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비경
새벽에 일어나 이탈리아 남부 투어를 다녀오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오늘 일정은 차로 로마를 출발하여 폼페이와 소렌토를 거쳐 세계 7대 비경인 아말피 해안에 있는 포지타노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일정이다. 로마와 나폴리를 잇는 이탈리아 1번 고속도로를 달려 3시간이 지나서야 폼페이에 도착했다.
폼페이는 서기 79년에 일어난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한순간에 사라진 도시로 오랜시간 잠들어 있다가 1748년에 발굴이 시작되면서 다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폼페이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탄성으로 보냈다. 건물의 지붕과 벽은 엄청난 화산재로 무너졌지만 나머지 부분은 화산 폭발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놀라운 것은 폼페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당시 화산이 폭발하면서 날아온 돌과 용암 그리고 화산재 등으로 2천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들은 화산재가 덮쳐오는 그 순간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폼페이 유적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원형 경기장으로 콜로세움보다 150년이나 일찍 지어진 이곳에서 최대 2천 명의 관객들이 검투사들의 경기를 즐겼다.
경기장을 나와 조금 걸어가면 유적지에서 가장 오래된 곳인 포룸이 나온다. 폼페이의 중심지였던 포룸에는 주피터 신전을 포함해서 법원과 은행 그리고 시장이 몰려 있었다. 2천 년 전 이곳에 몰려들었던 폼페이 시민들은 소란스러운 법정에서 재판을 지켜봤으며 시장에서 쇼핑을 즐겼고 신전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기도했다.
포룸을 지나면 델라본 단차 거리가 나온다. 이 거리에는 수많은 술집과 여관 그리고 세탁소와 빵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고소한 빵 냄새로 손님들을 유혹한 빵집에는 커다란 오븐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으며 세탁소에는 빨래를 넣고 사람들이 밟았던 커다란 탕이 보인다. 또한 바퀴 자국이 생생한 거리에는 인도로 마차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도로 중앙에 박혀 있는 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델라본 단차 거리를 지나 2천 년 전의 호화로운 벽화를 보여주는 몇몇 귀족의 집을 방문하면 그들이 얼마나 삶에 집착하며 사치스럽게 살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폼페이 유적지에서 동쪽 끝 부분에 보이는 곡물창고에는 화산 폭발 당시 그대로 화석이 된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갑자기 닥친 화산 폭발로 웅크린 채 차가운 주검이 되어 있는 모습에서 여행자는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낀다.
곡물 창고를 지나면 폼페이 유적지의 마지막 방문지인 5천 석 규모의 그리스 극장을 만난다. 극장 뒤에는 사각형 광장이 보이는데 이는 극장 관객들이 쉬는 시간에 거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으로 지진 후에 검투사들을 위한 막사로 사용되었다.
폼페이 유적지를 감상한 후 폼페이를 출발하여 산 마르티노 언덕에 도착하여 전망대로 이동하면 부드러운 산세와 더불어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소렌토의 장엄한 장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렌토 언덕을 지나 유네스코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길로 선정된 아말피 해안도로에 접어들면 여행자는 그 환상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아말피 해안의 절경은 포지타노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끝이 없이 펼쳐진 지중해를 마주하며 원시 그대로의 험준한 산맥 위로 이탈리아 돌집들이 앞 다투어 하늘을 섬기는 포지타노는 영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할 곳 50곳 중에 1위로 선정되었다.
차에서 내려 포지타노 마을의 정상에 위치한 호텔 <빌라 침 브로네>를 방문하면 호텔 정원 아래로 포지타노의 풍경이 지중해를 배경으로 비단처럼 펼쳐진다. 이 절경을 본 미국인 작가 고어 비달은 다음과 같이 극찬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노라마이다.
정원을 나와 폭 1 미터가 간신히 넘는 포지타노 골목길로 접어들면 형형색색의 집들과 여유로운 사람들의 표정들로 인하여 여행자는 느리고 편안한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또한 골목 곳곳에서 파는 레몬 술과 레몬 아이스크림의 상큼한 향으로 싱그러움을 맛보게 된다.
레몬 향으로 가득한 골목길을 내려오면 산타마리아 아순타 성당이 나타난다.
투박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산타 아순타 성당의 입구 옆에는 포지타노를 상징하는 물고기를 물고있는 여우 부조가 보인다. 바다를 상징하는 물고기와 산을 상징하는 여우를 동시에 보여주는 이 부조는 바다와 산에 의지하며 살아야 했던 포지타노 사람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성당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검은 성모 마리아와 비투스 성인의 유해를 볼 수 있다.
성당을 나와 에메랄드 빛이 감도는 아말피 해변으로 내려가면 포지타노의 아름다운 경치는 절정의 순간에 이른다. 파스텔톤의 돌집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지중해 바다를 향해 금방이라도 뛰어들듯 생동감이 넘친다.
해안 선착장으로 가면 미리 예약한 다 아돌포 식당의 전용배가 여행자를 기다린다. 배로 15분 거리에 있는 식당은 조그만 만에 위치하고 있어 전용배로만 갈 수 있다.
배를 타고 싱그러운 지중해로 나아가면 상그러운 바다의 향기와 함께 쏟아지는 포지타노의 절경이 여행자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한다. 푸른 하늘과 넘실거리는 지중해 바다 그리고 모든 것을 반짝이게 하는 태양은 여행자를 한없는 그리움과 낭만의 세계로 데려간다.
식당이 있는 해안에서 내리자 투명한 물빛위로 빨간 천막의 식당이 성큼 다가선다. 식당에 들러 홍합탕과 봉골레 파스타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요리를 시키자 금세 바다향이 가득한 음식들이 나온다. 음식은 맛뿐만 아니라 분위기만으로도 더할 나위가 없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선 배드에 누워 투명한 지중해를 바라보니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몽롱하다.
이제 이 꿈에서 벗어나면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여행은 일상 여행이다. 우리들은 그 여행에서 인생의 가장 진한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사랑과 고독을 느낀다. 이번 여행이 일상 여행에 빛나는 조연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오후 늦게까지 해변에서 게으름을 부리다가 로마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