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싫증난 사람을 위한 도시
런던 하면 떠오르는 것이 많다. 검은 모자와 빨간 제복을 입은 근위병과 빨간 2층 버스 그리고 빅벤이다. 그중 가장 여행자를 압도하는 것은 빅벤이다. 런던 중심에 있는 웨스터 민스터 지하철역을 나서자마자 우뚝 솟은 빅벤을 보는 순간 여행자는 전율을 느낀다.
거대한 궁전이었던 국회의사당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런던 브리지를 건너야 한다. 맞은편 광장에 서면 템즈강 위로 장엄하게 펼쳐진 국회의사당의 전체를 볼 수 있다. 빅벤이 있는 시계탑은 하원을 상징하고 반대편에 있는 빅토리아 탑은 상원을 상징한다. <큰 종>이라는 뜻의 빅벤은 <크다>는 뜻의 영어 빅과 시계탑의 설계자였던 벤자민의 앞 글자를 합성해서 만든 이름이다. 빅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폭격에도 살아남아 영국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충분히 찍었다면 바로 옆에 보이는 런던아이로 이동하자.
2천 년 밀레니엄 사업으로 2000년 3월에 개장한 런던아이는 135m의 크기로 유럽에서 가장 큰 관람차이다. 런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런던 아이는 25명이 탈 수 있는 32개의 관람차로 이루어져 있으며 야경이 매우 아름다워 밤에 다시 한번 방문하기를 추천한다.
다시 런던 브리지를 건너 국회의사당 앞으로 이동한다. 테러 이후로 경비가 삼엄한 정문을 통과하면 의사당 정원에 올리브 크롬웰 동상이 보인다.
영국 의회민주주의 상징인 올리버 동상은 길 건너 세인트 마가렛 교회의 뒷문에 있는 찰스 1세의 흉상과 서로 마주 보고 있다. 1625년 재정이 어려워진 찰스 1세는 세금을 거두기 위해 의회를 소집했지만 의회는 반발했다. 의회는 법적 한도에서 세금을 내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권리청원>을 요구했다. 왕과 의회의 갈등은 내전으로 이어졌으며 승자는 크롬웰이 이끈 의회였다. 승리를 거둔 크롬웰은 재판을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왕을 부관참시했다.
1653년 종신 <호국경>에 오른 크롬웰은 그 역시 왕처럼 나라를 다스리다가 1658년에 말라리아로 병사하였다. 크롬웰의 권력은 그의 아들에게 승계되었지만 국민은 차라리 이전의 왕이 낫다 하여 1660년에 찰스 2세를 국왕으로 맞이하였다. 왕이 된 찰스 2세는 크롬웰의 무덤을 파헤쳐 그의 시체를 부관참시한 후 국민을 억압하는 왕정시대의 정치로 돌아갔다. 성난 국민들은 다시 봉기하여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제 국가를 만들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는 <서쪽의 대사원>이라는 뜻을 가진 웨스터민스터 사원이 있다.
서기 960년에 지어진 웨스터 민스터 사원은 13세기 헨리 3세가 프랑스의 고딕 양식으로 완성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높고 화려한 고딕 성당은 뾰족한 아치와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로 인하여 약해진 벽을 보호하기 위해 부벽과 보조기둥을 세웠다. 웨스터 민스터 사원의 옆면을 보면 고딕 양식 특유의 많은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는 벽과 이를 지지하는 부벽 그리고 기둥들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딕 성당은 매우 높고 화려해졌다.
1066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건너와 영국의 왕이 된 정복자 윌리엄을 비롯하여 엘리자베스 2세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들이 대관식을 올린 이곳에 영국의 왕들과 셰익스피어, 뉴턴, 처칠 등 역사적 인물들이 묻혀 있다.
이제 길을 건너 영국의 정부 청사들이 몰려 있는 화이트 홀 거리로 이동하자. 화이트 홀 거리에는 수상관저를 비롯하여 내무부와 외교부 그리고 농림수산부가 늘어서 있다. 그 건물들 사이에 우리의 다음 방문지인 호스 가든이 있다.
영국 왕실을 호위하는기마병들의 본부인 호스 가든의 정문으로 입장하여 뒤쪽 연병장으로 가면 매일 11시에 기마병 교대식이 치러진다. 버킹엄 궁전 앞의 근위병 교대식이 없는 날에도 이곳에서 기마병 교대식을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금빛의 투구와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는 멋진 기마병의 교대식을 감상했다면 기마병들을 따라 버킹엄 궁전으로 이동하자.
11시가 되면 버킹엄 궁전에서는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호스 가든에서 출발한 근위병들은 빅토리아 기념동상을 돌아서 버킹엄 궁전으로 들어가서 교대식을 마친 후 다시 병영으로 돌아간다.
버킹엄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이 끝나면 점심시간이다. 그린파크를 지나 빨간 2층 버스를 타고 피카딜리 서커스로 이동하여 점심식사와 함께 휴식시간을 가지자.
런던 최대의 번화가인 피카딜리 서커스에서는 영국식 펍부터 이탈리안 음식과 아시아 음식까지 세계의 모든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그중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식당은 버거 앤 랍스터이다.
각자의 취향대로 맛있는 점심과 충분한 휴식을 취하였다면 영국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소호거리를 지나 20분 정도 걸으면 영국박물관이 나타난다.
영국박물관은 오랫동안 대영박물관으로 불렸는데 영어식 표기를 보면 그 어디에도 위대하다는 Great가 없다. 이는 일본이 자신의 나라를 제국으로 만들고 그 정당성을 위해 갖다 붙인 이름이다.
영국박물관의 메소포타미아 전시관에는 5천 년 전에 만들어진 푸아비 왕비의 화려한 장신구와 점토에 글자를 새겨 만든 점토 도서관이 있다. 이들 유물을 감상하다 보면 인류 최초 도시국가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당시의 점토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적혀 있다.
삶의 기쁨 그 이름은 맥주 삶의 슬픔 그 이름은 원정
결혼은 기쁜 것 그러나 이혼은 더 기쁜 것
칠칠치 못한 아내는 악마보다 두렵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러니 쓰자.
하지만 금방 죽지도 않는다. 저축도 해야 한다.
이외 영국박물관의 고대 이집트관에서 신전 가수였던 케이트베 미라에서 영원한 삶에 대한 고대 이집트인의 열망을 볼 수 있으며 그리스 관의 파르테논 신전 조각상에서는 그리스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념을 볼 수 있다.
영국박물관의 유물들은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인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루하루의 일상과 현재에 집중하며 아름답게 살았다는 사실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대영박물관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면 오늘의 마지막 여정지인 런던탑으로 2층 버스를 타고 이동하자.
1066년 프랑스 노르만에서 건너와 영국을 정복한 월리엄이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세운 런던탑은 처음에는 중앙의 화이트 타워를 비롯하여 3개의 성채만 있었다. 이후 수많은 왕들에 의해 탑이 증축되어 지금의 규모가 되었다. 이곳에서 헨리 8세는 첫 번째 왕비인 캐서린과의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던 대법관 토머스 모어를 가두었다가 참수형에 처했으며 이혼을 반대하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그의 머리를 타워 브리지에 전시했다.
앤 블린과 재혼한 헨리 8세는 또다시 아들을 얻지 못하자 앤 블린과 그녀의 딸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 역시 이곳에 유페하고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아들을 얻지 못한 채 헨리 8세가 죽자 그를 대신하여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에 올라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만들었다.
런던탑을 둘러보고 차가 다니는 큰길로 올라오면 런던의 전통 펍인 웨덜 스푼이 나온다.
타워브리지가 한눈에 보이는 식당 2층에 앉아 저녁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피시 앤 칩과 스타우드를 추천한다. 고소한 대구 튀김과 청량감이 넘치는 스타우드 맥주는 런던의 첫날밤을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템즈강으로 내려가면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타워브리지가 펼쳐진다.
빅벤과 더불어 런던의 랜드마크인 타워브리지는 영국의 최고 전성기인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고전적인 빅토리아 양식을 대표하는 다리이다. 배가 지나면 다리가 올라가는 도개교로 만들어진 타워 브리지의 상부에는 유리 통로로 만들어진 인도교가 있다. 이 곳에 오르면 템즈강변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타워브리지의 최고 매력은 야경에 있다.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템즈강변 위로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타워브리지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며 품격 있는 아름다움을 여행자에게 선사한다. 신선한 바람과 함께 찬연히 빛나는 타워브리지를 보고 있으면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새뮤얼 존슨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런던에 싫증난 사람은
인생에 싫증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