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에 씐 게 틀림없어
백화점을 갔다가 우연히 너무 예쁜 여름 원피스를 보게 되었다. 여름 원피스이긴 했으나 가격이 꽤 비쌌다. 혹시나 해서 점원에게 물어보니 내 사이즈는 딱 한 장이 남았다고 했다. 여름옷이기 때문에 재고가 없으며, 내년에 재판매 예정도 없어서 있을 때 구매하라고 나를 부추겼다.
원피스는 너무 예뻤다. 단아하고 세련된 블랙 원피스였는데, 여름옷이지만 트렌치코트 안에 입으면 너무 어울릴 것 같았다.
어머… 저건 사야 해.
그렇지만 나는 주부인 데다, 계절도 이미 지난 여름 옷을 47만 원을 주고 산다는 게 쉽지 않았다. 나는 망설이다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옷을 자주 사지는 않지만 한번 꽂히면 어떻게든 사는 나는, 그 옷을 어떻게 사야 할지 고민했다.
나는 프리랜서로 가끔 일을 하는데, 문득 지난번 한 일의 페이가 이번 달에 정산된다는 것을 떠올렸다. 가슴이 쿵쿵 뛰고 기분이 몹시 좋았다. 얼른 그 돈이 입금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와 통화를 해보니 내가 한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수정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페이가 이번 달 말에나 들어올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딱 한벌 남은 옷인데, 그 사이에 누가 사가면 어쩌지?
기분은 표정에 드러난다. 우울한 표정으로 저녁을 차리고 있으니 남편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남편은 조용히 듣더니, 신용카드로 먼저 결제를 하라고 했다. 그러고 난 후, 페이를 받으면 그 돈으로 카드값을 내면 되는 일이 아니냐며. 나는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기다린 만큼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옷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나는 초조했다. 아직 백화점은 오픈 전이었다. 나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저 멀리 나의 그 블랙 원피스가 보였다. 나는 행복한 만수르가 된 기분으로 매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가방을 뒤지고 지갑을 아무리 뒤져도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오는 길에 가방을 소매치기당한 것도 아닌 것 같고(나머지 카드와 현금은 멀쩡했다) 지난밤에 카드를 사용한 적도 없다. 그러므로 맨날 그 자리에 꽂혀있던 카드가 사라졌다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점원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후, 휴게실로 가서 가방을 전부 뒤집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카드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카드 분실신고를 했다. 카드에 발이 달린 게 틀림없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카드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옷을 구매할 수가 없었다.
어젯밤부터 하늘이 어딘지도 모르게 끝없이 업되던 내 기분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처박혔다. 오는 내내 바보처럼 실실 웃던 내가 어이가 없었다. 나는 조용히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였다.
세상에, 이번 달 말에나 입금된다던 그 페이가 입금이 되었다는 알림이었다. 내 기분은 다시 하늘 끝으로 치솟았다. 이런 운수 좋은 날이, 이런 나이스 타이밍이 또 있을까.
나는 서둘러 다시 매장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백화점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당당하게 점원에게 다가가 그 옷을 달라고 했다.
“손님, 어떡하죠. 방금 다른 고객님이 구매하셨는데요..”
내 카드는 남편 운동복 바지 속에 들어가 있었다. 지난 주말 주유를 하러 가던 남편이 쓰고는 거기 그대로 둔 모양이다. 그러나 이미 분실신고를 했기 때문에 카드를 찾았지만 사용하지도 못한다. 하긴, 그 옷이 이미 팔렸기 때문에 사용할 일도 없겠다.
억울하고 분하다. 이제 내 수중에는 돈이 들어와 있지만 쓸 일이 없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더 짜증 났다.
오늘 저녁에는 이 돈으로 치킨이나 시켜먹어야겠다.
아, 내 카드를 가져가고 까맣게 잊어버린 남편은 한조각도 주지 않을 거다.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