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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Mar 09. 2021

바티칸 산책

천재들의 향연

오늘은 로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호텔을 나와 바티칸으로 이동한다. 늘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바티칸 박물관을 여유 있게 관람하려면 아침 일찍 가거나 오후 늦게 가는 것이 좋다. 지하철에서 내려 바티칸 박물관 앞으로 가니 다행히 줄이 길지 않다.


바티칸 박물관 입구 위에는 교황청 문장을 사이에 두고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조각상이 있다. 조각 도끼를 들고 있는 사람이 미켈란젤로이며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는 조각상이 라파엘로이다. 두 천재의 작품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매일 이곳에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바티칸 박물관을 입장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바티칸 미술관인 피나코테카이다. 18개의 전시실에 약 460여 점의 회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이곳에서 여행자의 관심을 끄는 작품은 단연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이다.

 


마테복음의 2가지 이야기를 상하단에 표현한 이 작품은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과 함께 산에 올라 기도하던 중 구약의 예언자인 모세와 엘리아 사이에서 빛나는 모습으로 변모하는 장면이 상단에 그려져 있다. 그때 하늘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작품 하단에는 예수의 변용을 목격하고 하산하던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들을 치유해달라는 한 아버지의 사연을 듣게 되자 당황하는 모습으로 예수님에게 물어보라고 이야기하자 예수님은 이는 너희의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답한다.


라파엘로가 이 작품을 그리던 막바지에 사망했기 때문에 하단 그림을 제자들이 완성한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뛰어난 색감이 다빈치에게서 영향받은 빛과 미켈란젤로에게서 배운 조각 같은 조형미와 조화를 이루며 르네상스의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피나코테카를 나와 교황청의 상징인 솔방울과 공작새 조각상이 있는 솔방울 정원을 지나면 아폴로와 라오콘 조각상이 있는 벨베데레 정원이 나온다.



조각의 천재인 미켈란젤로조차 흉내 낼 수 없다고 이야기한 라오콘 조각상은 트로이 목마의 비밀을 폭로한 죄로 두 아들과 함께 뱀에 물려 죽어가는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벨베데레 정원을 지나 뮤즈의 방과 테피스트리 갤러리를 지나면 율리우스 2세 교황의 직무실이었던 서명의 방이 나온다. 1509년 라파엘로가 장식한 이곳에 아테네 학당이 있다.



위대한 서양의 철학자들이 시간에 관계없이 모두 등장하는 작품 중앙의 왼쪽에 카키색 옷을 입고 머리가 벗어진 소크라테스와 그 앞에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알렉산더 대왕이 보인다. <너 자신을 알라>로 유명한 서양 철학의 아버지,소크라테스는 질문을 통해서 남에게 듣거나 책에서 본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고민해서 내린 판단이 있어야 인생의 주인으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 아래로 계단에 턱을 괴고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은 변화한다고 생각한 헤라클리투스로 라파엘로는 그의 얼굴을 미켈란젤로의 모습으로 그려 놓았다. 그 옆으로 계단에 늘어져 있는 철학자는 무소유를 실천한 디오게네스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인 채 책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 사람이 피타고라스로 그는 세상은 변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피타고라스 법칙을 만들며 이를 증명했다.


작품 중앙에서 오른쪽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사람이 플라톤으로 라파엘로는 그의 얼굴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로 묘사하였다. 플라톤은 세상은 고정 불변하다는 생각과 세상은 변한다는 생각을 모두 포용하였다. 그는 세계를 변하는 현실과 변하지 않는 이상으로 나누었으며 변하지 않는 이상 즉 이데아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가장 진실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플라톤 옆에서 오른 손바닥으로 땅을 향하고 있는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플라톤의 제자이지만 그의 스승과는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상보다는 현실과 경험 속에서 세상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인간의 행복을 처음 이야기한 철학자로 진정한 행복은 소유보다는 중용과 덕에 기반한 인간 관계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하였다.


서명의 방을 나와 쏟아지는 관람객들과 함께 천천히 걷다 보면 시스틴 예배당이 나온다.



시스틴 예배당은 오늘날 교황님이 선종하시면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여서 묵상과 금식 그리고 투표로 다음 교황님을 선출하는 곳이다.


이 성당이 유명해진 것은 이 곳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이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예배당 안에 들어서면 천장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파스텔 톤의 우람한 인간들의 모습이 여행자를 압도한다.



시스틴 예배당의 천장화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일주일 동안 빛과 어둠, 해와 달, 바다와 육지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원죄를 지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고 대홍수를 일으켜 인간 세상을 벌하지만 노아만이 방주를 타고 살아남았다. 천장화는 이 과정을 차례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중 하이라이트는 인간의 창조이다.


다섯째 되는 날에 하나님은 흙으로 자신을 닮은 인간인 아담을 만들어 동물들이 인간을 따르도록 하였다.



작품을 살펴보면 아담이 생명의 기운을 받기 위해 손을 뻗어 하나님에게 향하고 있으며 천사들로 둘러싸인 하나님은 손가락으로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아담은 이제 막 깨어난 듯 연약해 보이고 하나님의 모습은 역동적이며 절대적이다. 미켈란젤로는 하나님의 얼굴을 당시 교황이었던 율리우스 2세의 모습을 담았다.


4년 만에 천지창조를 완성하고 피렌체로 돌아간 미켈란젤로는 23년이 지난 후 교황의 요청으로  시스틴 성당으로  다시 돌아와 <최후의 심판>을 완성하였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신념과도 같았던 피렌체 공화국이 무너지고 종교개혁의 혼란으로 몸과 마음이 황폐해있었다. 그는 세상에 대한 절망과 분노로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작품을 보면 중앙에 예수님이 있고 그 주위로 그의 제자들과 순교자들이 보인다. 예수님의 오른쪽에는 천국의 열쇠를 든 베드로가 보이고 왼쪽에는 가슴 아픈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마리아가 보인다. 또한 십자가를 든 순교자 안드레아와 빨간 망토의 사도 요한도 보인다. 그들 아래로 화형을 당한 로렌스가  자신이 화형 당했던 석쇠를 들고 있다.



예수의 발아래에는 살이 벗겨진 채 순교를 당한 성 바르톨로메오가 영혼과 육체가 빠져나간 자신의 껍데기와 칼을 쥐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얼굴을 그의 얼굴에 그려 넣으며 당시 자신이 느꼈던 심정을 담았다.



예수 아래로 요한계시록에 언급한 일곱 천사가 심판의 나팔을 불며 죽은 자들을 부르고 있다. 천사가 들고 있는 지옥에 갈 명단이 천국의 명단보다 훨씬 두껍게 그려져 있다. 또한 제일 왼쪽 아래에는 무덤에서 일어난 수많은 죽은 자들이 천사의 도움을 받아 하늘로 오르고 있다. 반대편 왼쪽에서는 보트에 탄 나룻배 사공이 죄인들을 후려치고 있다. 그들은 당나귀 귀를 하고 뱀한테 성기를 물린 미노스한테 형벌을 받고 불지옥으로 가야 한다.



미켈란젤로는 미노스의 얼굴에 당시 교황의 의식 담당관인 비아지오를 그려 넣었다. 그 이유는 작품 속에 완벽하게 표현된 나체 인물에 옷을 입히라고 자꾸 압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머리 위 왼쪽과 오른쪽에는 한 무리들의 천사가 그가 못 박혔던 십자가와 기둥, 그리고 가시 면류관을 들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회오리치는 구도로 최후의 심판을 전율하듯 생동감 있게 담았다.


<최후의 심판>이 완성되자 당시 교황이었던 바오로 3세는 무릎을 꿇고 회개할 정도로 대작임을 인정하고 미켈란젤로를 당시 베드로 대성당 개축사업의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후 베드로 성당의 원형 지붕인 돔을 디자인한 미켈란젤로는 시력이 약해져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새로운 피에타 작업에 매달리다가 사망하였다. 평생을 자신의 신념으로 인한 메디치 가문에 대한 배신과 종교적 갈등 그리고 돈 문제로 시달리다가 죽은 그의 무덤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만이
진실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깨우지 말고 목소리를 낮추어 주시오.


시스틴 예배당의 출입구 맞은편에 보이는 작은 문을 통과하면 성 베드로 성당이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커서 5만 명이 한번에 미사를 볼 수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은 서기 61년 네로 황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베드로의 무덤 위에 지어졌다.


성 베드로 성당은 하늘에서 바라보면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어 베드로 광장과 합하면 열쇠 모양이 된다. 이는 예수님이 제1 제자이자 초대 교황인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준 것을 상징하고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다. 피에타는 연민 또는 동정을 나타내는

말로 십자가에 내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의 모습을 가르킨다.



피에타 조각상을 보면 성모 마리아의 왼쪽 팔에 예수님의 얼굴을 둔 채 예수님의 몸을 성모 마리아의 넓게 벌린 다리와 치마 사이에 넣어 완벽한 삼각형 구도를 이루고 있다. 상체와 팔의 근육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예수님의 몸을 잡고 있는 마리아의 오른쪽 손가락은 옷자락에 눌러진 채 사실감을 더하고 있다. 예수 아래로 자연스럽게 펼쳐진 치마주름과 예수를 받치는 마리아의 왼손은 손금이 보일 정도로 섬세하다.


피에타가 완성되자 당시 24살밖에 안된 미켈란젤로가 이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성당에 몰래 들어가 마리아의 가슴띠 부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의 총총한 별을 보며 다음과 이야기했다.


저렇게 아름다운 별을 만드신 하나님도 어떤 서명도 남기지 않았는데. 부끄럽다. 나도 앞으로는 내 작품에 어떤 서명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피에타상을 지나 중앙제단으로 가면 베드로 동상이 나온다. 베드로 동상의 발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동상 앞에 줄을 서고 있다.



베드로의 조각상을 지나면 베드로의 유해를 보호하고 기리기 위해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발다키노가 있다.



발다키노 아래로 가면 베드로의 유해는 물론 역대 교황님들의 석관들이 있다. 또한 발다키노 위로는 신약성서를 적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모자이크상이 보인다. 모자이크상 밑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검시한 론지니를 비롯하여 베드로의 친동생인 안드레아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은 베로니카 그리고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의 조각상이 있다.



 베드로 성당을 감상하고 정문으로 나와서 왼쪽으로 가면  베드로 성당의 둥근 지붕인 쿠폴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쿠폴라에 오르면 열쇠 모양으로  베드로 성당의 광장괴 로마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천년  고대 로마 제국의 수도였으며 중세시대에는 교황령의 중심이었고 1871 이탈리아가 통일되자 이탈리아의 수도로 2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다는 역사적 건재함을 과시하며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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