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여왕을 따라가는 여행
세계에서 가장 큰 공원 중의 하나인 하이드 파크는 켄싱턴 가든으로 이어지고 켄싱턴 가든의 중앙에 켄싱턴 궁전이 있다. 켄싱턴 궁전은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을 건설한 빅토리아 여왕이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어려서부터 왕손을 이을 다섯 번째 후계자로 지목된 그녀는 친구와 형제도 없이 지나친 보호 아래 외롭게 보내야 했다. 그녀가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야 했으며 왕위에 올라 캔싱턴 궁전을 떠날 때까지 어머니와 한 방을 쓸 정도로 폐쇄적인 보호를 받았다.
18세에 왕위에 오른 그녀는 64년간 왕좌에 앉았다가 81세에 운명하였다. 오랜 여왕의 재임으로 사람들은 그녀를 유럽의 할머니라 불렀다. 하지만 그녀의 재임 기간 동안 대영제국과 아일랜드 연합왕국 그리고 인도를 통치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과 정치력을 행사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이 있는 켄싱턴 궁전과 정원을 산책한 후 궁전 앞에 있는 연못을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오면 거대한 황금빛 조각상이 나타난다. 조각상의 주인은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이다.
1837년 18세의 나이에 왕이 된 빅토리아는 잘생긴 독일 작센 왕국의 앨버트 공에게 구혼을 요청하였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사랑을 지키겠다는 앨버트의 화답으로 1년 만에 둘은 결혼을 한다. 빅토리아 여왕이 결혼할 당시 입었던 하얀 드레스는 오늘날 웨딩드레스의 원조가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은 둘 다 무뚝뚝한 성격이었지만 서로 진심으로 이해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앨버트 공은 보수적인 빅토리아 여왕이 의회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빅토리아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앨버트 자신은 영국 의회의 불신을 받아 크림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국가 기밀을 빼돌렸다는 혐의로 런던탑에 감금되기도 하였다.
앨버트가 영국으로 와서 추진한 사업 중에 가장 성공한 것은 1851년에 있었던 런던 만국 박람회였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를 개최한 그는 전 세계에서 6백만 명이 참가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만국 박람회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앨버트 공은 영국의 높은 문화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콘서트 홀을 짓기 시작한다.
콘서트 홀 공사를 진행하고 있던 1862년, 왕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장남인 애드워드 7세가 여배우와의 스캔들을 일으키자 여왕은 왕자를 불러 꾸짖었다. 왕자는 용서를 빌지 않고 학교로 돌아가 버렸는데 몸이 좋지 않은 앨버트는 아들을 달래기 위해 학교로 찾아갔다가 비를 맞아 장티푸스에 걸린다. 그리고 얼마 후 42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여왕은 깊은 슬픔에 빠져 여름 별장인 윈저 성에서 은둔한 채 오랫동안 두문불출하였다.
그 후 남편이 그토록 열망하던 콘서트 홀 작업을 재개하여 1871년에 완성한다. 그리고 콘서트 홀 이름을 남편의 이름인 로열 앨버트 홀이라고 짓고 그 맞은편에 거대한 남편의 동상을 만들어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랬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에 영감을 얻어 지어진 앨버트 홀은 원래 3만 명 규모의 거대한 원형 관중석으로 계획되었으나 재정적인 이유로 5천 석 규모로 축소되었다. 잔뜩 앞으로 기울어져 있는 좌석과 거대한 오르간 연주대 그리고 양 옆의 오케스트라 무대 등 완벽한 음악 연주와 감상이 가능한 앨버트 홀은 최고의 연주장으로 매년 7월에 프롬이라는 음악제를 열어 전 세계의 클래식 유행을 결정하고 있다.
로열 앨버트 홀을 돌아 뒤로 가면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왕립 음악대학이 나온다.
학생들로 붐비는 음악대학 안에 있는 콘서트홀에서는 매일 무료 콘서트를 진행하는데 인터넷을 통하여 예약한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콘서트를 즐길 수 있다.
클래식한 왕립 음악대학의 캠퍼스를 나오면 바로 옆에 노벨 과학상을 14명이나 배출한 임페리얼 칼리지가 나온다. 옥스퍼드, 캠브리지와 더불어 영국 3대 대학으로 인정받는 임패리얼 칼리지의 입구로 들어가면 연구실과 도서관으로 둘러싸인 캠퍼스 중앙에 퀸즈 탑이 보인다.
1887년 빅토리아 여왕이 초석을 놓은 퀸즈 탑은 임페리얼 대학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정상에 오르면 멋진 런던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입학 정원 중 3분의 1만 겨우 졸업을 하며 3년 동안 한 시도 쉬지 않고 계속된 시험의 스트레스로 탑에서 투신자살하는 학생들이 늘어나자 지금은 폐쇄 중이며 소수의 주요 공식 사절단에게만 개방한다.
임페리얼 칼리지를 나와 대로로 걸어가면 과학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 그리고 빅토리아와 앨버트 박물관이 차례대로 나온다. 이 지역에 임페리얼 칼리지와 함께 최고의 박물관들이 들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앨버트가 박람회 수익으로 이 곳의 모든 땅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큰 대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왼쪽 끝에 빅토리아와 앨버트 박물관이 나타난다.
1851년 만국박람회에서 사들인 물건을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곳은 오늘날 디자인과 장식 예술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되었다. 박물관에 입장하면 16세기에 만들어진 꿈틀거리는 뱀장어와 도롱뇽이 뛰어놀고 있는 접시와 천이 아닌 목재로 만든 정교한 스카프를 만나볼 수 있다. 18세기 영국의 월폴 백작은 자신의 저택에서 목재 스카프를 걸치고 프랑스 방문객들을 맞이하였는데 조금의 의심도 사지 않았다고 한다.
빅토리아와 앨버트 박물관에서 빼먹지 말고 보아야 할 작품은 비욘세의 나비 반지와 빅토리아 여왕의 왕관이다.
비욘세가 기증한 화려한 나비 모양의 빠삐용 반지는 티타늄으로 만들어졌으며 날개의 안쪽은 녹색의 챠보 라이트로 장식하였고 날개의 바깥쪽은 수많은 다이아몬드로 채워 넣었다.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완성한 반지는 현재 1억 원이 훨씬 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로 장식된 빅토리아 왕관은 대영 제국의 위대함과 번영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에 대한 앨버트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준다. 회고록에 따르면 1843년 에 앨버트는 빅토리아를 위해 왕관의 보석과 디자인을 직접 선별하여 세공사에게 주문했다고 한다.
보석관을 나와 20세기 패션을 보여주는 의상 전시관을 거쳐 빅토리아 시대의 가구나 장식품들을 둘러보았다면 박물관 내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빅토리아 시대의 음식을 맛 볼 시간이다.
전 세계에서 최초로 박물관 안에 레스토랑과 카페를 들여놓은 빅토리아와 앨버트 박물관은 레스토랑과 카페의 인테리어를 19세기 유명 디자이너들에게 맡겨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식사 스타일은 영국식의 푸짐한 아침식사와 간단한 점심 그리고 늦은 저녁이 일반적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친한 친구였던 베드포드 공작부인은 가벼운 점심과 늦은 저녁 사이에 허기가 져서 하인에게 홍차와 함께 빵과 케이크 등을 가지고 오게 하여 간식을 즐겼다. 이것이 점차 습관이 되어 공작부인을 찾아온 친구들과 즐긴 오후의 작고 사적인 티타임은 오늘날 영국인들 사이에 가장 인기가 있는 에프터눈 티가 되었다.
앨버트 뮤지엄 레스토랑의 애프터눈 티 세트의 1단은 스콘과 빅토리안 스펀지케이크로 채워져 있다. 스콘은 반을 잘라 함께 나오는 크로티드 크림과 딸기잼을 잔뜩 발라 먹으면 눈 녹는듯한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
2단에 보이는 샌드위치는 시중에서 볼 수 있는 햄치즈 혹은 에그가 아니라 크레이피시와 인디언 햄 등이 들어 있어 빅토리아 시대의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중 정어리 파이는 그 특유의 고소한 맛으로 여행자를 즐겁게 한다. 마지막으로 레스토랑의 개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3단의 디저트는 미니 사이즈의 컵 케이크와 타르트 그리고 머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따로 주문한 샴페인 프로세코와 찰떡궁합이다.
왕족의 분위기를 내는 고급식당에서 향기로운 티와 음식을 맛보았다면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윈저로 이동한다. 윈저는 런던 워털루 역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윈저에 도착하면 영국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인정받는 윈저성으로 가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성인 윈저성은 영국 내전과 2차 세계대전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성이다.
900년 이상 왕실의 공식 거주지이자 현재 영국 여왕의 공식 거주지인 윈저성에 입장하면 빅토리아 여왕을 비롯하여 39명의 군주가 사용한 화려한 장식의 방이 여행자를 압도한다. 빅토리아 여왕은 앨버트가 사망하고 5년 동안 이곳에서 검은 상복을 입고 두문불출하였다.
윈즈 성에서 푸른 들판 사이로 나 있는 길을 30분 정도 걸으면 프로그모어 하우스와 정원이 나온다. 정원 끝에 있는 왕실 묘소에 빅토리아와 앨버트의 무덤이 있다.
1861년 2월 4일 저녁 빅토리아 여왕의 관은 기차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 사랑하는 앨버트가 사망했을 때 그녀는 그와 함께 묻히기 위해 이곳을 마련하였다. 영묘의 문 위에 빅토리아 여왕은 다음과 같이 새겼다
여기서 나는 너와 함께 쉬고
그리스도 안에서 너와 함께 다시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