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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Mar 04. 2021

피사 산책

그래도 지구는 돈다.

앰바시아토리 호텔은 가장 풍요롭고 화려한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매우 고급스러운 호텔의 식당으로 들어서면 스크램블을 비롯하여 소시지와 베이컨 그리고 삶은 계란과 감자 등 뜨거운 음식을 기본으로 바케트와 크루아상 등이 여행자의 손길을 기다린다. 또한 다양한 음료와 화려한 디저트 케이크는 피렌체의 아침을 즐겁게 한다.



화려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역으로 가서 피사로 이동한다. 피렌체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피사는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하다. 피사의 사탑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피렌체 중앙역의 다음 역인 피사 산 로소레역에 하차하여야 한다. 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가면 기적의 광장이 나온다.



기적의 광장을 두르고 있는 성벽을 지나면 넓고 푸른 풀밭 위로 피사 대성당과 세례당 그리고 피사의 사탑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광장에 서면 비현실적 풍경으로 왜 이 곳을 <기적의 광장>이라고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1174년 피사의 사탑이 10미터 높이에 이르렀을 때 한쪽 지반이 내려앉아 공사가 중단되었다. 무너진 지반을 확인해 보니 이곳이 해안과 가까워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레와 점토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당시 건축 기술자들은 기울어진 탑의 밑부분을 보강하는 한편 반대편 지반에 무거운 납덩어리를 쌓아 기울어진 형태 그대로 건물을 완성했다. 당시 피사의 사탑을 바로 세울 수 있었지만 기울어진 사탑이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대로 두었다.


피사의 사탑이 유명해진 또 다른 이유는 갈릴레오의 실험 때문이다. 중세시대에는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무게와 상관없이 부피가 같다면 동시에 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당시 기존의 학설에 기반을 둔 기독교에 대한 반역으로 그가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그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거운 발걸음으로 피사의 사탑에 올라 무게가 다르지만 부피가 같은 두 공을 동시에 떨어뜨려 자신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로 인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이 지배하던 당시의 가설을 뒤집고 지구는 둥글고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으며 지구에 중력이 있어 무게가 같다면 똑같은 속도로 사물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갈릴레오가 실험했던 피사의 사탑은 중세시대의 건물 양식인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유럽으로 건너온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 국교로 지정되면서 초기 성당은 나무로 만든 바실리카 건물로 대체되었다.



서기 1,000년이 되자 새로운 천년에 대한 불안감으로 성지로 여행을 떠나는 순례자가 급증하였다. 당시 성지 순례지는 물론 길목에 있는 도시들은 순례자를 위한 높고 튼튼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를 선보였다. 로마식 아치와 두터운 벽 그리고 작은 창문을 가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바실리카에 비해 크게 높아지고 튼튼해졌지만 실내는 좁고 어두웠다. 12세기 되자 보조 벽과 보조 기둥으로 기존 벽의 하중을 줄이면서 큰 창을 가진 고딕 양식의 성당이  나오면서 성당은 더욱 높아졌으며 실내는 밝고 넓어졌다.



피사의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도시국가였던 피사가 팔레르모 해전에서 이슬람의 사라센 함대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피사 대성당은 길이 100미터 높이 34미터의 대규모 성당이지만 실내는 좁고 어둡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제단 위로 비잔틴으로 수도를 옮긴 동로마에서 시작된 비잔틴 양식의 돔 모양과 모자이크화가 눈에 띈다. 예수님이 왕좌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자이크화에서 예수님의 후광은 하늘의 영광을 상징하듯 밝게 빛난다.



피사 대성당의 압권은 대성당의 입구에 보이는 정면 파사드로 이탈리아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아치와 기둥으로 연결된 장식을 아케이드라고 하는데 피사의 대성당은 무려 4개 층의 아케이드로 장식되어 있다. 형형색색의 돌로 레이스처럼 정교하게 장식된 피사 성당의 아케이드는 반복되는 아치로 인하여 율동감이 넘치며 빛과 그림자로 인해 깊이감도 있다. 피사 대성당을 만든 사람들은 4단의 아케이드가 만들어낸 화려함에 도취되어 6단으로 늘려 대성당 옆에 종탑을 지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이 되었다.


피사에서 피렌체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기차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중앙시장으로 이동한다. 피렌체의 중앙시장은 다양한 쇼핑거리와 함께 값싼 먹거리들이 모여 있어 쇼핑 겸 점심식사 장소로 적당하다.



중앙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은 1872년부터 현재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 다 네르보네 식당이다. 1층에 위치한 이 식당의 메인 메뉴는 곱창버거이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소 곱창은 토마토와 셀러리 그리고 인삼과 양파 등을 장시간 끓여 잡내가 안 나고 식감이 부드럽다. 게다가 곱창을 담는 빵도 치아바타를 사용해 매우 고소하고 쫄깃해서 레드와인과 함께 먹으면 점심식사로 부족함이 없다. 물론 동양인의 입맛에 맞춘 스파이시 소스는 밋밋한 곱창의 맛을 감미롭게 하는데 최상의 조합이다.



곱창이 싫은 여행자라면 금방 뽑은 파스타에 선택한 소스로 바로 만들어주는 파스타 프레스카를 추천한다. 역시 중앙시장 1층에 있는 이 식당에서 올리브가 들어간 토마토소스에 시금치가 들어 있는 라비올리를 주문한다면 리코타 치즈와 시금치가 어울리는 매력 있는 파스타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10 거리에 있는 아카데미 미술관으로 이동한다.



아카데미 미술관에 들어서면 미켈란젤로가 율리우스 교황의 영묘에 사용하려 했던 미완성의 노예상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미완성 작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정교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노예상을 가로지르면 정면에 거대하게 솟아 있는 다비드 조각상을 만나볼  있다.

  

대리석을 보면 그 안에 자신이 조각할 인물이 보여, 보이는 대로 조각하면 된다는 천재 미켈란젤로는 공화국이 된 피렌체에 그 정신을 보여줄 상징으로 다비드를 지목하였다. 다비드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거인 골리앗이 침략해오자 돌 하나로 골리앗을 무찌른 소년 영웅이다. 그래서 이전의 다비드 조각상은 언제나 소년으로 묘사하였으나 미켈란젤로는 4미터 높이의 청년의 모습으로 다비드를 창조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승리를 즐기는 기존의 다비드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글거리는 눈빛과 돌을 움켜잡아 핏줄이 선 손으로 깊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처음 이 조각상이 시청 앞에 세워지자 다비드의 눈은 쫓겨난 독재자 메디치 피에로와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이 있는 로마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독재에 항거하며 영원한 공화국 정신을 표현하고 있는 다비드 조각상을 본 피렌체의 시민들은 모두 환호하며 기뻐했다.


아카데미 미술관을 나와 호텔에서 짐을 찾은 후 피렌체 역을  출발하여 기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로마로 이동한다.



로마 중앙역인 테르미니역에서 1호선으로 2 정거장 후에 있는 만조니 지하철역을 나서면 바로 눈 앞에 프레지던트 호텔이 나타난다. 프레지던트 호텔은 넓고 깨끗하며 콜로세움까지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다. 또한 넓은 라운지와 노련한 직원분들의 친절한 안내로 편안함을 제공한다.  


저녁은 호텔에서 15미터 거리에 있는 홍콩 식당에서 중식요리를 포장해와서 호텔에서 해결한다.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홍콩 식당은 2-3유로에 홍콩 볶음밥을 비롯하여 각종 중국 요리를 즐길 수 있어 가성비 최고의 식당이다. 한국어 메뉴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여행자로부터 인기 있는 이곳에서 무엇을 주문하던 우리 입맛에 맞다. 홍콩 식당 바로 옆에 보이는 미니 슈퍼에서 시원한 이탈리아 맥주 한 병을 사서 함께 먹는다면 오늘의 여행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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