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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Feb 28. 2021

피렌체 산책

마침내 돌체를 외치다.

베니스를 출발한 열차는 3시간 만에 피렌체에 도착한다. 피렌체의 호텔은 역 바로 앞에 있은 앰바시아토리 호텔이다. 호텔은 매우 크며 1층과 2층에 각각 로비가 있어 이용자들의 편리를 돕는다. 호텔 방 역시 크고 깨끗하다.



점심시간이라 호텔에 짐을 두고 피렌체의 유명한 가죽 시장 안에 있는 자자 식당으로 이동하여 피렌체가 자랑하는

티본스테이크를 먹는다.



피렌체가 위치한 토스카나 지방은 소들이 자라기 좋은 능선과 푸른 초원이 많다. 그래서 피렌체는 천혜의 환경에서 자란 명품 흰소인 키아니나로 만든 티본스테이크가 유명하다. 티본스테이크는 한쪽은 안심이고 한쪽은 등심으로 지방이 많이 없다. 그래서 강한 숯불에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레어 수준으로 구워야 잘 타지 않고 스테이크 특유의 육즙을 보존할 수 있다.


자자가 대표하는 티본스테이크는 1kg이 기본이라 2명이 나눠먹기에 적당히다. 평소 잘 구운 스테이크를 원한다면 웰든으로 주문해야 한다. 티본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잘라서 입에 넣으면 숯불의 진한 향과 더불어 육즙에서 흘러나오는 감칠맛과 고소함이 입안을 즐겁게 한다. 만약 3명 이상이라면 송로버섯으로 만든 트러플 스파게티도 맛볼 것을 추천한다.


맛있는 점심을 즐겼다면 본격적으로 여행을 할 시간이다. 식당에서 나와 조금 걸으면 피렌체 대성당이 나타난다.



흰색과 분홍색 그리고 녹색의 대리석으로 장식된 피렌체 대성당은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답다. 꽃봉오리에 해당하는 거대한 돔 지붕인 쿠폴라는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이별을 앞둔 연인이 10년 뒤 만나기로 한 약속한 장소로 피렌체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이 곳에 오른다. 464개의 계단을 따라 높이 106m의 쿠폴라에 올라서면 붉은 지붕을 한 피렌체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이곳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13세기 말 십자군 길목에 있었던 북부 이탈리아 도시들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금융 그리고 숙박을 제공하면서 크게 성장하였으며 십자군 전쟁이 끝난 후 왕과 귀족들을 대신하여 상인들이 도시의 주인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큰 성당을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성당을 짓기로 결심한 피렌체 상인들은 성당을 짓기 시작한 지 100년이 지난 1417년이 되어서야 거대한 돔 지붕을 완성하였다. 지름 47미터의 거대한 돔을 올린 사람은 브루넬레스키로 그는 그는 껍질과 내부 막으로 구성된 계란과 같이 대성당의 돔 역시 이중 천장을 만들어 하중을 분산한 후 로마 판테온처럼 아래서부터 차례로 벽 돌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돔 지붕을 완성했다. 이 작업은 무척 어려워 1년에 2미터씩 밖에 올릴 수 없어서 작업을 시작한 지 16년 만에 돔이 완성되었다. 피렌체 하늘 아래 거대한 돔이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 피렌체 사람들은 자부심에 북받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쿠폴라를 내려와서 성당을 나서면 조토의 종탑이 보이는 광장이 나타난다. 이 광장의 모서리에 피렌체 대성당을 설계한 아르놀포 캄비오과 브루넬레스키의 조각상이 나란히 있다.  


피렌체 대성당의  공사가 있기 20 전인 1366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가 지나자 피렌체 상인들은 신께 감사의 표시로  조반니 세례당의 북쪽 청동문을 제작하였다.  조반니 세례당은 세례 요한에게 봉헌한 곳으로 피렌체 대성당이 완성되기 전까지 성당과 유아세례 장소로 사용된 곳으로 남쪽 문만 청동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예수의 일생을 보여주는 북쪽 청동 문의 제작을 맡은 기베르티는 21년 만에 북쪽 문을 완성하였으며 이어서 마지막 남은 동쪽 문 역시 27년 만에 완성하였다.



동쪽 문은 황금색으로 장식되었으며 이전의 북쪽 문에 비하여 눈부신 입체감을 가진다. 동쪽 문을 장식하는 동안 유행이 바뀌어 원근법과 명암이 적용된 르네상스 양식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후일 미켈란젤로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동쪽 문을 천국의 문이라고 불렀다.


동쪽의 문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러 장면을 담고 있는데 그중 가장 인기가 있는 작품은 <카인과 아벨>이다.



작품 아래에서 밭을 가는 아벨과 양 떼를 지키는 카인이 보이고 위쪽으로 멀리 제단을 차려 제를 올리고 있는 형제의 모습도 보인다. 중앙에는 카인이 아벨을 몽둥이로 쳐서 죽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며 왼쪽 상단에는 늙은 아담과 이브가 대낮의 비극을 눈치채지 못한 채 오두막 앞에 웅크리고 있다. 이 부조의 압권은 오른쪽 하단에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카인이다. 동생인 아벨을 죽인 그는 네 동생이 어디에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뻔뻔스럽게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며 한 손을 들어 삿대질을 하고 있으며 다른 손에는 피 묻은 방망이가 들려 있다. 카인은 머리를 돌리고 있어 그의 뒤통수가 빤질거린다.  


세례당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과 둘레가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그 황금빛 속에서 그리스도의 역사와 수 많은 성인들의 역사가 담겨져 있어 지상으로 내려온 작은 천국을 보여준다.


세례당을 나와 대성당 옆에 보이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단테 하우스가 나온다.



<신곡>으로 유명한 단테가 1265년에 태어난 이곳은  근래에 들어서 복원한 곳으로 내부에는 단테의 침실과 서재 가 있다. 단테 하우스 옆 골목에는 그가 평생을 사랑했던 연인 베아트리체가 결혼을 한 산타 마르게리타 성당이 있다. 지금도 성당 안에는 베아트리체가 결혼을 하는 장면을 몰래 지켜보는 단테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걸려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꽃피운 사람들이 피렌체의 상인이라면 그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이 단테이다. 단테는 중세 천년 동안 신의 구원을 받기 위해 엄숙한 삶을 살았던 중세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인간의 달콤한 사랑을 공개적으로 노래하였다.


해마다 5월 1일이면 피렌체의 유력 가문들은 봄맞이 파티를 열었다. 여기서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단테는 부모님이 정해 준 젬마와 결혼을 하였으며 베아트리체 역시 21살에 은행가에 시집갔다. 3년 후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16년간 자신의 가슴속에 자리해 온 여인을 잃은 충격에 단테는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끼며 그녀에게 바친 연시를 모아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기독교적 보수성이 극에 달했던 중세시대에 단테는 이 책을 통해 세속적인 사랑은 죄가 아니라 인간이 누려야 할 행복의 감정임을 보여주었다. 그 감정이 바로 달콤함인 돌체 DOLCE였다. 인간의 감미로운 감정을 최초로 노래한 그는 중세시대를 끝내는 종결자가 되었다.


단테의 집을 나와 시뇨리아 광장으로 들어서면 베키오 궁전이 나온다. 베키오 궁전은 메디치 가문의 궁전이었으나 이후 피렌체 도시 국가의 중앙청사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뇨리아 광장 중앙에 피렌체의 전성기를 이끈 코지모 데 메디치의 청동 기마상이 서 있다. 피렌체 르네상스의 실질적인 창조자이자 후원자인 메디치 가문은 모직업과 금융업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다. 메디치 가문을 우뚝 세운 사람이 코지모 데 메디치이다. 그는 유럽의 16개 도시에 은행을 세웠으며 당시 교황청 자금의 유통을 맡아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평소 검소한 생활을 유지한 코지모는 피렌체의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는 데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문화예술에 막대한 후원을 한 이유는 당시 그가 하고 있던 금융업은 성경에서 말하는 고리 대금업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고리대금업을 하는 자는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이야기하였다. 코지모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죽어서 구원을 받기 위해 많은 성당을 짓고 그 성당을 장식할 회화와 조각품에 막대한 재산을 사용하면서 르네상스 시대를 본격화하였다.


베키오 궁전 바로 옆에 보이는 ㄷ자 형태의 큰 건물이 우피치 미술관이다.



우피치는  영어의 오피스라는 뜻으로 이곳은 메디치 가문의 집무실이었으나 이후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우피치 미술관의 대표하는 작품은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이다.


15세기, 피렌체는 한 여인의 등장으로 술렁거렸다. 시모네타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피렌체에 왔는데 그녀의 아름다움에 모든 남자들이 반했다. 부드럽게 물결치는 금발머리와 사슴처럼 커다란 눈망울 그리고 상냥한 마음씨에 보티첼리 또한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티첼리의 그녀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나오는 비너스는 모두 그녀의 얼굴을 하고 있다.



보티첼리의 대표작인 <봄>은 로렌초 데 메디치가 조카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제작한 작품으로 작품 가장 오른쪽에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요정 클로리스를 붙잡으려 하고 있다. 요정은 서풍에게 잡히는 순간 꽃을 관장하는 신 플로라로 변신한다. 바로 옆에 보이는 플로라가 변신한 클로리스이다. 화면 한가운데에서 시모네타의 얼굴을 하고 있는 여신은 비너스로 오렌지 나무 숲이 후광처럼 그녀를 비추고 있다. 그녀의 위쪽에서는 그녀의 아들 큐피드가 눈을 가린 채 화살을 쏘고 있다.


화살의 방향을 쫓아가 보면 삼미 신이 보인다. 순결과 사랑 그리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삼미신은 봄을 찬양하며 춤을 추고 있다. 그중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사랑의 여신은 춤을 추며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인물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이다.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있는 헤르메스는 뱀이 달린 지팡이로 봄을 가로막는 먹구름을 걷어내고 있다.


500여 종의 꽃과 식물이 묘사되고 있는 이 작품은 우아하고 시적인 정서가 흘러넘친다. 보티챌리는 그는 고대 신화를 빌어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신 중심의 중세가 가고 인간 중심의 고대가 부활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보티첼리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과 세부묘사 그리고 우아한 인물 표현이 돋보이는 <비너스의 탄생>은 중세의 신성하고 자비로운 성모 마리아는 보이지 않고 이교도인 그리스 신화의 아름다운 비너스만이 보인다.


천년 동안 다루어 성경 속 신을 버리고 인간을 닮은 비너스를 중심에 둔 이 작품은 우리를 꿈과 시의 세계로 이끈다. 10등신의 비너스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가 불어대는 바람으로 조개를 타고 바다를 건너 키프로스 섬 해안까지 밀려왔다. 제피로스는 자신의 연인인 클로리스를 안고 있는데 그녀 주위로 장미들이 흩날리고 있다. 비너스가 도착한 해안에는 봄의 신 호로라가 봄 꽃으로 장식된 붉은색 망토를 비너스에게 둘러주려고 한다.


이 작품에서 비너스는 순결을 상징하는 조개 위에서 오른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으며 왼손은 휘날리는 금발을 잡아 아래를 가린 정숙한 모습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우라노스가 자식들이 성장하여 자신을 죽일 것을 염려하여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죽이자 가이아는 아들 중 하나인 크로노스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이에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잘라 바다에 버리는데 그 주위에 생긴 물거품에서 비너스가 탄생한다. 이렇게 탄생한 비너스는 고대 신화에서 대부분 육감적이며 바람을 피우는 사랑의 여신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비너스는 그리스 시대 후기로 갈수록 정숙한 비너스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피렌체의 코지모 메디치는 플라톤에 심취해 플라톤 아카데미를 열었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책을 모아 대형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와서 열람하게 하였다. 그때 도서관에 있던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나는 아름답고 정숙한 비너스를 노래한다. 여신은 서풍 제피로스의 입김에 떠밀려 거친 파도에 실려서 부드러운 거품을 타고 왔다.  황금 머리띠를 두른 계절의 여신들이 그녀를 기쁘게 맞이하여 그녀의 몸을 신성한 의복으로 감싸고 신성한 이마 위에 황금관을 씌워 드렸다.


당시 이 구절을 읽은 보티첼리는 이전의 바람피우는 육감적인 비너스에서 이상적이며 정숙한 비너스를 자신의 작품으로 완성하였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 이는 인간이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세속의 세계에서도 육체적인 사랑보다는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이 작품은 <플라토닉 러브>의 전형이 되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나와 베키오 다리를 건너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올라간다.



노을질 무렵 미켈란젤로 언덕에 오르면 붉은 지붕의 피렌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광장 끝에 위치한 테라스에서 서면 유유히 흐르는 아르노강 위로 꽃처럼 피어난 두우모가 석양을 향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를 꽃 피운 피렌체의 여행은 타들어갈 듯 붉어지는 노을과 함께 점차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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