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다.
호텔에서 나와 20분 정도 걸어가면 바로 눈 앞에 콜로세움이 나타난다.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짓기 시작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완성한 콜로세움은 높이 84m로 각 층에는 72개의 아치가 있어 경기가 있는 날이면 5만 명이 15분 만에 입장할 수 있다.
서기 68년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네로 황제가 자살하자 군인 황제들이 득세하여 로마는 혼란에 휩싸인다.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로마 원로원은 그의 아들과 함께 유대 지역을 진압하고 있는 베아파시아누스 장군을 황제로 지명한다. 로마 최초의 평민 출신인 베아파스아누스 황제는 로마로 돌아와 네로와 군인 황제들의 폭정에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 터에 콜로세움을 지었다. 모래와 사암으로 콘크리트 벽을 만들고 이를 하중을 잘 버티는 아치로 연결한 콜로세움은 2천 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불가사이한 경기장이 되었다.
경기장이 완성된 후 황금궁전에 있던 35m의 거대한 네로 동상인 콜로수스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데 이를 인용해 경기장을 콜로세움이라 불렀다.
콜로세움을 지나면 정면에 로마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나타난다. 312년 밀비오 다리 전투에서 막센티우스 황제에게 승리하면서 로마 제국의 패권을 쥔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자신의 개선문을 지은 후 개선문 중앙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다.
신의 뜻대로 instinctu divinitatis
막센티우스와의 마지막 전투 전날 꿈속에서 십자가를 보며 승리를 확신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처음 공인하였으며 로마의 수도를 당시 동서무역으로 부가 넘쳤던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며 로마의 번영을 다졌다.
콜로세움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사이로 들어서면 옛 로마의 영광을 보여주는 포로로마노가 나온다. 포로로마노의 입구에 티투스 개선문이 있다.
서기 81년 티투스가 사망한 직후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동생 도미티아누스가 건설한 티투스 개선문은 티투스가 예루살렘에서 유태인 반란을 진압한 업적을 찬양하는 조각으로 꾸며져 있다. 개선문의 아치 하단 오른편에 로마 병정들이 예루살렘 신전에서 약탈한 보물들을 나르는 모습이 보이는데 당시 가져온 보물과 유대인 포로 4만 명으로 티투스는 콜로세움을 완성하였다. 당시 전쟁의 패배로 유대인은 자신의 국가를 잃어버리고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티투스 개선문을 통과하여 왼쪽 언덕으로 오르면 황제들의 거주지였던 팔라티노 언덕이 나온다.
기원전 1,000년부터 팔라티노 언덕에 사람들이 살았는데 로마 전설에 따르면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 형제의 형인 로물루스는 자신의 땅을 욕심내는 동생인 레무스를 죽이고 이 언덕에 로마를 세웠다고 한다. 로마라는 이름은 로물루스에서 기원한다.
팔라티노 언덕에 있는 전망대로 이동하면 포로로마노가 발아래 펼쳐진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 제국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였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이곳에 법원과 은행 그리고 신전과 시장으로 꽉 차 있었다. 로마 군중들은 소란스러운 법정에서 야유를 퍼붓는가 하면 원로원에서 키케로 같은 위대한 정치인들의 연설을 들었다. 또한 시장에서 값비싼 비단과 향유를 구입하는 등 쇼핑을 즐겼으며 때로는 신전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기도했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는 포로 로마노 옆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거대한 포룸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이 정치권력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원로원 건물을 자신의 포룸 앞에 옮겨와 지었다. 원로원은 오늘날 국회로 건물 중앙에 로마 최고의 관직인 집정관이 앉는 의장석이 있었으며 좌우에 원로원들이 앉았다.
원로원을 나오면 큰 대로인 신성한 길이 펼쳐지는데 이곳에서 구름처럼 몰려든 로마 시민들은 개선한 군인들과 장교들에게 환호성을 보냈다. 신성한 길 끝에 보이는 무너진 연설단에서는 안토니우스가 로마 시민에게 재산을 상속한다는 카이사르의 유서를 공개하며 감동적인 추모연설을 하기도 하였다.
포로로마노를 나서면 임페리얼 거리가 나오고 거리를 따라가면 오늘의 점심식사 장소인 레스토랑 멜로가 나온다.
로마 전통 양식의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는 멜로에서 점심식사로 봉골레 파스타와 라자냐를 추천한다. 바지락의 감칠맛과 마늘과 올리브 오일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 봉골레 파스타는 전통 이탈리아의 맛을 음미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이 집이 자랑하는 라자냐는 넓적한 라자냐 면 사이에 치즈와 소고기가 꽉 차 있어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맛있는 점심과 함께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였다면 식당 바로 앞에 있는 포로 트리아노로 이동한다.
로마 제국이 마지막으로 건설한 가장 큰 공공 광장인 포로 트리아노는 서기 110년 트라야누스 황제가 다키아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여 만들었다. 당시 로마의 중심은 포로 로마노였는데 빠르게 늘어나는 로마의 인구를 감당하지 못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그 해결책으로 포로 로마노다 더 큰 포로 트리아노를 건설하였으며 값비싼 청동과 금 그리고 반들거리는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현재 포로 트리아노의 중심에 보이는 40m의 트라야누스 기념탑에는 다키아와의 전쟁장면을 상세히 보여준다. 트라야누스 황제의 유해가 있는 트라야누스 기둥 옆의 거대한 붉은 벽돌 단지는 트라야누스 시장으로 그 규모가 지금의 백화점보다 더 크고 화려했다고 한다.
트라야누스 시장 앞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판테온으로 이동한다.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 황제의 사위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건축한 판테온은 로마의 모든 신에게 바치는 만신전으로 그 장대함과 경이로움에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자아내었다. 609년에 일찌감치 성당으로 변경된 판테온은 다른 고대 로마 건축물처럼 완전히 파괴되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지만 돔에 금박을 입혔던 청동 타일은 콘스탄티노플로 보내졌으며 현관을 장식하던 청동 장식물도 성 베드로 성당의 주 제단을 만들기 위해 뜯겨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테온은 고대 로마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유일한 건축물이다.
판테온으로 입장하면 기둥 하나 없이 세운 거대한 천장 돔에 여행자는 입을 못 다물지 못한다. 천장의 창은 어두운 내부를 밝히는 채광 기능은 물론 환기를 돕는 통풍 기능을 위해 만들어졌다.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한 이곳에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
판테온을 나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나보나 광장으로 이동한다. 서기 68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세운 원형 경기장이었던 나보나 광장은 서기 80년부터 페허가 된 경기장에 집들이 들어서며 광장이 되었다.
17세기 중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광장 한편에 자신이 거주할 궁전을 세워 지금도 교황의 궁전과 그에 딸린 아그네스 성당이 광장의 한 면을 채우고 있다. 신앙때문에 이곳에서 화형 당한 아그네스 성인을 모시는 아그네스 성당으로 입장하면 화염에 휩싸인 성인의 동상과 성인의 유해를 감상할 수 있다. 아그네스 성당 바로 앞에는 바로크의 거장 베르니니가 설계한 4대 강의 분수가 있다.
분수대 위로 솟은 오벨리스크는 로마 가톨릭이 이교도를 물리 치려는 열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꼭대기에 승리의 상징인 올리브 가지를 물고 있는 비둘기 조각상이 있다. 오벨리스크 아래 두 개의 거대한 교황의 문장이 장식되어 있으며 분수대에는 각 대륙의 강을 상징하는 4개의 조각상이 있다.
나보나 광장을 돌고나면 저녁시간이다. 나보나 광장 근처에 있는 <바베토 >에 들러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를 맛보자.
피자의 원조가 이탈리아이며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피자집이 바베토여서 로마 사람들은 이곳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집이라고 소개한다. 바베토에서 피자를 주문하면 주문과 동시에 토핑한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구운 피자를 내어준다. 바베토 피자는 팬이 얇고 토핑이 많아 피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이 집에서는 대부분 1인분을 다 먹는다.
바베토의 추천 메뉴는 바베토 스페셜이다. 바베토 스페셜은 바싹 씹히는 빵 위로 계란 프라이와 소고기 그리고 버섯 등이 토핑 된 것으로 다양한 맛으로 입안을 즐겁게 한다.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피자의 기본재료인 치즈와 햄이 든 마르게리타를 추천한다. 피자를 먹다가 느끼하면 고춧가루를 달라고 해서 뿌려 먹으면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 고춧가루가 매우니 조금씩 뿌려야 한다.
식사를 마친 후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을 맞으면 다시 판테온 신전으로 이동하면 어둠이 깔린 광장위로 장엄하게 서 있는 판테온을 만나볼 수 있다.
판테온을 감상하였다면 이제 로마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맛보기 위해 판테온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지올리티로 이동한다. 젤라토의 기원이 이탈리아이고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 지올리티니 이곳의 아이스크림 역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이 된다.
1900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지올리티는 매일 아침마다 햇과일을 갈아 만든 셔벗을 비롯하여 레몬커피와 피스타치오, 바닐라, 멜론, 워터멜론 등 50가지가 넘는 다양한 아이스크림을 판매한다. 특히 쌀로 만든 리쪼 아이스크림이 인기를 끌고 있어 맛보기를 추천한다.
아이스크림으로 달달한 휴식을 취하였다면 지올리티를 나와 로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코르소 거리를 지나 오늘 야경의 하이라이트인 트레비 분수로 이동한다.
로마 특유의 좁은 골목을 지나 탁 트인 광장으로 나서면 쏟아지는 빛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하는 트레비 분수는 로마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이래도 로마가 이래도 싫냐고 따지는 것처럼 눈부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1762년 교황 클레멘스 13세의 지시로 지은 바로크 양식의 트레비 분수는 폴리 궁전을 배경으로 중앙에 바다의 신 넵튠 조각상이 위치하고 있다. 넵튠은 그의 두 아들 트리톤이 이끄는 두 마리의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조각 곳곳에 섬세함과 생동감이 넘친다.
트레비 분수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여행자가 분수에 동전을 한번 던지면 로마로 다시 돌아올 수 있으며 두 번 던지면 사랑하는 연인과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준비해온 동전을 분수에 던진다. 트레비 분수는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동전이 쌓여있는데 이 동전들은 모아서 유니세프에 기부한다고 한다.
트레비 분수를 끝으로 로마의 아름다운 밤도 끝이 보인다. 이제 야경 여행의 종착지인 스페인 계단으로 가자.
137계단으로 만들어진 스페인 계단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주인공인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계단을 내려오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계단 아래에는 배 모양을 하고 있는 바르카시아 분수가 있다. 한때 로마에 심한 홍수가 나서 이 곳이 물에 잠겼는데 어디선가 배 한 척이 광장으로 떠내려와 물이 빠진 뒤에도 광장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았다고 한다.
영국인들이 좋아했으나 프랑스인들이 자본을 대고 이탈리아인들이 만들었으나 미국인으로 한 때 붐볐던 이곳을 스페인 계단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1647년부터 지금까지 계단 맞은편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계단을 내려가면 왼쪽 분홍색 건물이 바이런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낭만파 시인인 존 키츠가 눈을 감은 키츠 박물관이 보인다. 결핵에 걸려 기후가 온화한 로마로 와서 혼신을 다하여 병마와 싸웠지만 1821년 2월 26세의 나이로 키츠가 숨을 거두자 그를 사랑했던 수많은 영국 사람들이 스페인 계단으로 몰려와 이곳은 한 때 순례지가 되었다. 키츠는 병상에서도 바르카시아 분수의 물줄기 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어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남겼다.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다.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쓴 자가 누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