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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ug 12. 2020

세비야 대성당 2

모든 권력은 신에게 있다.

성녀 안티구아 예배당


가톨릭에 의해 세비야가 정복되기 전에 천사가 나타나 페르난도 3세를 이곳에 있었던 이슬람의 사원인 모스크로 이끌었고 이 곳에 다다르자 수세기 동안 묻혀 있던 성녀 안티구아의 모습을 투명해진 벽 뒤에서 보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슬람 세력이 항복하였으며 페르난도 3세는 세비야를 1248년 12월 22일 정복했다.



중앙에는 성녀 안티구아와 그의 아들이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15세기 기존 모스크 대리석 벽에 그려진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이 작품을 모방한 성모자 그림은 스페인이 정복한 중남미 여러 성당에서도 볼 수 있다.


성배실로 이동하여 세비야 대성당을 계속 감상하자.



성배실


중앙에 고야의 <산타 후스타와 루피나>의 작품이 있다. 이들은 268년과 270년에 자매로 태어나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그릇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어느 날 이교도들의 축제에 사용할 비너스가 새긴 도자기의 제작을 요청받았으나 이를 거절하자 그들에게 끌려가 개종을 요구받았으나 단칼에 거부하였다.


이내 언니는 고문으로 죽고 동생은 콜로세움에서 사자에 던져졌으나 오히려 사자가 그녀의 발을 핥자 화형에 처해 순교하였다. 후세에 이들은 성인으로 추대되었고 세비야에서는 매년 7월 19일 이들을 위한 행렬과 축제가 진행된다. 오늘날 세비야 중앙역의 이름은 자매 중 언니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맞은편 벽면에 있는 1640년 스페인의 화가 수르바란의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가 있다. 스페인의 카라바조로 불리는 그는 허식 없는 사실주의 작품을 그렸다. 작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그는 검소한 구도로 그리며 엄숙한 신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방인 주 성구실과 참사 회의실을 감상하자.



주 성구실


성구실에 있는 아르페의 성궤는 성체 보관함으로 1580년 은 세공인인 아르페가 만든 것으로 성서 속 성찬 장면을 섬세하고 보여주고 있다. 3미터가 넘는 성궤에 사용된 은은 350kg에 달한다고 한다.


그 옆으로 성모 마리아 상과 페르난도 3세의 조각상이 있다. 페르난도 3세는 이슬람을 물리치고 기독교를 지킨 공로로 성인으로 추대되어 머리 위에 후광이 드리워져 있다.



마지막으로 보압딜 이슬람 왕으로부터 건네받았던 알함브라 성의 열쇠도 관람하자. 열쇠에는 라틴어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모든 권력은 신에 귀속되고
신이 열면 왕이 입장할지어다



참사 회의실


1592년에 완성된 이 곳은 바닥과 천장이 타원형으로 스페인 르네상스 건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벽면과 기둥 그리고 천장의 돔을 가득 매운 조각과 그림들은 돔 중앙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함께 성스러움을 보여준다. 벽에는 참사 회원들이 가져야 할 5가지 덕목이 라틴어로 새겨져 있는데 이는 <정의><믿음><희망><관용><자비>이다.


중앙 천장에는 무리요의 <무염시태>로 보이는데 이는 원죄가 없는 성스러운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 8개의 초상화는 세비야의 성인들을 그린 작품으로 페르난도 3세와 성녀 후스타와 루피나도 보인다. 바닥에는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선들이 보인다.


이제 성당 끝에 있는 보물실을 감상하자.



보물실


아래로 3명의 천사들이 떠받히고 있는 <성모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곳곳이 진주알로 장식되어 있으며 심지어 예수는 몸통 부분이 모두 진주로 되어 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진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맨 위에는 성령을 표현한 비둘기가 보인다.



맞은편에 보이는 <성채현시대>는 이사벨 페로스 카로 부인이 기증한 것으로 18세기 금세공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가운데에 보면 성체를 안치하기 위한 안치대와 이를 고정하기 위한 투명 낚싯줄이 보인다. 테두리의 뾰족한 부분은 안치된 성체로부터 빛을 발사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이를 성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780년 세비야가 구입한 이 보물은 스페인의 추기경에 의해서 로마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손잡이 부분에 묘사된 인물은 체코의 성인 네포무크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세비야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콜럼버스 관을 감상할 차례이다.


세비야 대성당에는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로부터 되찾은 산 페르난도 왕을 비롯하여 에스파냐 중세기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그중 남쪽 문 근처에 콜럼버스 묘가 있다.


콜럼버스의 묘는 특이하게도 땅에 내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에스파냐를 분할하여 통치하고 있었던 4명의 왕들이 관을  짊어지고 있다. 이는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콜럼버스의 유언에 따라 관을 땅에서 떨어진 형태로 무덤을 만든 것이다.



이 중 고개를 든 앞의 두 왕은 콜럼버스의 항해에 동의한 왕으로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레온 왕이며 고개를 숙인 뒤의 두 왕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반대한 아라곤의 국왕과 나바라의 왕이다.


카스티야를 상징하는 성을 그린 옷을 입고 있는 이사벨 여왕은 대항해를 상징하는 노를 들고 있으며 사자 옷을 입고 있는 레온 왕은 석류를 찌른 십자가 창을 들고 있다. 석류는 그라나다를 상징하는 과일로 당시 마지막 그라라나를 이슬람으로부터 회복하면서 스페인 전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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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묘가 세비야에 있지만 그는 세비야 사람이 아니다. 그는 이탈리아 서부의 작은 항구 도시인 제노아에서 태어났다. 1451년에 7월 25일에 태어난 그는 당시 자신이 태어난 날의 수호성인을 이름으로 삼는 관행을 따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되었다.


크리스토퍼에 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확실한 사실은 그가 소아시아에서 죽었으며 5세기에 터키에서 공경을 받았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에 관련된 전설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크리스토퍼는 가나안 출신의 거인으로,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을 섬기며 살기를 원했다. 오랫동안 그는 한 왕을 섬겼으나 그 왕이 악마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떠나 악마를 찾아가 섬기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십자가를 피하는 악마를 보며 누군가 좀 더 힘센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이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라는 예언자의 말에 따라 강가에 머물며 돈이 없어 배를 타고 가지 못하는 순례자나 여행객들을 자기 어깨에 태우고 건네주는 일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찾아와 그에게 강을 건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크리스토퍼는 당연히 어린아이를 자기 어깨에 메고 강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강을 건너는 동안 아이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며 마치 세계 전체를 짊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으나 크리스토퍼는 강 반대편 기슭으로 지팡이를 뻗어 겨우 버틸 수 있었다. 강을 건넌 아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지금 전 세계를 옮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바로
네가 그토록 찾던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의 이야기가 마치자마자 뭍에 닿은 크리스토퍼의 지팡이에서 푸른 잎이 돋아나고 땅에 뿌리를 내려 종려나무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업고 가는 사람을 뜻하는 크리스토퍼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 생애까지 이방인의 나라에 가서 전도하다가 순교하였다. 크리스토퍼 성인의 영향인지 몰라도 콜럼버스 역시 먼바다를 건너 먼 이국 땅까지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옮기는 자가 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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