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말로 들리겠지만 나는 내 생일이 싫다. 남편의 생일과 아이의 생일은 지극정성으로 챙겨주면서 정작 내 생일은 안 챙긴다. 귀찮은데 서운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뭔가 서글프기도 하다.
사실 나는 내 생일이 없어졌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내 생일 이틀 뒤 아이가 태어났다. 말이 이틀 뒤지 사실은 하루 반나절 후다.
처음엔 내 생일을 열심히 챙겼다. 남편도 나를 위해 태어나 한 번도 끓여보지 않은 미역국을 끓여줬다. 나는 이틀 뒤가 아이 생일이라 내 생일을 더더욱 챙겼다. 괜히 다 먹지도 않을 케이크를 제일 큰 것으로 샀다. 동네 잔칫날도 아닌데 잡채에 굴비에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생일이 사라질까 봐, 아이의 생일에 비해 덜 중요하고 덜 챙기는 날이 될까 봐 그랬다. 그래서 더 쓸쓸해질까 봐.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생일만 되면 남편은 출장이 잡힌다. 일부러도 아니다. 꼭 그맘때 출장이 잡힌다. 남편은 미안해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지라 짜증도 못 낸다. (이번 생일에도 남편은 어김없이 출장을 갔다.)
그냥 이해하면서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이다. 남편은 아이 생일에 내 생일과 합쳐 더 잘해주겠다 하지만, 그땐 기분이 좋지 않다. 왜냐면 그날은 내 생일이 아닌 아이의 생일날이기 때문이다. 내 생일을 챙겨준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 것이다. 속이 좁은 아내라 미안하지만, 솔직한 마음이다.
문제는 또 있다. 이틀 뒤에 똑같은 짓을 또 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 생일엔 정성껏 식탁을 차렸으니 아이의 생일엔 근사하게 외식을 하자고 했지만, 아이는 본인의 생일에 케이크 초를 불고 싶어 하고 미역국을 원했다.
그런데 또 내 자식인지라, 마음이 약해졌다.
“엄마 생일날 산 케이크를 먹어” 혹은,
“엄마 생일날 끓인 미역국을 먹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돈이 아까운걸 꾹 참으면서도 예쁜 케이크를 사고 미역국을 또 새로 끓였다. 이 일을 3-4번 반복하고 나니 그냥 내가 지쳤다. 나도 모르게 내 생일이 점점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반대로 내 생일에 근사한 외식을 해봤지만, 남편이 거의 출장 중이니 의미가 없었다. 애랑 둘이서 외식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고, 기분도 안 난다, 솔직히.
그래서, 점점 게을러졌다.
이틀 뒤에 또 케이크 사야 하는데, 귀찮아.
그냥 애 생일날 사자.
이틀 뒤에 또 미역국 끓여야 하는데, 귀찮아.
그냥 애 생일날 끓여 먹자.
그렇게 내 생일은 있는 날이자 없는 날이 되었다.
이틀 뒤 아이의 생일에 나는 또 케이크를 샀고 미역국을 끓였다. 저녁에는 남편이 실컷 미안한 표정으로 외식을 시켜줬다. 아이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나는 맛있게 먹었지만 또 맛이 없었다.
생일이 지나니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