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하는 길이었다. 약속시간이 간당간당해서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금 들어오는 저 지하철을 놓치면 100% 지각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요즘 지하철역들의 특징은 입구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가 굉장히 경사가 가파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폭이 좁다. 나는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늘 한 손을 잡고 탄다. 굽이 조금이라도 높은 신발을 신으면 까딱했다간 넘어질 것 같은 느낌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탄 내 눈에 어떤 누군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한 손엔 세네 살쯤 되는 딸을, 한 손에는 유모차를 잡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가 가파르고 좁았으므로, 그녀와, 아이와, 유모차 셋 다 아슬아슬해 보였다. 뒷모습이었지만 이미 그녀의 몸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겪어봤겠지만 그맘때쯤엔 외출 시 짐이 엄청나다. 과자와 물과 지하철에서 조용히 시킬 때 필요한 장난감과… 아직 배변활동이 미숙하다면 기저귀도 가져가야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가방에는 짐으로 보이는 물건들로 불룩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려가서 아이의 손을 잡았다.
“제가 잡아드릴게요. 유모차를 잡으세요.”
그녀는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유모차를 잡았다. 흔들리는 유모차 때문에 물과 아이의 짐들이 하나 둘 떨어졌다. 그랬더니 뒤에 서 계시던 다른 분들이 주워서 아이 엄마에게 건넸다. 아이는 낯선 사람들이 자꾸 다가오니 무서웠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잘 다독여주었다. 낯선 것도 모자라서 다들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 무서울 법도 하다, 싶었다. 사탕을 꺼내 주시는 할머님도 계셨다.
우리는 지하철 역 안으로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 고맙습니다.”
나는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물론 나는 지각을 했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녀를 도왔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왜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그 경사진 에스컬레이터에 아이와 유모차를 끌고 들어갔을까.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잘못된 행동이 아닌가.
왜 자차나 택시를 타지 않고 저렇게 위험하게 가는가.
물론 그렇다. 잘못된 행동임은 분명하다. 사고의 위험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없었을 땐 아이를 둘러업고 힘들게 다니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고, 어쩔 때는 미련해 보였다. 나는 그 당시 미혼이었고, 예쁘게 차려입고 한껏 뽐낸 내 모습과 그들의 모습은 정말 차이가 컸다. 왜 예쁘게 차려입지 못하는지, 왜 아이를 낳으면 하이힐을 포기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렇게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고, 머리는 그냥 질끈 묶고, 왜 저렇게 피곤해 보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들도 미혼일 때의 시절이 있었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꾸밀 정신이(?) 생긴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내 딸이 세 살이 되던 해, 피부에 심각한 질환이 생겼었다. 당장 죽고 사는 그런 질환은 아니었지만 2-3년을 꾸준히 치료해야 하는 병이었다.
당연히 동네병원에서는 치료를 할 수 없었다. 아이의 전담의가 있는 용산까지 거의 매일 병원을 다녔다.
문제는 그 당시에는 내가 면허가 없었다는 점이다. 남편은 주말에나 병원에 데려다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지하철을 이용해 다니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1번의 환승을 거쳐야 했다. 나는 4호선으로 환승을 했는데 4호선의 문제는 엘리베이터가 적다는 점, 계단이 많다는 점, 에스컬레이터가 좁다는 점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녀와 병원 시간에 맞춰 가려면 정말 시간이 빠듯했다. 일주일에 여섯 번, 왕복으로 택시를 타는 것은 내가 만수르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았다.
진료시간이 임박했던 어느 날, 나는 엘리베이터를 찾다가 에스컬레이터에 유모차를 싣고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물론 한 손으로는 딸을 잡은 채.
잘못된 일이었다. 그러나 그날따라 아이는 늦게 마쳤고, 지하철은 오지 않았고, 진료시간에 늦으면 진료를 언제볼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가을이었음에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헝클어진 머리와 구겨진 티셔츠를 입고 낑낑대던 나는 스스로 이 상황이 한심하고 속상하고 짜증 나고 버거웠다.
그런데 그때 한 아저씨가 내 유모차를 번쩍 들더니, 입구까지 데려다주셨다. 왜 이렇게 위험하게 이용하냐고 혼을 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아기 엄마, 고생이 많아요. 하는 짧은 한 마디뿐.
그분의 그 손길 하나에 많은 것을 느낀 하루였다.
나는 그 이후로 사람들의 모든 일과 행동에는 각각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섣불리 입을 대거나, 평가를 하거나,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
경험이 중요했다.
경험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오늘 아침 만난 그 아기 엄마는 목적지에 잘 도착했을지 궁금하다. 그녀의 행동이 비록 잘못된 것이었을지언정 비난하거나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렇게 지하철을 탔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 있었을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 그녀를 도와주시고 아이를 다독여주시던 이름 모를 분들을 생각하니 그래도 아직은 인정스러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