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닉 러브
단테의 집을 나와 시뇨리아 광장으로 들어서면 베키오 궁전과 우피치 미술관이 나온다.
베키오 궁전은 피렌체 최고의 가문인 메디치 가문의 집이었다. 이후 피렌체 도시 국가의 중앙청사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뇨리아 광장 중앙에 피렌체의 전성기를 이끈 코지모 데 메디치의 청동 기마상이 서 있다.
피렌체 르네상스의 실질적인 창조자이자 후원자인 메디치 가문은 모직 업과 금융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메디치 가문을 우뚝 세운 사람이 코지모 데 메디치이다.
그는 유럽의 16개 도시에 은행을 세웠으며 당시 교황청 자금의 유통을 맡아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평민 출신인 그가 부를 축적하며 피렌체의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자 그를 두려워한 귀족세력들은 그를 공화국의 적으로 몰아세워 수년 동안 추방하였다.
하지만 피렌체 시민의 열렬한 지지로 피렌체 돌아온 그는 공화국의 수반이 되었다. 이후 그는 피렌체 공화국의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국부>라는 칭호를 받았다.
평소 검소한 생활을 유지한 코지모는 피렌체의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문화예술에 막대한 후원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그가 하고 있던 금융업은 성경에서 말하는 고리 대금업이었다. 성경에서 고리대금업을 하는 자는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코지모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죽어서 구원을 받기 위해 많은 성당을 짓고 그 성당을 장식할 회화와 조각품에 막대한 재산을 사용하였다.
또한 인문학적인 소양이 뛰어났던 코지모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책을 중동과 그리스에서 구입하여 도서관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문학을 연구하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만들어 피렌체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이후 한 세기 동안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 공화국의 최고의 지위를 누리며 2명의 교황과 2명의 프랑스 왕비를 배출하였다. 베키오 궁전 바로 옆에 보이는 ㄷ자 형태의 큰 건물이 우피치 미술관이다.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 가문의 집무실이었으나 이후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우피치는 영어의 오피스로 사무실을 뜻한다.
우피치 미술관에는 처음으로 원근법과 명암법을 사용한 조토의 작품부터 플라톤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보티첼리의 작품 등 아름다운 르네상스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을 입장하여 3층으로 이동하여 2번 방의 조토의 <마에스타>부터 감상하자.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시대의 회화는 성경의 말씀과 상징을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당시 성경은 인쇄술이 발전되기 전이라 엄청난 고가였다. 성경책 한 권이 웬만한 집 한 채의 가격이었다. 게다가 라틴어로 되어 있어 일반 신도들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기독교는 일반 신도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알리기 위해 회화를 이용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경의 내용을 보여주는 중세시대의 회화는 당연히 상징적이었고 사실성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가 시대가 되자 회화는 인간의 눈높이에 맞는 사실성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 원근법과 명암법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혁신적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 조토의 <마에스타>이다.
작품에서 중세시대 고딕 양식의 회화 속 인물처럼 금색의 옥좌에 앉아 있는 성 모자가 보인다. 하지만 성모를 중심으로 주위의 인물들은 원근법을 사용해 앞뒤가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옥좌의 칸막이 옆으로 단축법을 사용해 확실한 입체적인 공간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성모 마리아의 생기 있는 하얀 옷과 주름진 치마 그리고 명암 효과를 받은 성자들의 모습은 공간 속에서 충분한 양감을 보이며 사실적인 표현을 보여준다. 성모 아래 천사들이 들고 있는 고귀한 장미가 든 꽃병 역시 사실적인 실재감을 가진다.
이 작품은 피렌체 오니산티 성당의 제단화로 만들어졌으며 초기 르네상스 회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8번 방으로 이동하여 프란체스카의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을 감상하자.
이 두 점의 초상화는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주문으로 제작한 패널화로 책처럼 펼칠 수 있도록 경첩을 달아 제작한 작품이다. 작품 속 남자는 용병대장 출신으로 소도시 우르비노를 부흥시킨 페데리코 2세이며 맞은 편의 여자는 그의 부인 바티스타 스포르 차이다.
당시 토스카나 지방의 풍경을 배경으로 강렬한 붉은색 옷차림을 한 페데리코는 마창 시합 도중 한쪽 눈을 잃었다. 그래서 그의 결점이 가려지도록 옆모습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굳게 다문 입과 오뚝 솟은 매부리코가 공작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공작의 맞은편에 보이는 스포르차 부인의 모습을 살펴보면 섬세하게 표현된 말아 올린 머리와 화려한 장식 그리고 값비싼 목걸이로 인하여 인물의 실재감이 넘친다.
이 작품을 완성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이탈리아 극사실주의의 선구자로 15세기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유화를 시도한 화가이다. 안료를 기름과 섞어 그리는 유화는 안료에 계란 노른자를 섞어서 그리던 이전의 템페라 기법에 비해 빨리 말랐으며 수정 작업도 쉬웠다. 거기다 투명한 효과까지 낼 수 있어서 세밀한 묘사가 가능했다.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패널화 뒷면에는 부부를 태운 두 대의 마차가 그려져 있다. 14세기 페트라르카의 <승리>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이 작품은 부인이 타고 있는 마차 아래의 문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유리한 때에 중용을 지킬 줄 아는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것이며
훌륭한 부군의 업적을 칭송함은 그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리라.
바티스타는 순결함을 상징하는 한 쌍의 유니콘이 이끄는 마차 위에서 네 명의 인물들로부터 호위를 받고 있다.
호위하는 인물들은 겸손과 더불어 종교적 미덕인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을 상징한다. 마차는 큐피드 상이 몰고 있으며 바티스타는 기도서를 읽고 있다.
반대편에 승리의 관을 쓴 페데리코 2세는 네 가지 덕목인 분별과 꿋꿋함 그리고 정의와 절제를 상징하는 사람들과 동행한다. 아래 석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그 덕으로 불후의 명성을 널리 떨친 이는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 올라
왕 홀을 손에 쥘 자격을 얻었으며위대한 승리를 맛보았다.
이 작품에서 풍경은 앞면의 작품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차가 다니는 들판은 계곡과 작은 언덕 그리고 길고 흐르는 물을 따라서 점점 더 확장된다. 균일하게 퍼진 밝고 예리한 빛 아래로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배경은 작품 속 인물들을 더욱 고귀하게 만든다.
계속해서 같은 전시실에서 리피의 <성모와 함께 있는 아기 예수>를 감상하자.
작가는 배경으로 보이는 액자에 보이는 자연을 입체감 있게 묘사하여 액자 앞에 있는 인물과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하였다. 이는 관람자로 하여금 고대의 자연과 인물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인물들의 성스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작품 속 성모 마리아는 성스러워 보이기보다는 세속적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머리에 진주 티아라를 쓰고 있는 성모는 광배만 없다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의 모습이다. 여기에는 작가 필리포 리피의 사랑의 도피 행각이라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고아였던 필리포 리피는 어린 나이에 수도사가 되었다. 하지만 17세에 넘치는 재주와 끼를 주체할 수 없어 수도사를 그만두고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마사초와 프라 안젤리코 등의 영향을 받아 자기만의 화풍을 만들어가던 그는 한 수녀원에서 수녀 루크레치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처음에 그는 루크레치아에게 자기가 그리는 성모자상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설득하다가 결국 그녀와 함께 사랑의 도피 행각까지 벌이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아들을 낳았다. 그렇게 자유분방했던 필리포 리피는 성화 속의 마리아 역시 세속적으로 아름답게 그렸다. 이후 마리아의 세속적인 아름다움은 그의 제자인 보티첼리에게 영향을 많은 미치게 되었다.
10번 방으로 이동하여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을 감상하자.
15세기, 피렌체는 한 여인의 등장으로 술렁거렸다. 시모네타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피렌체에 온 것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모든 남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녀의 부드럽게 물결치는 금발머리, 사슴처럼 커다란 눈망울, 상냥한 마음씨에 보티첼리 또한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보티첼리의 짝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 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티첼리의 그녀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나오는 비너스는 모두 그녀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대표작이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이다.
<봄>은 로렌초 데 메디치가 조카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으로 작품 가장 오른쪽에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요정 클로리스를 붙잡으려 하고 있다. 요정은 서풍에게 잡히는 순간 꽃을 관장하는 신 플로라로 변신한다.
바로 옆에 보이는 플로라가 변신한 클로리스이다. 플로라는 꽃과 꽃잎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동산에 꽃을 뿌리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클로리스의 옷의 방향과 플로라의 옷의 방향이 반대방향을 하고 있는데 이는 한 인물이 같은 화면 안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화면 한가운데 있는 여신은 비너스로 오렌지 나무 숲이 후광처럼 그녀를 비추고 있다. 그녀는 봄을 맞이하여 그녀의 겉옷을 벗어 손에 들고 있다. 그녀의 위쪽에서는 그녀의 아들 큐피드가 눈을 가린 채 화살을 쏘고 있다.
큐피드의 화살에 맞는 자는 무조건 사랑에 빠진다. 화살의 방향을 쫓아가 보면 삼미 신이 보인다. 순결과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삼미신은 봄을 찬양하며 춤을 추고 있다.
그녀들은 육체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투명하고 얇은 베일만을 두르고 있다. 그중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사랑의 여신은 춤을 추며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인물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이다.
헤르메스는 소식을 전해주기 위하여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있다. 그는 그의 상징인 뱀이 달린 지팡이로 봄을 가로막는 먹구름을 걷어내고 있다. 헤르메스는 피렌체 상인들의 수호성인으로 피렌체에서 특별히 공경을 받았다.
500여 종의 꽃과 식물이 묘사되고 있는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시적인 정서가 흘러넘치고 있다. 이는 보티첼리가 당시 르네상스 양식으로 유행하던 원근법과 해부학 등 사실적인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그 특유의 우아한 윤곽선과 선명한 색채를 사용하여 부드럽고 자유로운 비너스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고대 신화를 빌어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자신들의 도시인 피렌체에도 신 중심의 중세가 가고 인간 중심의 고대가 부활하고 있음을 작품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보티첼리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과 섬세한 세부묘사 그리고 우아하고 기품 있는 인물 표현이 돋보이는 <비너스의 탄생>은 중세의 신성하고 자비로운 성모 마리아는 보이지 않고 이교도인 그리스 신화의 아름다운 비너스가 보인다.
주제적인 면에서 천년 동안 다루어 성경 속 신을 버리고 인간을 닮은 비너스를 중심에 둔 이 작품은 우리를 꿈과 시의 세계로 이끈다. 10등신의 아름다운 비너스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의 도움으로 조개를 타고 바다를 건너 키프로스 섬 해안까지 밀려왔다.
제피로스는 자신의 연인인 클로리스를 안고 있다. 클로리스는 황금사과 밭을 지키는 네 명의 자매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제피로스는 그녀를 납치하여 자신의 연인으로 삼은 후 그녀를 꽃을 지배하는 여신 플로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 주위로 장미들이 흩날리고 있다. 장미는 아름다움과 향기를 지닌 사랑의 상징이자 가시로 인하여 사랑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음을 상징한다.
비너스가 도착한 해안에는 오렌지 나무 숲을 금방 나온 한 여인이 데이지 등 봄 꽃으로 장식된 붉은색 망토를 비너스에게 둘러주려고 한다. 그녀는 계절을 관장하는 세 여신 중 봄을 상징하는 호로라로 수레국화를 섬세하게 수놓은 새하얀 옷을 입고 있다.
또한 당시 유행하던 분홍색 장미로 만든 허리띠를 하고 있으며 은 매화 화환을 목에 걸고 있다. 상록수인 은매화는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한다. 그녀의 발아래 핀 한 송이의 파란 아네모네는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중앙의 비너스는 왼쪽 발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쪽 발로 중심을 잡으려는 르네상스 전형의 콘트라 포스터 자세로 육체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비너스는 순결을 상징하는 조개 위에서 오른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으며 왼손은 휘날리는 금발을 잡아 아래를 가린 정숙한 모습이다.
생각에 잠겨 꿈꾸는 듯한 비너스는 보티첼리 특유의 우아한 콧날과 우뚝한 광대뼈 그리고 강한 턱 선을 가지고 있지만 얼굴 주위로 물결치는 머리 결이 이 모두를 부드럽고 우아하게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발아래 보이는 지중해 빛 바다의 물결은 V자 형태로 거리가 멀어질수록 점점 작아지지만 가리비 조개 아래에서는 아예 모양이 변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땅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최초의 인간인 티탄 족이 탄생한다. 그러나 우라노스가 자식들이 성장하여 자신을 죽일 것을 염려하여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죽이자 가이아는 아들 중 하나인 크로노스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이에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잘라 바다에 버리는데 그 주위에 생긴 물거품에서 탄생한 여신이 비너스이다.
이렇게 탄생한 비너스는 고대 신화에서 대부분 육감적이며 바람을 피우는 사랑의 여신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그리스 시대 후기로 갈수록 정숙한 비너스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피렌체의 코지모 메디치는 플라톤에 심취해 플라톤 아카데미를 열었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책을 모아 대형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와서 열람하게 하였다. 그때 도서관에 있던 책 중 하나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이다. 그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나는 아름답고 정숙한 비너스를 노래한다.
여신은 서풍 제피로스의 입김에 떠밀려
물살 거친 파도에 실려서 부드러운 거품을 타고 왔다.
황금 머리띠를 두른 계절의 여신들이 그녀를 기쁘게 맞이하여 그녀의 몸을 신성한 의복으로 감싸고
신성한 이마 위에 황금관을 씌워 드렸다.
당시 이 구절을 읽은 보티첼리는 이전의 바람피우는 육감적인 비너스에서 이상적이며 정숙한 비너스를 자신의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특히 그는 비너스의 정숙함을 강조하기 위해 책에 나오지 않은 순결의 상징인 조개를 그려 넣었다
보티첼리는 이 작품을 통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
이는 인간이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세속의 세계에서도 이성과 감성을 통해 육체적인 사랑보다는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이 작품은 <플라토닉 러브>의 전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