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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예상치 못한 모습을 발견했을 때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

내가 그를 처음 좋아하게 되었을 때는 그를 그저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사람이라고, 성숙하고 섬세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정확한 단어를 고르느라 고심하는 표정, 잘 정돈되고 다듬어진 논리적인 말,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을지 모를 상대를 고려하여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점 등. 그의 생각이나 과거는 모르지만, 그저 함께 있을 때 그가 보여주는 사려 깊은 모습에 끌렸다. 그러나 관계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서로의 내면을 점점 더 들여다보는 기회가 생긴다.

그와 사귀자마자 제일 처음 알게 된 사실은 맞잡은 손끝이 거칠고, 상처가 많다는 것이다. 그의 손에 이렇게나 많은 상처가 있으리라고는 그의 손을 잡기 전까지 생각지도 못했다. 그에게는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그의 손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도 없다는 사실이 스스로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그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끝나는 지점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제대로 관찰해 본 적도 없었다. 손끝으로 어루만지는 그의 손끝은 상처를 입고 찢겨 아문 자국이 많고 거칠었다. 상처투성이인 거친 손끝을 보며 그의 과거와 내면을 짐작해 보는 순간,

“애정결핍인가 봐요.”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피가 날 때까지 스스로를 물어뜯으며 다듬고 정돈하여 상처 입히는 것은 정말로 그가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시도였을까? 과거의 상처를 해결하지 못한 채,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채우기를 바라왔을까? 그의 손톱을 보고 나는 그 습관을 고치기보다는, 상처가 날 때마다 약을 발라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싫어하는 민트초코향의 핸드크림을 찾아보았다. 싫어하는 향을 물어뜯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결핍이라면 내가 채워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될 미래라도 보고 온 듯이, 나 또한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사랑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도, 불안해도 괜찮다고 안심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랑.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고 들었으나 내 주변에는 그런 버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때문에 그런 사람을 처음으로 직접보게 되었고 이게 대체 어떤 심리인 건지 난생처음 궁금해졌다. 막연하게 불안감을 해소하는 수단 정도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그는 어떤 연유로 언제부터 자신의 끝을 갉아먹기 시작했던 걸까? 유명한 상담가나 정신의학가가 설명하는 영상을 몇 개 찾아본 뒤에도 궁금증이 시원하게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런 낙이라도 있어야죠.”

그의 습관에 대해 그가 다니는 헤어숍의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저 일종의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단순한 행위에 불과하니까, 누구나 해소 장치는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따뜻한 의도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내가 궁금한 것은 조금 더 깊은 것, 조금 더 안쪽에 있는 행위라는 단서로 포착할 수 있는 그의 이면이다. 우리가 가진 ‘버릇이나 ‘습관’은 단순히 반복되는 행동이 아니라, 어떤 무의식적인 상처나 불안감의 표현이라는 것이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단순히 긴장을 풀기 위한 반복적인 행동, 그 뒤에 숨겨진 감정적인 이유에 대해서, 그가 느끼는 불안이나 결핍의 근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는 버릇이 하나 더 있다. 글을 쓸 때, 종종 노트북이나 마우스 등을 가볍게 들었다 내려놓으며 탁탁 친다. 나는 이것이 마치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쓸 것이라는 결심처럼,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엄지 손가락으로 가볍게 노트북의 아랫단을 들어 올렸다 내려놓는다. 혹은 한 손으로 가볍게 노트북이 접힌 옆면을 들어 올렸다 내려놓는다. 그러면 탁탁하는 소리가 난다. 5번의 한번 꼴로 물건을 놓은 후에 반복적으로 쓸어내리곤 한다. 괴롭히듯이 주변 사물을 잡고 흔들기도 한다. 어떤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 그의 깔끔한 성격으로 노트북의 각을 맞추는 건가 유추했으나, 계속 지켜보니 그냥 ‘탁탁‘하는 소리를 내는 게 목적인 것 같다.

“이거 제 틱이에요.”

이 또한 마찬가지로 내 주변에 틱을 가진 사람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에 나는 틱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틱이란 갑작스럽고 빠르며 반복적, 비율동적, 상동적인 움직임이나 소리를 말한다. 특정 상황뿐 아니라, 언제든지 제어할 수 없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렇게 글을 쓸 때만 나타나는 것도 틱이라고 볼 수 있을까? 혹시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틱은 손으로 사물을 들었다 놓는 식으로, 복합적인 근육을 사용하는 게 특이하다. 틱 자체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좋다고 하기에 그저 관찰하고 있는 중이다. 심한 정도는 아니라 걱정은 안 되는데, 그저 궁금할 뿐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글을 쓰는 동안 어떤 모습일지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사귀게 되면 알게 되는 사실들. 이전까지는 어떠할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예상치 못한 면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그와 가까워지면서 그를 꽤 많이 알아가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우리는 앞으로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예기치 못한, 알 수 없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무엇을 발견하게 되든 단순히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우리 내면에서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는 무의식적인 부분을 과정으로 포착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면들이 흠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딱히 거슬리지 않으며, 비밀이라 할 것도 아니며 그저 저마다가 품고 있지만 사귀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었던 여러 가지 특성으로 느껴진다. 그가 나에게 불안과 상처의 흔적을 보여주었으니 어떤 특별한 위로와 사랑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나에게 그런 부담은 없다. 그저 그가 나에게 여러 모습들을 보여준다는 것, 여러 모습을 서로 이해하려는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귀중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의 여러 모습은, 단순히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도리어 나에게 중요한 물음을 던지게 하기도 한다. 혹시 나에게도 이런 예상치 못한 면들이 있을까? 그는 나에게서 뭘 발견하게 되었을까? 그와 함께 하면서 나 또한 꽁꽁 감추었던 나의 불안한 부분을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라도 나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 또한 나의 불안이나 과거의 상처를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그 관계 속에서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감정적이 되기도 하고 아주 심각하게 유치해지기도 한다. 굉장히 짜치고 서운해하고 잘 삐지는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연애를 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불안이나 상처를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 그게 사랑의 특권이니까. 그를 통해 돌아보게 되는 건 돌고 돌아 결국에는 또 나 자신이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그런 예상치 못한 면들이, 결국 우리의 관계를 더 특별하고 깊게 만드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그에게 어떤 모습을 내보이더라도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믿음이 두터워지는 것을 느낀다. 사귀게 되면 알게 되는 것들, 그것은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고, 서로의 상처와 불안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순간이다. 서로의 예기치 않은 면들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점점 더 성장하고, 서로에게 더욱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사귀기 전에 알았던 단순한 외적인 모습 너머의 과거, 아픔, 이전연애에서 어떻게 상처 입었는지, 상처 입었을 때마다 어떤 방식으로 대처해 왔는지 모두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서재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비가 그친 후의 선선한 바람이 부는 봄날의 오후다. 우리는 책상 앞에 나란히 앉아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옆에서는 그가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다. 그럴 때면 나는 그의 행동을 바라보며, 말없이 그의 손을 잡는다. 그는 순간적으로 약간 놀란 듯하다가, 나의 손을 가볍게 쥔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있는 동안, 그의 손끝에 있는 작은 상처들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가 손끝을 물어뜯으려 할 때마다 쳐다보면 그는 흠칫 놀란다.

“어떻게 뜯을 때마다 바로 알아요? 센서가 달려있는 건가? 무서워요.”

그는 나의 시선에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을 느끼는 것 같다. 물론 그가 아주 작게라도 스스로 상처 입히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사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다. 그저 가만히 그를 지켜보고 싶다. 그가 보여주는 작은 불안의 표현들이 어떤 의미인지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 또한 그의 일부니까 그가 보여주는 또 다른 면들을 찬찬히 발견해 나가고 싶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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