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의 황홀함
사자 궁전
아라야네스 정원을 나오면 기둥머리를 아치로 연결한 모든 벽면에는 정교한 석회 세공이 빼곡하다.
유스프의 아들 무하마드 5세는 나자리 왕국의 정치적 경제적 번영을 바탕으로 아버지가 짓기 시작한 코마레스 궁전을 완성하고 그 옆으로 사자 궁을 지었다.
사자 궁의 정원에는 124개의 대리석 기둥이 줄지어 서 있고 중앙에 12마리의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분수가 있다. 사자상 12개는 그라나다에 살던 유대인들의 12부족장이 나자르 왕조의 술탄에게 우호의 증진을 보낸 선물이었다.
술탄의 권력을 보호하는 상징적 존재인 사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생명과 모든 사물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며 분수로부터 흘러나오는 4개의 좁은 수로들은 이슬람교에 믿는 천국의 4대 강인 유프라테스 강, 나일 강, 시란 강 , 지란 강을 상징한다.
사자 분수대 주위의 열쇠 구멍 모양의 궁전 창문은 열쇠가 구멍을 만날 때 알라가 오신다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곳은 하렘으로 왕 이외의 남성은 출입할 수 없었다.
사자 궁의 하이라이트는 아벤세라헤스의 방과 두 자매의 방이다. 사자 궁의 남쪽에 위치한 아벤세라헤스의 방은 옛날 연회장으로 사용되었으며 15세기 왕의 명령으로 당시 가장 권력이 강했던 명문 가문인 아벤세라헤스 가문의 가족을 암살시켰다는 옛 소문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사각형의 중앙실과 양 옆의 구석방으로 구성된 아벤세라헤스의 방의 중앙에는 12각형의 대리석 분수가 있고 천장 윗부분에 있는 창으로 햇빛이 들어와 분수를 비추고 있다. 방 천장은 8각형의 별 모양으로 우주를 상징하고 바닥의 사각형은 지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아벤세라헤스의 방 맞은편에 있는 두 자매의 방은 주거공간으로 왕실 사람들이 머물렀던 공간이다. 바닥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대리석 묘비에서 두 자매의 방이라 불리는 이방은 역시 중앙방과 양 옆으로 조그만 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에는 작은 분수가 있고 둥근 천장에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적용시킨 팔각형의 별 모양이 수 없이 많은 접선으로 이루어져 깊이 있는 공간을 연출한다. 특히 돔 천장은 하루를 지나는 동안 16개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모카라베 장식들을 비춤에 따라 광활한 우주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늘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왕들의 방
입구 반대편에 길이가 30미터인 큰 직사각형의 방은 왕들의 방으로 왕이 연회나 파티를 열었던 장소이다. 이 방은 모카라베 장식의 아치들을 통해 7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중심에 있는 세 개의 큰 방에는 직사각형의 침실들이 붙어 있고 천장에는 그림들로 가득한 타원형 돔으로 되어 있다.
그림 중 하나에는 호화로운 의상을 입은 무어족 귀족들이 회의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나머지 두 개에는 기사도와 궁중 생활에 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특히 그중 궁중의 사랑의 장면에는 귀족 여성이 그녀에게 구애하는 두 남자인 기독교 남성과 회교도 남성의 결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궁전을 빠져나오면 사람들이 살았던 작은 도시가 나온다. 이곳은 궁전에서 일하였던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라 메디나
나자리 왕국의 사람들은 궁중의 많은 공무원과 하인 그리고 공예인들에 의해 생활할 수 있었다. 이들 덕분에 궁중의 모든 건물들이 유지될 수 있었고 모든 원료가 공급될 수 있었으며 직물가공과 장식품 가공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성벽 안에 그들이 사는 공간은 중간에 사원인 메스키타가 있었으며 사원 주위로 큰길을 따라 중심에는 귀족들이 외곽 쪽으로는 서민들의 주거지와 도자기 공예, 유리공예, 가죽 공예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1492년부터 기독교인들이 들어오면서 모든 건물들은 산타마리아 성당과 같이 새 건물들로 철거되어 메디나의 원래 모습은 사라졌다. 20세기에 와서야 유적지 발굴 운동이 시작되면서 그 잔재를 찾을 수 있었다.
포도주의 문은 무하마드 3세 시대인 14세기 초에 건설된 것으로 메디나로 들어가는 정문으로 문의 내부에 수문장들이 앉을 수 있는 벤치들이 있으며 이층에는 그들이 머무를 수 있는 방이 있고 외벽은 비문과 열쇠 모양의 상징적인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 특히 문 중앙에 <하나님 만이 승자>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샌프란시스코 수도원이 있는 자리에는 원래 귀족의 궁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중앙연못을 기준으로 네 개의 집으로 구성되었는데 목욕탕과 과수원도 있었다. 1495년 기독교인들이 들어오면서 이 건물은 수도원으로 변신하였으며 그 안에 가톨릭 국왕 부처가 1521년 그라나다 왕립 대성당으로 이장되기 직전까지 매장되어 있었다. 그 이후 수세기 동안 병영으로 또는 빈민들의 숙소로 사용되다가 1495년 호텔로 단장했다.
산타 마리아 성당은 알람브라의 제일 큰 사원인 메스키타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단조로운 외벽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라틴십자가 모양의 바닥을 기초로 세워졌다. 그 옆으로 보이는 메스키타의 목욕탕은 큰길에 자리 잡은 것으로 술탄 무하마드 3세 때 메스키타와 함께 세워졌다.
카를로스 5세 궁전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시조이자 당대의 가장 강성했던 황제였던 카를로스 5세는 세비야에서 포르투갈의 이사벨과 결혼한 후 신혼여행을 그라나다로 가게 되어서 1526년 처음 그라나다를 방문했다.
네덜란드에서 자랐지만 가톨릭 국왕 부처의 손자였던 카를로스는 알람브라의 상징적 중요성을 알았으며 그 매력에 빠져 궁전 안에 그의 거주지를 짓기로 하였다. 사각형 토대 위에 둥근 정원을 넣은 르네상스식 건물로 구성된 궁전은 자금난과 카를로스 5세의 끊임없는 원정과 갈등으로 완성되지 못하였으며 20세기에 와서야 마무리 공사를 끝내고 박물관으로 자리 잡았다.
궁전의 정문에는 펠리페 2세의 문장이 중앙에 있으며 양쪽으로 헤라클레스 신화에 나오는 장면이 보이는데 왼쪽에는 니베아의 사자가 오른쪽에는 켈로스와의 경합 장면이 보인다. 아랫부분에는 승리의 여신 니케가 한 손에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한 손에는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를 들고 있다. 이는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기독교 승리하였다는 사실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1층에는 도리아식 기둥으로 2층에는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구성된 벽에는 말을 메는 고리에 왕권을 상징하는 사자조각이 보인다.
헤네랄리페
궁전 관람의 마지막 코스인 헤네랄리페 정원은 사이프러스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무하마드 12세에 의해 세워진 술탄의 방들은 전원적인 주위 환경에 맞게 디자인되었으며 그 후계자들에 의해 개조되면서 알람브라와 함께 아름다운 전원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물과 푸른 나무들은 술탄이 그의 걱정거리를 잊어버리게 하는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하였다.
사막 인들의 물에 대한 동경은 남다르다. 물은 그들에게 생명의 근원이다. 이러한 사막 인들이 물이 풍부한 스페인과 만났으니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정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였다.
코마레스 궁과 사자의 궁처럼 헤네랄리프 궁전은 큰 중앙 분수 주위로 벽으로 둘러져 있었으나 기독교인들의 정복 후 아치와 회랑이 들어서면서 바깥으로 열리게 된다.
그래서 원래의 왕의 비밀스러운 휴식 공간은 사라지고 알람브라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로 변하였다.
파티오의 동쪽 편은 목욕탕이 있었으며 남쪽에는 술탄의 첩들이 살던 집들이 있었고 북쪽은 가장 중요한 술탄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각 건축물에 새겨진 벌집 모양의 아치는 물에 반사되어 빛을 머금은 채 끊임없이 반복되며 무궁함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술탄의 거처 입구에는 왕실로 들어갈 수 있는 다섯 개의 아치로 만들어진 현관이 있으며 그 옆으로 붙은 구석방들은 나자리 왕들이 긴급회의를 열거나 휴양지를 찾아온 손님들을 응접하는 곳이었다. 이 곳에는 이스마일 1세가 엘비라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탑이 들어서 있으며 이 탑에는 신의 영광을 기리는 비문들로 장식되어 있다.
15세기 말 가톨릭 부처가 이 건물의 확장공사를 하면서 2층이 올려지고 르네상스 스타일의 회랑이 들어서는 등 더욱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왕의 거처를 지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왕비의 거처가 나온다. 왕비의 거처 중앙에는 조그만 사각 연못에 ㄷ 자 형태의 연못이 놓여 있다. 한 때 나스르 왕조의 술탄이 그의 연인과 만나던 장소였지만 나자리 시대 이후 가장 많이 개조되었다. 특히 이곳에 있던 나자르 시대의 두 개의 공중목욕탕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곳 연못에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밑에서 당시 최고의 귀족 가문 출신인 아벤세라헤스 귀족과 왕비가 연애를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왕이 왕비와 귀족을 그 자리에서 죽이고 에반세라헤스 가문을 멸족하였다. 그리고 연못에 있던 사이프러스 나무 뽑아서 박제를 하여 경고용으로 전시하였는데 지금도 그 박제된 나무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후에 밝혀진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위의 이야기와 차이가 있다. 당시 아벤세라헤스 가문은 술탄의 자리에 오른 아버지와 왕권 다툼을 하던 젊은 왕자 보압딜을 지지했다가 정치보복을 당한 것으로 계략에 의해 밀애로 둔갑시켰다고 한다.
매년 6,000만 명이 방문하는 알람브라는 무어식 궁전의 결정판으로 1831년 최후의 무어왕 보압딜이 알함브라 궁전을 내주고 떠나며 눈물을 흘렸다.
알바이신 지구
알함브라 궁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궁전을 나와 맞은편 언덕에 있는 알바이신 지구로 가야 한다. 이 곳에 있는 니콜라스 전망대를 오르명 붉게 물든 노을과 함께 더욱 붉어지는 붉은 성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시간을 두고 노을 지는 알함브라를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니콜라스 광장 바로 옆에 있는 식당을 추천한다.
테이블이 많지 않은 2층 식당에 들어서면 활짝 열어놓은 식당 창 밖으로 알함브라 궁전의 모습에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난다. 식당 안은 능숙한 기타리스트의 라이브 연주로 슬프면서 매혹적인 <알람브라의 추억> 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식당의 메인 메뉴인 스테이크와 포도주로 감미로운 식사가 마칠 즈음 알람브라 궁전 위로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붉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바라보는 붉은 노을과 붉은 성의 모습은 무아지경이다.
시뻘건 노을이 점점 붉은 성 뒤로 내려앉고 나면 캄캄한 밤이 찾아온다. 이때 어둠 속에서 금빛의 궁전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어둠 속에 빛나는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있으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황홀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