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사랑까지 계획해 버리는 극 J들에게
”연애할 때 기대하는 게 너무 많아서 힘들어요 “
사랑에 빠지면 점점 바라는 게 많아진다.
마음이 커져 갈수록 기대감도 커진다.
기대가 진정한 행복으로 우리를 이끌어준다면 괜찮지만
많은 경우 우리가 기대하고 계획한 것들은 덫이 되어
헛된 것에 집착하게 하거나
도달해 봤자 행복하지 않은 목표를 좇게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연구가 있다.
예일대 심리학과의 롭 B 러틀리지 교수 연구팀의 연구에서는
실험 참가자들이 돈을 딸 수 있는 게임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게임 시작 전, 미리 자신이 벌 것이라 기대하는 액수를 정하도록 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이 딴 돈의 액수가 얼마인지는 그들의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처음 기대했던 액수와 결과의 차이였다.
기대치에 얼마나 부응하는지가 행복감과 관련이 깊었다.
돈을 딴다는 기대가 전혀 없었던 사람은 아주 적은 돈이라도 얻으면 행복해했다.
기대가 전혀 없다면 아주 작은 것에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사랑도 마찬 가지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보상에 대한 기대가 없을수록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나 기대를 내려놓으라는 것이 꼭 모든 기대를 없애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뭐고,
내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없어도 될 것은 뭔지 제대로 설정하고
그 이외의 것은 전부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압박으로 품은 기대를 전부 내려놓고 진짜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준을 세워보라.
기대를 내려놓을 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희생이 아닌 신뢰감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희생당해 상대를 위해 중요한 것을 포기한다고 느끼면
평생을 희생자적, 순교자적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보상심리로부터도 자유롭지 않다.
이런 마음은 결국 억울함으로 쌓이고 그 억울함은 상대를 향한 적의가 되어 결국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희생을 기대하기 시작하면 감사하는 마음도 적어진다.
상대의 희생 또한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빚으로 느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건 시장 경제의 논리지, 사랑의 논리는 아니다.
이 한 가지를 명심하면 된다.
”기대하는 마음이 감사하는 마음을 죽인다. “
물론 사랑하는 상대가 나를 도와주고, 지지해 주고, 나를 위해 희생해 줄 것을 기대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신경과학적으로 이런 성향을 조절하도록 진화해 왔다.
기대를 조절할 수 있도록 신경 회로가 연결되어 있다.
의도적으로 상대에 대한 기대를 덜 하고,
받은 것보다 더 주도록 진화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완벽한 데이트에 대한 각본까지 작성되어 있을지 모른다.
5시부터 분위기 좋은 풍경을 바라보며 산책,
6시부터 조명이 예쁜 식당에서 식사 등등…
아무리 로맨틱하고 완벽한 저녁 데이트가 계획되어 있다 해도
상대가 너무 피곤해한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다시 물어볼 수 있다.
지금 무엇이 중요하냐고.
저녁 데이트에 대한 기대가 빼곡히 적혀 있는 각본을 고수할 건지,
아님 상대와 자신을 위해 그 기대를 내려놓을 것인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때로는 고층 빌딩에서 도심을 내려다보는 전경의 럭셔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보다
뒷마당에 편하게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혹은 따뜻한 이불속 서로의 품에 안겨 포근한 밤을 보내는 것이
처음의 복잡한 계획보다 더 낭만적일 수도 있다.
김영하 작가는 그의 저서 <여행의 이유>에서 이렇게 말한다.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너무 고심하지 않는 편이다.
운 좋게 맛있으면 맛있어서 좋고, 대실패를 하면 글로 쓰면 된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는 죽지 않는 비결을 기대하며 모험을 떠난다.
그러나 길가메시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
즉 ‘불사의 비법‘ 대신 ’ 죽음이란 피할 수 없다 ‘는 통찰을 얻는다.
영화와 소설 등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추구의 플롯’을 따라 흘러간다.
추구의 플롯은 두 가지로 나뉜다.
주인공이 대놓고 드러내어 추구하고 기대하는 외면적 목표,
그리고 주인공 자신도 잘 모른 채 추구하는 내면적 목표.
잘 쓰인 이야기는 보통 외면적 목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간절히 원하던 것을 달성하도록 하고
주인공은 그로 인해 성장할 뿐 아니라 행복해지며
결과적으로 관객에게도 깊은 만족감을 준다.
우리는 명확한 외면적 목표를 추구하고 달성하길 기대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한 학자는 마이너리그 야구 선수들을 연구했는데,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 ’ 나는 커서 마이너리그 선수가 될 거야 ‘라는 생각으로 야구를 시작했던 아이는 없었다고 한다.
당연하다.
모두의 꿈은 메이저리거, 그중에서도 화려한 성적으로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는 스타플레이어다.
그러나 스타플레이어는 고사하고, 전체 선수 중 메이저리그에서 한 번이라도 뛴 선수는 10%도 채 되지 않는다.
마이너리거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이들은 대부분 원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얻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선수 생활엔 아무 의미도 없었을까?
그들의 인생은 불행한 인생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그들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어도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최선을 다해 경기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은퇴 후에는 코치가 되어 후배를 양성하거나 다른 가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설령 우리가 원하고 기대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얼마든지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여행을 떠나며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대하는 계획을 수행하고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과 같은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 뜻밖의 사실’이나 예상치 못한 실패로 인해 얻어질 것들을 기대하며 엉뚱한 결과를 의도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런 바람은 그야말로 ’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 그걸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이상적인 이성에 대한 이미지를 품고 있다.
취향이라고도 하고 이상형이라고도 부른다.
천생연분인 상대를 만났지만 머릿속 이상형에 대한 기대에 집착한 나머지
우리는 그 상대를 못 알아볼 수도 있고,
조건만 보고 완벽한 상대가 나타났다 착각해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면 외로운 사람으로 늙어갈 뿐이다.
책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서는 외로운 사람이 가진 특징을 설명해 준다.
외로운 사람들은 과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사실 외롭지 않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도 비슷하고, 키도 비슷하고 몸무게도 비슷하다.
외롭지 않은 사람들 못지않게 매력적이며 좋은 교육도 받았다.
그럼 외로운 사람들은 단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뿐일까?
아니? 외로운 사람들은 심지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능숙한 모습을 보인다.
이 부분이 가장 놀라운데 외로운 사람들 역시 외롭지 않은 사람들과 비슷한 만큼의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낸다고 한다.
오직 단 한 가지만 다르다.
그건 바로 관계에 대해 스스로가 느끼는 방식이다.
<데이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인트로) 연애에서의 행복도를 예측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특성은 무엇일까?
상대방의 외모? 수입? 직업? 지적 수준? 다정함?
연애하는 상대의 모든 특징을 합친 것보다 무려 네 배 정도 연애의 행복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다.
바로 자기 자신에 관한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는가이다.
연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사람은 연애를 하면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다.
- 삶에 대한 만족
- 안정적 애착 유형
- 성실성
- 성장 마인드셋
즉, 우리가 아무리 궁합을 따지고 상대방의 스펙을 감별해 봤자 그것이 우리가 그와 교제했을 때의 행복도를 예측하지는 않는다.
연애할 때 행복도를 예측하는 건 상대방이 지닌 특성이 아닌, 자신이 지닌 이 네 가지 특성이다.
결국 누구와 관계 맺느냐보다 내가 나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의 대한 행복의 책임이 상대에게 있는 것 마냥
상대의 스펙뿐 아니라 나한테 다정하고 잘해줘야 하고
나조차 잘 사랑해주지 않는 나를 마음을 다해 사랑해 주길 기대하고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길 바란다.
좋아하는 만큼 더 그렇게 된다.
아무리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무수히 많은 표현을 해주어도
그 보다 더 높은 기대를 쌓고 실망한다.
좋아한다는 마음의 본질은 이기적인 속성이기에 그렇다.
상대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을수록 우리는 좀 더 감사에 열린 마음이 된다.
좀 더 많은 것을 수용할 수 있다.
사운드 사운드 다니엘의 영상 <권태기와 사랑이 식었을 때의 결정적인 차이점>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는 모두 원하는 대상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여자아이들 같은 경우엔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 때부터 ’ 단짝친구‘라는 개념을 만들어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를 묻는다.
중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다.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주변에 특별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은, 성장 과정에서 함께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천천히 서로가 특별 해졌다기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이름을 붙이면서 특별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우리 오늘부터 1일이야! 너 남자 친구, 나 여자 친구, 이제부터 우리는 사귀는 사이!”
우리는 서로의 관계를 ‘연인‘으로 명명하는 순간에
만난 지 얼마 안 된 낯선 타인조차 특별한 관계로 규정할 수 있다.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을 때 ’ 연인‘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행위,
즉, 아이덴티파이를 하기 전까지는 특별한 사이로 나가기가 굉장히 어렵다.
가능하더라도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이성과 호감으로 시작해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해
진정으로 서로에게 특별해지려면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마음이 급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기 때문에
그 관계에 ’ 연인‘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치팅을 통해
자신들의 성급함과 불안감, 소유욕을 해소하려 한다.
만난 지 고작 몇 달, 불과 몇 번의 데이트로 우리는 서로 ’ 연인‘이라는 칭호를 붙여
서로에게 엄청나게 특별한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연인이 되기로 한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된다.
함께 쌓은 서사와 시간과 무관하게 상대방에게 성심성의를 다해야만 한다.
많은 시간과 비용과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사랑에 빠져 서로를 ‘연인’이라 규정하고 관계를 시작한다는 건 마치 서로에게 1억씩 빚을 지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어찌 보면 부당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이편이 인간의 본성에는 더 맞다.
인간의 자아는 강하고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명명행위가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자아가 매우 약한 인간은 서로 좋아하는 대상과 어떤 관계를 정의하지도 않으면서,
불안해하지 않으며 상대와 함께 하는 앞으로의 시간들을 버텨낼 수 없다.
다만, 이걸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서로 빚을 지고 있을 뿐이지.
그 1억은 실제 존재하는 자산이 아니라는 점을.
실제 자신이 벌어서 적금한 돈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그저 서로에 대해 별로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타인과 다를 게 없지만
일단 특별한 ’ 연인‘관계로 규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대하는 것뿐이다.
진짜로 빚진 1억이 내 자산으로 잡히길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인간은 간사해서, 쉽게 그 사실을 잊고 시간이 지날수록 빚쟁이처럼 군다.
연인이라는 말로 1억 만큼의 상대의 관심과 친절, 사랑과 호의를 누리고자 한다.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쉽게 불만이 생기고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빚진 1억을 차곡차곡 적금을 쌓아가면서 느리지만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실제 자산으로 만들기보다 시작부터 자의적으로 너무 비싼 값을 매긴 사랑에 보상받고 싶어 한다.
서로의 애정 계좌에 실제로 쌓여 있는 금액은 고작 10만 원 정도일 텐데 말이다.
그렇게 서로 빚에 허덕이는 관계가 시작된다.
명심할 것은 이것이다.
빚은 우리의 마음에만 존재할 뿐이지, 우리는 실제로 서로 갚아야 할 채무가 없다.
상대의 관심과 친절, 사랑과 호의는 당연히 기대할만한 것이 아니다.
내가 받아야 할 것을 못 받았다고 억울해하는 순간, 꾸준히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는 어렵다.
이런 식의 관계는 의존적인 관계가 되기 쉽다.
의존적인 관계는 당신이 A를 해주면 나는 B를 해주겠다는 조건이 정의되기 시작한다.
”연인인 나를 위해 이 정도도 해주지 못한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야 “라는 식이다.
“나를 좋아한다면 당연히 나를 칭찬해 줘야지.”
“나를 사랑하면 이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지.”
상대에 사랑에 기대하는 것이 점점 쌓여 간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따지면, 명명행위라는 인간이 부여한 의식적 명칭 외에
상대는 진짜로 당신을 그렇게 대해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 상대에게 의존하고 사랑을 이상화하여 상황을 더 극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결국 기대다.
그렇게 되면 주고받는 사랑은 불가능해지고 점차 사랑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당신의 감정에 보상받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결론.
행복한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받고자 애쓰지 말고 그저 사랑해야 한다.
그저 주고받는 사랑에서는 의존적인 관계가 없다.
당신의 애정 어린 감정이 응답받기를 원한다면
역설적으로 오히려 애정을 기대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저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당신은 지금까지 계획하고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깊고 의미 있는 경험을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