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봉기 Oct 08. 2020

런던 뮤지컬

대영 박물관을 나와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뮤지컬 감상을 위해 극장으로 향한다. 거리에는 퇴근하는 사람들과 관광객들이 뒤섞여 여전히 활기가 넘친다. 뮤지컬을 보기 위해 유럽여행을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런던 뮤지컬은 유럽여행의 필수 코스이다.


파리에서 해질녘 센 강 유람선을 타지 않으면 파리를 본 것이 아닌 것처럼 런던 뮤지컬은 런던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뮤지컬의 매력은 관객의 상상력을 넘어선 생동감 넘치는 화려한 무대에 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세계적인 배우가 내 눈 앞에서 펼치는 연기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누적관객 1억 명, 수익금 6조 원. 올림픽이나 월드컵 이야기가 아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지난 23년간 거둔 성적표이다. 런던에서 빅 3으로 분류되는 뮤지컬은 <오페라의 유령><맘마미아><레미제라블>이다.


 


그중 1986년 10월 런던에서 초연한 이래 올해로 31년째  장기공연중인 <오페라의 유령>이 단연 최고봉이다.  


<오페라 유령>의 스토리는 천사 같은 목소리와 기형적인 얼굴을 가진 오페라 유령이 노래를 부르던 크리스틴을 보고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유령은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고 그녀의 꿈속으로 찾아가 노래 레슨을 해준다. 이후 크리스틴은 노래 스승이 실재 남자라는 사실을 알고 그가 머물고 있는 지하 미로를 찾아간다. 다음 날, 크리스틴이 사라진 사실에 모두들 걱정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크리스틴의 친구이자 그녀를 사랑한 라울도 있었다. 얼마 뒤 크리스틴이 지하 미로에서 돌아왔지만 그녀는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한다.


오페라의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헌신적으로 사랑을 베풀며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오페라에서 불러줄 것을 간청한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괴신사의 얼굴을 본 크리스틴은 경악하고, 오페라 극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다. 두려움에 떠는 그녀에게 라울은 자신을 믿으라며 사랑을 고백한다.


6개월 후 공연 날, 오페라의 유령을 등장인물로 변신해 크리스틴을 납치한다. 지하미로에 뒤따라온 라울이 함정에 빠져 위험에 처하자 그녀는 그를 구하려고 오페라의 유령에게 키스를 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유령은 그들을 풀어준다. 경찰이 유령의 지하미로를 덮쳤을 때 오페라의 유령이 쓰던 흰 가면만이 그들을 맞이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백미는 크리스틴을 납치한 뒤 지하 호수에서 배를 타고 노를 저어 가는 신비스러운 장면이다. 무대 깊숙한 곳에서 크리스틴과 유령을 태운 배가 등장하면 순식간에 무대 전체가 안개 자욱한 호수로 변한다. 푸른 물안개 속에 마법처럼 솟아난 수백 개의 촛불 사이로 배가 꿈결처럼 나아간다.


분명 마루판이었던 무대가 완벽하게 호수로 바뀌고 배가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지나가자 관객들은 황홀함에 넋을 잃는다. 이 호수를 연출하려고 드라이아이스 250킬로그램과 연기 머신 10대를 동원한다고 한다. 관객을 사로잡는 <오페라 유령>의 또 다른 장면은 1막 끝부분에서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장면이다.


수많은 유리구슬로 장식된 1톤 무게의 초대형 샹들리에가 객석 위로 순식간에 떨어지면 관람객들은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놀라움을 경험한다. 이 밖에 거울 속에서 오페라 유령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장면이나 순식간에 이쪽 끝으로 사라졌다가 저쪽 끝에서 나오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흰 가면만 남기고 사라지는 장면 등 공연 내내 볼거리가 넘친다.


<오페라 유령>이 전 세계 사람들을 사로잡는 또 다른 이유로 무대 아래에서 관현악단이 직접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과 세계적인 가수들의 매혹적인 노래를 꼽을 수 있다.


타이틀 곡 <오페라 유령>의 도입부에서 오르간의 힘찬 연주가 극장 안을 퍼져나가면 온 몸에 전율이 감돈다. 또한 수십 개의 촛불 속에서 오페라의 유령이 부르는 <밤의 노래>와 크리스틴과 라울의 러브송 <그대에게서 바라는 것은 오직 사랑뿐> 등 감미로운 멜로디가 극장 안에 흐르면 모두 숨을 죽인 채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만다.


오페라 유령은 1986년 런던 올리버상 3개 부문에서 수상한 이후, 1988년에 뉴욕 토니상에서 7개 부문을 수상하는 등 뮤지컬 메이저 상만 50개 이상을 휩쓸었다. 이 대단한 뮤지컬을 만든 사람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캣츠><에비타><텔미 온 선데이> 같은 수많은 히트 뮤지컬을 만든 뮤지컬의 대부이다. 그는 1992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 1997년 남작 작위를, 받았다.


다음으로 런던에서 유명한 뮤지컬이 레미제라블이다.





<오페라의 유령>이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대서 정시라면 <레미제라블>은 남성적이고 웅장한 사랑을 전하는 대서사시이다. 이 뮤지컬은 혁명 당시의 장엄한 음악과 무대를 배경으로 남녀의 달콤하면서도 애절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근원적인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는 숭고한 사랑을 보여준다.


레미제라블은 1800년 초반, 혼란기 프랑스에서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극심한 강제 노역에 시달린 뒤 풀려난 장발장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장발장은 풀려나자마자 다시 도둑질을 하지만, 가톨릭 신부의 배려로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었고, 그런 신부의 사랑에 감동하여 평생 남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법만 신봉하는 가베르 경감은 장발장을 뒤쫓고, 쫓기는 몸이 된 장발장은 수양딸 코제트와 함께 은둔생활을 한다.


세월이 흘러 숙녀가 된 코제트는 혁명에 동조하는 마리우스와 사랑에 빠지고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거지 소녀 에포닌은 애타는 눈으로 그 둘을 바라만 본다.



그 후 공화주의자들의 혁명이 일어나자 마리우스는 정부군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는다. 마리우스에 대한 질투를 버린 장 발장은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등에 업고 하수도 구멍을 통해 구사일생으로 탈출한다. 그 후 코제트와 마리우스를 결혼시키고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들에게 남긴 뒤 기구한 운명을 마감한다.


<레미제라블>에서 돋보이는 것은 파리 뒷골목 빈민가의 무대가 순식간에 성벽 높이의 바리케이드로 변신하는 장면이다. 5톤 무게의 거대한 무대 위에서 정부군과 혁명군이 치열한 총격전을 벌이고 곧이어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혁명군이 한 명씩 죽어가는 모습이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에포닌이 마리우스의 품 안에서 죽은 곳도 이곳이며 장발장이 잡혀 온 가베르 경감을 풀어주는 곳도 바로 이 무대이다.


화약연기와 붉은 조명이 진동하는 무대를 천천히 회전시키는 이 원형 회전무대 기법은 이 작품에서 최초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많은 뮤지컬에서 차용되었다.     


레미제라블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화려한 무대 외에도 주옥같은 음악과 노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코제트와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거지 소녀 에포닌이 부르는 <내 힘으로>이다. 고요한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애절한 에포닌의 노래가 끝나면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한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무심한 마리우스의 연애편지를 코제트에게 전해주고 돌아오다 정부군의 총에 맞는다. 그리고 그녀가 마리우스의 품에 안겨 <내 걱정은 하지 마, 이렇게라도 너의 품에 안기니까 행복해>라고 말한 뒤 죽어가자 관객들은 그 절절함과 슬픔에 한숨짓고 눈물을 흘린다.

 

가슴 시리면서도 아름다운 남녀 간의 사랑 외에도 숭고한 사랑의 감동을 전하는 노래와 장면은 뮤지컬 마지막 부분에 있다. 수양딸 코제트에 대한 사랑을 통해 일생 동안을 선행을 실천하고 헌신한 장발장이 죽어가고 그 죽음 위로 다음과 같은 가사가 포한된 합창이 나온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신을 만나게 된다.



극이 끝난 후 모든 관객들은 기립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며 공연장을 떠나지 못한다. 레미제라블은 전 세계 38개국 223개의 도시에서 22개의 언어로 무려 4만 회의 공연이 이루어졌고 그동안 관람객 수가 6000만 명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로도 잘 알려진 <맘마미아>는 아름다운 그리스 산토리니를 배경으로 한다.


이탈리아어로 <엄마야>라는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스무 살 소피는 결혼식을 계기로 자기 아버지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결혼식을 포기한 뒤 약혼자와 여행을 떠난다.


뮤지컬의 매력은 현장성이다. 바로 내 눈 앞에서 아름다운 무대를 배경으로 춤추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 생생함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화려하면서도 다이내믹한 무대장치 그리고 라이브 연주와 음악은 우리에게 영화나 소설에서 결코 맛볼 수 없는 극적인 황홀함을 제공한다. 그 대표적인 뮤지컬이 바로 맘마미아다.


 

특히 공연 마지막 부분에서는 마치 아바 공연을 보는 것처럼 관객 모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흥겨운 음악과 아름다운 장면에 취해 춤추고 노래하며 열광한다. 만약 그곳에 당신이 있다면 왜 맘마미아가 런던에서 최 단기간에 사상초유의 3천만 명의 관중을 동원했는지 알 수 있다.

 

맘마미아는 뮤지컬 내내 1980년대 전 세계를 주름잡았던 전설의 그룹 아바의 주옥같은 노래가 역동적인 배우와 어우러져 신나는 무대를 쉼 없이 선사한다.


극 중에서 결혼식 전날 도나가 소피의 머리를 빗어주며 부르는 노래 <내 곁을 떠나가네>는 모든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가 하면, 동갑내기 세 아줌마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절정의 에너지를 내뿜으며 부르는 <댄싱 퀸>은 공연장 분위기를 흥겨움을 넘어 광란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뮤지컬을 관람한 뒤 극장을 나서면 여행의 고단함은 씻은 듯 사라지고 귓속을 맴도는 노래와 함께 런던의 밤이 싱그럽게 빛난다.



 






작가의 이전글 런던 국회의사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