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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봉기 Aug 01. 2023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

헨리 8세를 만나다.

영국 국립 초상화 박물관을 찾았다. 최근 엄청난 규모로 확장한 초상화 박물관의 주인공은 영국왕실이며 그 중 가장 하이라이트는 튜더왕조이다.



튜더 왕조를 이끌었던 헨리 8세는 16세기 영국 절대왕조의 상징이다. 그는 형인 아서 튜더가 병으로 사망하자 왕세자로 지명되어 왕위에 올랐다.


그는 형의 부인이었던 캐서린과 결혼을 하는데 캐서린이 가져온 막대한 결혼지참금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캐스린은 합스부르크가의 공주로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남편이 죽자 동침을 않했다는 이유로 헨리 8세와 재혼을 교황으로부터 허락받았다.


헨리8세와 캐서린은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했지만 둘 사이에 아들이 생기지 않자 헨리 8세는 이혼을 선언하고 캐서린의 시종이었던 앤 블린과 결혼을 한다.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맨스 7세는 피렌체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합스부르크가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 손잡았다가 합스부르크가의 무자비한 로마 침탈로 혼이 난 상황이었다. 그래서 합스부르크가 출신인 캐서린의 이혼을 승인할 수가 없었다.


헨리 8세는 카톨릭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영국 성공회를 세운후 영국내 카톨릭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강경한

반 카톨릭 정책을 쓰며 종교적으로 독립한다.



이후 헨리 8세는 두번째 부인인 앤마저 아들을 낳지 못하자 그녀와 그녀의 딸을 런던탑에 가두고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참수한 후 세번째 부인과 결혼하였으나 다시 후사가 없자 네번째 부인인 제인 시무어와 결혼을 하여 마침내 아들인 애드워드 6세를 얻게된다.


하지만 애드워드 6세가 단명하자 왕위는 둘째부인의 딸이었던 메리가 계승하게되고 왕위에 오른 메리는 카톨릭으로 개종한 후 자신의 엄마를 죽였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복수를 자행하여 오늘날 피의 메리로 불린다.



난소암으로 메리가 사망하자 첫번째 부인의 딸이었던 앨리자베스가 여왕에 오른다. 그녀는 아버지 헨리 8세가 준비해두었던 막강한 해군을 발판삼아 무적함대 스페인을 제압하고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개척하며 해가지지 않는 대영재국을 만들었다.


평생 혼자 살았던 앨리자베스 여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국가와 결혼했다.



헨리 8세가 앤블린과 이혼을 하려하자 이를 반대했다가 앤블린과 함께 런던탑에서 참수당한 토머스 모어의 가족초상화이다. 토머스 모어는 우리에게 <유토피아>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우여곡절끝에 열여덟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64년간 <영국의 어머니>이자 <유럽의 할머니>로 추앙을 받으며 최절정의 대영제국을 이끈 빅토리아 여왕 초상화이다.


그녀는 첫 눈에 반했던 독일 작센의 귀족 앨버트와 결혼했다. 결혼당시 빅토리아가 입었던 하얀드레스와 결혼행진곡은 오늘날 전 세계 결혼식에 사용되고 있다.


빅토리아는 아들이 자꾸 스캔들을 일으키자 이를 심하게 질타하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는 아들을 달래려 아들이 다니는 기숙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맞아 장티푸스로 사망하였다.


장례식 후 빅토리아 여왕은 윈저성으로 가서 3년넘게 두문불출하며 검은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빅토리아 여왕 맞은편에 찰스 1세가 보인다. 그는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에 의해  참수되었으며 그로인해 영국식 의회민주주의기 시작되었다.


마지막 현대초상화 전시실에서 친한 친구이지만 적당한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호크니의 자화상부터 영국을 빛낸 사람들의 초상화를 만났다.



이번에 왕위에 오른 찰스 3세의 초상화다.



수많은 번민과 고민의 흔적이 얼굴 전체에 남아 있는 왕의 초상앞에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가 느껴져 어쩐지 친숙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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