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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ug 13. 2020

알함브라 궁전

그라나다의 보석

스페인 남부를 여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 곳을 입장하여 궁전과 정원 그리고 성을 보다 보면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하는 여행자들도 많다. 알함브라 궁전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정보가 가져온 한계 때문이다.




알함브라 궁전에 대한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기 위해서는 이슬람교가 태동한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는 메카에서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메카는 이슬람교의 성지로 초기에 이슬람교를 창시한 우월감과 강력한 군대 그리고 토지개혁 등을 통해 탄탄한 사회조직을 가지고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매우 낙후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슬람은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확대해 나가면서 주변 국가의 문화를 용광로처럼 받아들였다. 초기에 척박한 이슬람 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선진문화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고 재창조했기 때문이다.


메카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향하던 이슬람 문화가 주변 문화를 수용하여 최고의 절정을 이룬 것이 17세기 무굴 제국의 타지마할이라고 하면 서쪽으로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그리고 스페인의 문화를 집대성하여 꽃을 피운 것이 15세기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다.



알카사바


<붉은 성>이라는 뜻의 알함브라 궁전에 입장하면 네모 형으로 간결하게 디자인된 요새인 알카사바 Alcazaba 가 나온다. 스페인에서 급속히 세력을 넓혀가던 아프리카계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들은 토착 기독교 세력보다 언제나 숫자 면에서 적었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를 점령하면 지배력을 강화하고 무력갈등을 저지하기 위해 요새인 알카사바를 만들었다.


알카사바는 궁전을 경비하고 보호하기 위해 성벽 길을 모두 연결시켰으며 주위가 한눈에 들어오게 만들었다. 알카사바의 입구를 지나면 곡물저장소와 지하 감옥소로 사용했던 27미터 높이의 벨라의 탑이 우뚝 서 있다


탑 위로 오르면 일 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시에나 네바다 산맥의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지고 그 아래로 오밀조밀한 그라나다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알카사바의 끝에 있는 벨라의 탑에는 위험을 알리거나 농민들에게 일을 지시할 수 있었던 종이 설치되어 있는데, 스페인 사람들이 무어인으로부터 이 성을 빼앗았을 때 이 종을 치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 종소리를 마지막으로 스페인에 존재한 아랍의 풍부한 문화는 사라지고 단일한 기독교 문화만 남게 되었다.


알카사바의 보호를 받는 알함브라 궁전은 지어진 순서에 따라 맥수아르 궁과 코마레스 궁 그리고 사자 궁으로 나누어진다.



1314년 북부 아프리카의 말라가에 정착해 있었던 나자리 가문 출신인 이스마엘 1세가 나스르 왕을 무너뜨리고 그라나다의 술탄이 된다.


나스르 왕은 전에 그의 형제였던 무하마드 3세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왕권을 빼앗았던 인물이었다. 왕권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이스마엘 1세는 수많은 적을 만들었지만  기독교 군대의 침략을 막으면서 왕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다.


정치적 안정을 얻은 이스마엘 1세는 종교와 교육 그리고 군사와 법 등 국가적 시스템을 안정화시켰으며 그 덕택으로 알카사바 근처의 터에 새 궁전을 만들 수 있었다.  이스마엘의 궁전 중 지금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은 넓은 정원 두 개와 맥수아르의 궁전뿐이다.



맥수아르 궁전


술탄의 사무와 회의 그리고 법집행처로 사용했던 맥수아르 방은 이후 기독교 왕들에 의해서 여러 번의 개조작업이 이루어져 방을 장식하는 타일들 중 기독교 시대에 첨가된 것들도 있다.


궁전 안에는 네 개의 대리석 기둥이 있으며 이 기둥 안에서 법 집행이 이루어졌다. 15세기 말부터 가톨릭 왕들이 이 곳을 미사를 드리는 예배당으로 개조하여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문화가 섞인 묘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층 난간은 성가대를 만들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나스르 궁전에서 여행자를 매료시키는 것은 벽에 새긴 복잡한 비문으로 어떤 비문은 아름다운 시구이고 또 다른 비문은 알함브라 내에 있는 건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벽에 새겨진 비문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비문이 보인다.  


알라 외에 승리자가 없다


또한 <행복>이나 <축복>과 같은 반복적인 단어들이 벽 비문에 자주 보인다. 이 단어들은 신의 이름으로 술탄을 보호하며 그의 권위와 힘을 보여준다.



신의 왕국, 신의 위대함, 신의 영광  

   

궁전 복도와 같은 미로를 따라 돌아다니면 밝은 색 세라믹 타일로 덮인 많은 벽이 보인다. 색깔 타일의 색깔은 이슬람 예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이 타일들은 장식적인 것과는 별도로 여름에는 벽을 시원하게 유지하고 보호하기도 한다.



궁전의 중앙에 헤라클레스 기둥의 그림이 보인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헤라클레스가 게리온이라는 괴물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 끝으로 가기 위해 아틀라스 산맥을 잘라 냈는데 이때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가 열리게 되었다는 신화가 있다. 그리고 아틀라스 산맥의 남쪽 끝과 북쪽 끝에 기둥을 세웠는데 이것이 헤라클레스 기둥이다.


작품 속 기둥에는 카를 5세의 좌우명이었던 플루스 울트라가 적여 있는데 이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넘어서 신세계를 발견하려는 야망으로 대변된다. 또한 스페인이 이미 확보하고 있던 해외 식민지를 상징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궁전의 끝에는 맥수아르의 기도실이 있다. 술탄과 그의 측근들만 쓸 수 있었던 기도실은 마호메트가 태어난 도시를 향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이슬람의 법도에 따라 메카를 향해 만들어졌다. 기도실에 들어서면 아랍형 아치가 눈에 띄는데 아치 위 테두리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기도하라. 무심한 자가 되지 말라.



기도실을 나오면 황금 정원이 나온다. 이곳은 무하마드 5세 통치기간 중 술탄이 백성들에게 강연을 하거나 왕을 보기 위한 대사들의 대기실로 사용되었다. 또한 술탄의 판결문을 적는 궁전 서기관들의 집무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아래 통로는 술탄의 개인 경호원이 사용하는 통로로 원래 상부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술탄을 만나기로 온 손님들은 경비원들의 감시하에 구불구불한 복도를 거쳐 한 사람만이 지날 수 있는 아치를 통과해야 했다.  


코마레스 궁전


맥수아르 방을 나와 정원을 지나면 알함브라의 궁전의 하이라이트인 코마레스 궁이 나온다. 그라나다의 이슬람 왕국은 나자리 왕조의 7대 술탄인 유스프 1세에 와서 전성기를 이룬다. 유스프 1세는 철학적이며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로 북으로 기독교 세력과 남으로 북아프리카에 있는 아랍 왕들의 침입을 저지할 수 있는 정치력을 가지고 있어서 오랫동안 평화시대를 누렸다.



그는 학교를 설립하고 공공기관을 만들었으며 인문과 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로 인해 그라나다는 당대 학문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그는 맥수아르 궁전 옆에 코마레스로 불리는 알람브라의 가장 큰 궁전을 지었으며 이 궁전은 사각형의 아라야네스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


유스프의 아들 무하마드 5세에 와서야 완성된 코마레스 궁전은 알람브라 궁전의 대표적인 건물로 이슬람 건축물의 이정표가 될 정도로 훌륭하게 장식되어 있다.


먼저 코마레스 외벽은 궁전의 사생활과 공적 생활을 분리해 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외벽을 장식하는 섬세한 줄무늬 모양의 황금색 장식들은 왕권의 상징과 천상 낙원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코마레스 궁의 현관에 새겨진 비문 메시지는 코란에서 가져온 것으로 신성한 왕권을 상징한다.


그의 왕위는 하늘과 땅을 넘어 뻗어 간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데 지치지 않는다.
그는 가장 높고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코마레스 궁전으로 들어가면 정사각형 모양이다. 수학자들과 건축가들은 이 방의 대칭과 정확성 때문에 이 방을 매우 좋아한다. 대사의 방으로도 알려진 이 방에는 당시 밝은 색 양탄자와 아름다운 꽃병과 악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벽과 쿠션 그리고 커튼을 덮는 데 가장 좋은 품질의 비단만을 사용했을 것이다. 사용된 비단은 화려한 색깔과 복잡한 무늬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안타깝지망 이 화려한 장식을 오늘날 우리가 더는 감상할 수 없으며 짐작만 할 뿐이다.


희미한 불빛만이 감도는 방을 들어서면 방에 있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방 중앙에 있은 왕좌 주위를 비춘다. 이로 인해 어두운 방에서 빛으로 둘러싸인 술탄을 보며 각국의 대사들은 절로 경외심을 가졌을 것이다. 또한 방의 중앙의 높이 권좌에 앉은 왕은 뒤로는 그라나다 영토를 앞으로는 아라얀 정원을 한눈에 내려 볼 수 있었다.


또한 권좌 앞 바닥에 <알라만이 승리자이다>라고 적힌 방패모양의 상징물이 있어 알라라는 단어를  밟고 함부로 술탄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신성한 술탄의 권위와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 방의 내벽이나 천장은 타일과 석공 공예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먼저 방의 하단을 두르는 타일에 새겨진 식물들의 문양은 궁전의 이미지를 낙원으로 변모시켜 놓고 있다. 삼나무는 슬픔과 사후의 영원성을, 대추야자나무와 코코넛 나무는 축복과 충족을, 작약은 부를, 연꽃은 가문의 영광을 나타낸다. 이슬람교에서는 알라신 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사람과 동물 모양 숭배를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알라신이 만든 자연이나 코란의 글귀를 가져와 끝없는 반복과 대칭 구도로 신의 섭리를 보여주는 장식을 사용한다.



타일 위로 방을 장식하는 아라베스크 문양을 살펴보면 말굽 모양의 아치 문양과 연속적인 반원 무늬 그리고 기하학적인 무늬가 반복하며 방안의 모든 것은 이미 이 세상을 초월해 신에게 다가가고 있다. 아라베스크 문양 중간에는 비문으로 가득 차 있다.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절이 새겨져 있다.


나는 축복과 번영 그리고 행복의 입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너희를 환영한다.

나는 변장하지 않고
영광과 탁월함으로 나를 장식하였으며
신은 나를 제국의 왕으로 만드셨다.


8,017개의 목재 패널로 만들어진 방의 천장은 7개의 하늘을  상징한다. 이슬람교에 의하면 알라신 앞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일곱 하늘을 거쳐야 한다고 되어있다. 하나님은 돔의 정 중앙의 점으로 상징되고 네 면이 접하면서 생기는 대각선의 경계선들은 천국의 나무들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슬람에서 숫자 7은 인간의 영혼이 신에게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며 숫자 4는 하늘과 천국을 나누는 영역을, 숫자 1은 모든 것이 알라신을 위한 것임을 상징한다.



코마레스 궁 앞으로 탁 트인 아라야네스 정원은 아랍 타일과 천국의 꽃인 아라얀 나무 그리고 사각형의 연못으로 단순하면서 아름다운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코마레스 궁에 들어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탄성을 자아내는 아라야네스 연못은 생명과 천상 낙원을 상징하는 물 위에 궁전을 그대로 반사하여 깊고 웅장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 곳에 비친 궁전의 모습은 알람브라 궁전을 알리는 모든 엽서와 사진 그리고 팸플릿에 사용된다. 또한 연못은 궁전의 온도 조절과 통풍을 도와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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