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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ug 12. 2020

세비야 대성당

가장 크고 아름다운 성당

당시 최고의 사치품이었던 향신료와 자기 그리고 비단을 인도와 직접 무역하기 위해 바다 길을 개척한 대항해 시대를 지나면서 스페인은 유럽 최고의 무역국가가 되었다.


동방과 미대륙에서 들어오는 모든 무역 물자는 세비야를 거쳐 스페인과 유럽으로 퍼져 나가면서 세비야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세비야 사람들은 넘치는 부와 힘을 과시할 최고의 성당을 짓기로 했다.



200년을 넘게 자신들을 지배해왔던 이슬람 세력을 막 물리치고 가톨릭 국가가 된 스페인에서 자신들의 도시를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성당을 짓는 것이 유행이었다.


세비야인들의 목표는 당시 수도인 톨레도 성당보다 더 큰 성당을 짓는 것이었다. 1401년 대성당을 짓기 위한 참사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그 어떤 다른 성당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고 크게 지어야 한다.
이 성당이 마무리되면 성당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세비야 대성당은 그 후 100년에 걸쳐 건축되었으며 그 사이 유행했던 고딕 양식과 신 고딕 양식 그리고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당이 완공될 당시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당이었으나 현재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다.  


세비야 대성당은 이슬람 사원이 있던 곳에 세워진 성당으로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세비야 대성당의 안뜰로 들어서면 오렌지 나무가 가득한 정원이 나온다. 바로 이곳에 아랍식 분수가 있다. 당시 이슬람교도들은 사원의 정문인 면죄의 문을 통과하여 이 곳 분수에서 손과 발을 씻은 후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오렌지가 가득한 정원의 한쪽으로는 높은 종탑이 보이는데 바로 히랄다 종탑이다. 히랄다 종탑은 본래는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뾰족탑인 미나렛이었다.


이후 대성당 공사를 하면서 종탑으로 개조되었다. 이슬람 사원 시절 기도 시간을 알리는 사람이 말을 타고 탑을 올라야 했기 때문에 탑의 내부는 계단이 없이 말이 다닐 수 있는 폭으로 경사지어 있다.


1번부터 32번까지 표지판을 따라 탑의 정상에 오르면 28개의 종이 있다. 축제 기간에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360도 회전을 하는데 귀를 막지 않으면 서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탑 꼭대기의 한 손에는 깃발을 들고, 또 한 손엔 종려나무 가지를 들은 여인상이 있다.



여인상은 <히랄다>라고 불리는데 이는 스페인어로  풍향계를 뜻하며 바람을 타고 바람개비처럼 회전한다. 여인이 들고 있는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와 환희의 표상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 나뭇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찬미하며 환영했다고 한다. 히랄다 탑에서 바라보는 세비야의 풍경은 지극히 아름답다.  


세비야 대성당 실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은 제단이다.



은 제단


18세기 교황의 특사였던 후빌레오를 섬기는 제단으로 후빌레오 제단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1869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전달하러 스페인에 왔으며 당시 그가 전달한 무염시태는 다음과 같다.


교황의 말씀에는 어떠한 오류도 없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생을 마치고 승천하였으며  
그녀는 태어났을 때부터 원죄가 없었다.


원래는 양쪽의 날개가 있는 큰 제단이었으나 나폴레옹과 전쟁을 하면서 이를 녹여 무기로 사용하는 바람에 지금은 중앙제단만 남아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은 세공 제단인 이 제단의 중앙에는 성녀 그라나다가 있고 그 좌우로 성인 이시도르와 레안도르가 있다.


성 이시도르 560년 귀족 가문 4남매 막내로 형인 성 레안데르 죽자 세비야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서고트족 개종과 에스파냐 가톨릭 재건과 학문적 업적을 이루어냈으며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제단 아래에는 1741년 스페인 출신으로 멕시코의 대주교였던 후안 안토니오가 기증한 거대한 촛대 7개가 놓여있다.



다음으로 성 안토니아 예배당을 방문한다.


성 안토니오 예배당


조개로 만들어진 성수통이 있는 이곳은 성당의 입구 예배당이었다. 이 곳에  빛과 어둠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무리요의 <성 안토니오의 환상> 이 있다. 세비야 출신으로 17세기 황금시대를 이끈 스페인 바로크 대표화가인 무리요는 이 작품에서 성인 안토니오가 간절한 바람으로 천사를 보게 된다는 환상을 그렸는데 작품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우아하다.



1195년 포르투갈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성 안토니오는 순수한 마음으로 사제가 되었으며 아프리카에서 순교하다가 죽은 5명의 사제들을 보고 아프리카의 선교활동을 결심한다. 하지만 아프리카로 가는 도중 병을 얻게 되어 다시 돌아온 그는 아시시의 성당에서 우연히 강론을 하게 됨으로써 그의 탁월한 재질을 발견하였다.


그의 놀라운 화술과 설득력은 모든 신도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돕게 하였으며 특히 이단자들을 개종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다 1231년에 수종병을 얻어 36세의 젊은 나이로 선종한다. 늘 겸손한 삶과 가난한 자와 함께하라는 설교를 한 그의 생애에 기적이 자주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이 작품 역시 그 기적 중의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


한쪽 벽을 장식할 만큼 큰 그림인 무리요의 이 작품은 한 때 도둑이 훔치려다 너무 커서 안토니오가 기도하는 부분만 훔쳐 갔다고 한다. 이후 뉴욕 미술상에서 발견되어 이를 가져와 다시 붙였다. 그 후 성 안토니오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수호성인이 되었다. 그림을 보고 떠나면 3일간 안전을 지켜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음으로 중앙 문위의 장미창을 감상한다.



장미 창은 16세기 비센테 메나르도가 만든 것으로 4대 복음 성인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새겨져 있다.



세비야 대성당 천장


세비야 성당은 외부의 위용도 훌륭하지만, 내부는 더욱 아름답다. 내부에 있는 높이 40m의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천장은 64개의 첨두아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60개의 기둥으로 받치고 있다.


천장은 철근 콘크리트 없이 오직 돌과 시멘트를 이용해지었으며 마감 처리하지 않고 내부를 그대로 드러내어 빛이 와 닿으면 물적인 것과 영적인 것의 조화를 보여준다. 중앙 바닥에 있는 거울을 통해서 이를 감상할 수 있다.


중앙제단과 성가대석


성당 중앙으로 가면 예수의 생애를 조각으로 표현한 황금 제단이 있다. 높이 27미터 폭 18미터인 황금 제단에는 1,000명의 성경 속 인물들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당시 라틴어를 모르는 대부분의 신자들에게 성경 속 내용을 알려주고 있다.  


황금 제단을 완성하는데 80년(1480년부터 1560년까지)이 걸렸으며 여기 사용된 금이 20톤이라고 하니 당시의 세비야의 부와 자신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제단이다.  



황금 제단과 마주 보고 있는 성가대석 역시 화려하다. 당시 최고급 원목인 마호가니 나무로 장식되어 있는 성가대석에 들어서면 7,000여 개의 파이프로 연결된 거대한 오르간이 눈길을 끈다. 이 역시 라틴어를 모르는 신자들에게 음악으로 신앙을 고취하고자 성가대석을 크고 화려하게 꾸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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