 유혹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는 마음에 드는 상대를 발견하면 질문을 던진 뒤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겼다. 그의 자서전에서 이런 명언도 남겼다.



사랑의 4분의 3은 호기심이다.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처럼 강력한 무기도 없다. 그는 호감 가는 여성을 만나면 현재 그녀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알아냈다. 그리고 그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자신이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게 해 줬다. 사람은 자신의 매력을 잘 알아주는 사람에게 강하게 끌리는 법이다. 카사노바가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굴을 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양에서는 굴을 <사랑의 묘약>이라고 불렀다.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목청 좋고 잘 생긴 베네치아 청년들이 노를 저으며 그 어원처럼 흔들리는 곤돌라에 올라 베네치아 골목을 누비면 영화 속 주인공이 부럽지 않다. 오래전에 베네치아는 외부의 침입을 받아 도시의 모든 처녀들을 빼앗겼다. 이에 신붓감을 잃은 베네치아 청년들은 작은 배를 만들어 야밤에 소리 없이 기습해 처녀들을 되찾아왔다. 이때 사용한 곤돌라는 원래 장례용으로 사용하던 배였다.


도시의 면적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베네치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성당에서 장례를 치른 뒤 이웃 섬으로 옮겨 묘지를 만들었는데, 그때 사용했던 배가 곤돌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곤돌라는 원래 용도와는 다르게 베네치아의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은 관광객을 위해 존재한다. 곤돌라가 검은 색인 이유는 1562년 베네치아 시령으로 사치를 금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베네치아 여행을 마치고 산타루치아 역으로 돌아갈 때에는 달리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며 걸어가야 한다. 베네치아의 진짜 매력은 뒷골목에 있기 때문이다.


내일 당장이라도 침수될 것 같은 도시에 살았던 베네치아 사람들은 생존의 위험에 배수진을 치고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영광과 번영의 황홀함과 굴욕 그리고 쇠락을 경험했다.



13세기 적극적인 해상 진출로 콘스탄티노플은 물론 에게 해의 크레타 섬을 획득해 지중해 무역권을 장악한 베니스지만 16세기 말부터 터키와의 전쟁에 패배해 지중해의 요충지를 하나씩 내어주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이 부족했던 그들은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들여 간직했다.


결국 베네치아 인들은 언제나 침수될 수 있다는 불안함과 덧없음에 저항하고자 강한 인간의 욕망을 바탕으로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과 황홀한 세계를 만들었다.미로 같은 뒷골목을 하염없이 걷다 보면 화려한 문명은 어두운 뒷골목처럼 인간의 숙명적인 한계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석호 위에 세운 이 미로 같은 이 도시를 토마스 만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베니스는 숙명적인 육욕의 쾌락을
느낄 수밖에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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