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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pr 01. 2021

세비야 산책

콜럼버스의 도시

세비야로 가는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호텔에서 미리 준비한 아침 도시락을 받아서 버스에 오르자 20분 만에 리스본 공항에 도착한다.


리스본 공항의 탑승수속은 셀프이다. 자동 탑승권 기계에서 여권을 스캐닝하면 탑승권과 짐택이 나온다. 짐택을 수하물에 붙인 후 셀프카운터로 가서 수화물을 보내야 하는데 방법을 몰라 당황할 필요는 없다. 셀프 카운터 옆에 항공사 직원이 있어 수속이 힘든 사람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탑승장으로 이동하기 전에 준비해 온 아침식사를 마쳐야 한다. 탑승장에는 액체류 반입이 안되기 때문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하면 40분 만에 세비야에 도착한다.



기분 좋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버스에 오르면 30분만에 오늘 우리가 숙박할 멜리아 레브레로스 호텔에 도착한다. 호텔은 별 네 개로 넓은 라운지부터 엘리베이터 그리고 방으로 이어지는 모든 장소가 심플하며 고급스럽다. 이 호텔의 아침식사도 유럽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질 않을 정도로 다양하면서 맛있다.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면 세비야 여행의 첫 방문지인 메트로폴 파라솔이 나타난다.  



엔카르나시 온 광장에 설치된 높이 28m의 파라솔은 35,000개의 나무 조각을 조립해 만든 건물로 버섯 모양을 닮아 <세비야의 버섯들>이라고 부른다. 버섯보다는 와플과 닮은 구조물의 1층에는 큰 마켓과 카페 등이 들어서 있으며 지하에는 파라솔 건물을 공사하다가 발견한 로마시대의 유적을 전시한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고고학 박물관 입구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오르면 탁 트인 도심 전경을 보여주는 보행자 산책로가 있다. 꼬불꼬불하게 굽이치는 산책로를 돌다가 파노라마 발코니에 서면 꿈꾸는 듯 세비야가 내 손안에 들어온다.


파라솔을 감상하고 나서 미망인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카사 라 바우다 식당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즐기자.



1924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식당은 2013년부터 3년 연속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식당으로 추천 메뉴는 새우 샐러드와 대구 토마토소스 요리이다. 상큼한 소스에 탱글탱글한 새우와 신선한 야채의 식감이 뛰어난 새우 샐러드는 여행자의 입맛을 돋우는데 부족함이 없다. 또한 두툼한 대구살에 토마토소스가 살짝 뿌려져 있는 대구 요리는 입에 넣는 순간 미소가 그려진다. 여기에 스페인 특유의 상큼한 레몬 맥주를 곁들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세비야 대성당으로 이동한다.



최고의 사치품이었던 향신료와 자기 그리고 비단을 인도와 직접 무역하기 위해 바다 길을 개척한 대항해 시대에 스페인은 유럽 최고의 무역국가가 되었다. 동방과 미대륙에서 들어오는 모든 무역 물자는 세비야를 거쳐 스페인과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세비야 사람들은 넘치는 부와 힘을 과시할 목적으로 최고의 성당을 짓기로 했다. 세비야 사람들의 목표는 당시 수도인 톨레도 성당보다 더 큰 성당을 짓는 것이었다. 1401년 대성당을 짓기 위한 참사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그 어떤 성당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크게 지어야 한다. 이 성당이 마무리되면 성당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세비야 대성당은 그 후 100년에 걸쳐 건축되었으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당이 되었으나 현재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 되었다.



이슬람 사원위에 건설한 세비야 대성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히랄다 종탑이다. 이슬람 사원 당시 기도 시간을 알리는 뾰족탑인 미나렛을 기독교의 종탑으로 개조한 히랄다 탑은 이슬람 사원 시절 기도 시간을 알리는 사람이 말을 타고 탑을 올라야 했기 때문에 종탑의 내부는 계단대신 말이 다닐 수 있는 경사진 길이 있다.



1번부터 32번까지 표지판이 있는 경사진 길을 따라 탑의 정상에 오르면 정상에는 한 손에는 십자가 방패를 들고 다른 한 손엔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여인상이 나타난다.  <히랄다>라고 불리는 이 여인상은 스페인어로 풍향계를 뜻하며 바람을 타고 바람개비처럼 회전한다. 24개의 종이 있는 히랄다 탑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세비야의 풍경은 지극히 아름답다.  


히랄다 탑을 내려와 성당 내부의 황금 제단으로 이동한다.



예수의 생애를 표현한 황금 제단은 높이 27미터 폭 18미터로 천 명의 성경 속 인물들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당시 라틴어를 모르는 신자들에게 성경 속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80년 동안 제작한 황금제단에 사용된 금만 20톤으로 당시의 세비야의 부와 자신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황금 제단과 마주 보고 있는 성가대석 역시 화려하다. 최고급 원목인 마호가니 나무로 장식한 성가대석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7천개의 파이프로 연결된 거대한 오르간이다. 성가대석 역시 라틴어를 모르는 신자들에게 음악으로 신앙을 고취하고자 크고 화려하게 꾸몄다.


성가대석에서 오른쪽으로 걸어 나오면 천장을 보여주는 거울이 있다.



거울에서 눈을 떼어 높이 40m의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천장을 올려 보면 그 규모와 화려함에 압도당한다.


64개의 첨두아치와 60개의 기둥이 바치고 있는 천장은 철근 콘크리트 없이 오직 돌과 시멘트를 이용해지었다고 하니 그 기술력과 정성에 놀라 수밖에 없다. 또한 천장을 마감 처리하지 않고 뼈대를 그대로 드러내어 빛이 와 닿는 뼈대의 물질적인 면과 빛의 영적인 면이 조화를 이루며 성당이 보여주고자 하는 최절정의 미를 과시한다.


마지막으로 세비야 대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콜럼버스 관을 감상한다.



콜럼버스의 관은 특이하게도 땅에 있지 않고 당시 스페인을 분할하여 통치하고 있던 4명의 왕들이 짊어지고 있다. 이는 이사벨 여왕 사후 핍박을 받았던 콜럼버스가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여 그의 말을 존중하여 관을 땅에서 떨어진 형태로 만들었다.


관을 들고 당당히 앞에 선 두 왕은 콜럼버스의 항해에 동의한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레온 왕이며 뒤에 고개를 숙인 왕은 항해를 반대한 아라곤의 국왕과 나바라의 왕이다.


카스티야를 상징하는 성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는 이사벨 여왕은 대항해를 상징하는 노를 들고 있으며 사자 옷을 입고 있는 레온 왕은 석류를 찌른 십자가 창을 들고 있다. 석류는 그라나다를 상징하는 과일로 당시 그라나다를 이슬람으로부터 회복하면서 스페인 전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난 콜럼버스의 묘가 스페인 최고 성당에 있다는 사실은 그가 대서양 항로를 개척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스페인의 전성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수백만 명의 아메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삼고 살해했지만 그가 이룬 경제적 번영과 아메리카 대륙의 기독교 전파는 서양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위대한 업적이다. 이후 콜럼버스는 세비야의 <꿈>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세비야 대성당의 주인공이 되었다.


대성당을 나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산타크루즈 지구로 이동한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산타크루즈 지구는 유대인이 살았던 지역으로 17세기에 종교 분쟁이 일어나자 유대인을 추방하고 세비야의 귀족들이 살았던 곳이었다.


알카사르의 안뜰에 있는 시청사를 지나 산타크루즈로 입장하면 중앙에 분수가 았는 이슬람식 광장이 나온다. 오렌지 나무로 뒤덮여 있는 광장 끝은 한 길은 칼레 비다 Calle Vida 생명의 길이며 한쪽은 죽음의 길이다. 시청에서 재판을 받고 광장을 거쳐 생명의 길로 걸어간 사람은 살았고 죽음의 길로 들어선 사람은 대부분 사형을 당했다고 한다.



이후 죽음은 길은 Calle Susona 수소나 길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한 때 이곳에 살았던 아름다운 유대인 처녀 수소나가 카톨릭 연인을 살리게 위해 유대인의 역모 사실을 밝히는 바람에 많은 유대인들이 죽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수녀가 되었으며 그녀가 죽은 후 그녀의 목을 이 길에 있는 철장에 오랫동안 전시했다고 한다.  


산타크루즈의 낭만적인 거리를 걷다 보면 한낮의 더위가 사라질 정도로 좁은 골목과 밀접한 집들을 만날 수 있다.



산타크루즈 거리에서 가장 좁은 골목을 키스의 골목이라고 한다. 이는 좁은 골목의 2층에 마주하는 발코니가 키스를 할 정도로 가깝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산타크루즈 지구의 중심으로 걸어가면 거룩한 성직자의 수용소가 나온다.



17세기 바로크 풍의 저택인 수용서는 가장 전형적인 세비야 풍의 정원을 가지고 있다. 퇴직한 사제들이 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곳은 한때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가져온 메독을 치료하는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수용소의 하이라이트는 종교 벽화가 남겨진 17세기 성당으로 화려한 내부와 벨라스케스의 작품 <산타 루피나>가 전시되어 있다.   




거룩한 성직자 수용소 맞은 편에 <돈 조반니>의 주인공이 머물렀던 호텔이 나온다.   조반니난 이곳에서  많은 귀족 여인들을 유혹했다.



성벽을 따라 수로관을 설치한 벽이 있는 물의 길 Calle Agua를  따라가면 로시나 발코니가 나온다. 오페라 피카로의 이발사에서 이곳 아래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면 로시나가 발코니에 그 모습을 드러낸 곳으로 유명하다.



이제 콜롬버스 기념비를 지나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하기 전에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다.



세비야의 저녁을 책임 질 곳은 가성비 최고의 타파스를 자랑하는 바라티요 식당이다. 저녁시간이면 늘 현지인으로 북적이는 이 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이베리코 흑돼지 스테이크와 문어 숯불구이이다. 이중 스페인 이베리코 반도의 데헤사라고 불리는 목초지에서 야생 도토리를 먹고 자란 이베리코 돼지로 만든 스테이크는 씹는 순간 터져 나오는 육즙과 고소함으로 배고픈 여행자의 탄성을 자아낸다.


식당을 나와 트램을 타고 스페인 광장으로 이동한다.



1929년 라틴 아메리카 박람회장이었던 스페인 광장은 과거 세비야의 영광을 상기시키는 화려한 건물들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건물 아래층의 벤치는 스페인 58개 도시의 휘장과 지도 그리고 역사적 사건들을 채색 타일로 장식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스페인 광장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 어둠이 내리고 광장의 분수와 건물에  불이 들어오면 세비야의 낭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통금이 없는 여행자는 광장의 아름다움과 낭만에 푹 빠져 끝없는 안식의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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