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단상
https://youtu.be/ru-O5L2uxho?si=sySxC8VQGT1BS0_N
은빛 햇살로 물든 커튼 아래, 너울지고 일렁이는 그 파도 같은 주름 밑으로 해가 떠올라 연주하는 그 희망찬 노래에 신나 덩달아 밝아진 새하얀 시트가 박수갈채 같은 부스럭 소리를 낸다. 깨끗한 파란 하늘 위에서, 몇 겹이고 자신을 막으려는 그 성난 파도 아래까지 잔잔히 비추는 태양은 어떤 눈빛으로 자신의 뜨거움을 견디는가. 그는 쉬지 않고 타오른다. 우리가 등 돌려 우리를 어두운 곳으로 몰아세울 때도, 그는 우리의 또 다른 면을 나무라지 않고 묵묵하게 내리쬐고 있을 뿐이다. 그를 따라 물들어 가는 이 작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듯이, 아주 묵묵하고도 침착한 모습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가장 높이 떠오른 태양을 따라 하얀 플래카드에 저마다의 응원의 메시지를 들고 쫓아가며 그를 응원하는 모습이 흡사 태양의 콘서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까지, 의식이 깬 채로 애써 잠드려다 말고 그 환호성을 듣고 있었다.
유리로 틈 없이 막혀 있는 창가 너머에 바람소리 같기도 한 자동차 배기가스가 불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착각했나 머뭇대고 있을 때쯤, 경쾌한 경적을 울려 자신도 이 박수갈채를 쏟아내는 군중 속에 있노라고 소리 지른다. 나는 그들이 쫓아다니는 태양이 아닌, 관중들에게 의식을 옮겨 그들의 함성을 엿듣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저 명상하듯 들려오는 소리를 내 안으로 들여보내는 형태에 가깝다. 문득 그것을 자각하고 나니, 아늑하고 정갈하게 나를 둘러싼 방안이 점점 또렷해 보인다. 의식이 맑아지고 있는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의식이 돌아오면 제일 먼저 자각하는 것은 더부룩한 내 속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다리도 부어 있는 상태다. 소화가 되지 않은 채로 잠든 자신을 조금쯤 원망하며 목으로 물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세수를 하고는 길어진 앞머리를 발견해 살짝 올려다보았다. 나의 일부분이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것에 관계없이 나는 여전히 나였다. 이 사실이야 말로 태양이 그토록 침착하게 있을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니었을까. 비가 오지 않는다면 산책을 나가도 좋겠다. 평소에 가고 싶었던 그곳으로 훌쩍 떠나볼까. 아니면 속이 비워지고 편해질 때까지 아무 자극도 느끼지 않은 채 책 속에 파묻혀 있는 것도 좋겠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며 계속 일깨워 주려고 하는 몸과는 반대로, 마음은 수많은 곳을 떠돌고 있었다. 그들의 지배자도 추종자도 아닌 나는(굳이 말하자면 동행자에 가깝겠다) 그들이 하려는 걸 지켜봐 주고 인정해 주는 수밖에 없다. 딱히 그들을 화해시켜 줄 마음도 없다. 난 평화주의자가 아니니까. 마음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얘기를 할 뿐이고, 몸도 의견이 있을 때마다 강력히 주장할 뿐이다. 나는 나의 마음이 아니다. 몸도 아니다. 그저 그들을 바라보며 관조하는 존재에 가깝다. 그 사실을 자각하고 나니, 나를 설득하려 날뛰던 나의 일부들이 잠잠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결국 행선지는 딱딱한 책상 위에 펼쳐진 나 자신이었다. X월 X일. 작년 이맘때쯤엔 피크닉 가는 이들을 부러워했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따뜻한 햇살 아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이제까지 못했던 쓸데없는 얘기들을 나누는 기회가 나에게도 있었더라면. 아직까지도 무의식적으로 특별하게 여기고 있는 이 날짜에 도달하게 되기를 기다려 왔다. 막상 기다려온 오늘은, 작년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으로, 훨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어떤 오늘을 기대했던 걸까. 이 순간에도, 나는 마음 한편에서 조용히 고개를 드는 네가 보인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꽤 자주 우리가 함께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네가. 너를 그리다가, 네가 그리는 나를 그리다 보면 마음이 시큰해진다. 옆자리가 비워진 풍경이 어딘지 어색하다. 새어 들어오는 하얀빛 가운데 뒤돌아 거기 있을 너를 그린다. 기껏 여행의 상징과도 같은 새하얀 시트와 커다랗고 푹신한 베개 사이에서 깨어났지만 결국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네가 태어남의 온기다. 더 먼 곳을 향한 여정을 떠나면서도 나는 아직 너를 떠나 멀리 가지는 못했다.
평소에 좋아했던 책 하나를 집어 그다지 튼튼하지 않은 책 받침대에 걸쳐 본다. 힘없이 책을 따라 다시 오므려져 버리는 탓에 손으로 붙들어 몇 번씩이나 힘의 균형을 이루는 위치가 어디인지 찾아주어야 했다. 겨우 붙잡지 않아도 책을 펼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장소까지 마중을 보내주었다. 그 뒤를 따라 동공이 펼쳐진 활자의 모습을 이리저리 훑는다. 이 책은 정말 신기하게도 집어 들고 펼칠 때마다 나에게 꼭 맞는, 아주 적절한, 그때 딱 필요한 조언을 해주었다. 점괘와도 같은 문장을 기대하며 책의 가르침 사이로 시선은 널을 뛴다. 꼭 맞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듯이. 그러나 너무 기대했던 탓일까.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과 함께 찾아오는 쾌감은 어디 멀리 달아나 버린 것 같다. 이런 날에는 평소 안 하던 짓들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한가득 쌓인 책을 따라 내려가듯이 손가락으로 한 번 훑고는, 몇 해전 호기심에 샀다가 이제는 잘 읽지 않는 소설을 하나 펼쳐 들었다.
쉬이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의 끝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들며 나도 모르게 입 안쪽의 가장 여린 살을 잘근 씹었다. 전에 읽고 깊게 남아 몇 번이고 곱씹어 봤던 문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느낌이 이상하게 맘에 들었다. 견뎌낼 수 있는 만큼의 아픔, 적당히 외롭고 무기력한 기분이 오히려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은은한 금빛 조명이 온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내 생각에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빛, 향, 소리인 것 같다 조명 하나가 공간 전체를 채우듯이, 기분 좋은 향기는 공간 전체를 메우며 퍼져나간다. 그리고 사각지대 없이 구석구석 울려 퍼지는 음악의 소리가 이 장소에 대한 인식을 뒤흔들 만큼 아주 크다. 저 구석을 차지하는 작은 인테리어 액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공간을 눈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귀로, 코로, 손 끝으로, 그리고 온몸을 감싼 피부로도 느낀다.
돌 같은 거친 질감이 느껴지는, 회색으로 덕지덕지 칠해진 벽 위로, 얼룩말 같은 그림이 걸려 있다. 오직 흰색과 검은색의 희미한 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 그림은 예술을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는 곳에서 주위와 어우러져 있는 듯 없는 듯 걸려 있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 같았다. 저 작품에 이름을 붙인다면 '흔들리는 햇살'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없으면 티가 나지만 있다고 내색하지는 않는, 주인공보다는 주변인으로 벽 한 면을 채우는 액자와 묵묵하게 이 세상을 채우는 햇살은 닮아있으니까. 나는 어딘가에서 한기를 느껴 옷을 한 겹 더 걸쳐 입었다. 매끈하고 불투명한 표면 위로, 어두움 속에서 은은한 조명을 받아 희미하게 보이는 자신의 실루엣이 비췄다. 무슨 표정인지 잘 파악할 수 없지만, 굳게 다물어진 입술과 곧은 콧대 위로 무관심해 보이기도 하고 어딘가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눈빛은 마치 슬픔도 기쁨도 느끼지 않는 사람 같았다.
오전 10시 47분. 창틀을 때리는 빗소리가 느껴져 나가기는 포기했다. 고립됨과 동시에 느껴지는 안락함. 더불어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열망이 강력하게 느껴졌다. 이곳을 벗어나 나간다면, 나는 아마 카페나 도서관에 틀어 박혀 지금과 똑같은 행위를 하겠지. 단지 주위에 누군가 있음에 안심하며. 간접적으로나마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을 채우면서. 그러니 사실 어떤 행위를 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하느냐였다. 빗소리가 점점 거세어져 가면서 이 공간을 가득 메우는 음악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소리를 듣고 있자니, 땅의 어떠한 빈틈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듯, 가득 퍼붓듯이 쏟아지는 물줄기들이 쉬이 그려진다. 아직도 누군가를 찾아 나서려는 내 마음을 단념시키듯이, 그렇게 타이르고 있는 것이다.
단지 혼자 있다는 사실이 나를 공허하고 외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내가 쓸쓸함을 느끼는 건, 어딘가 아린 듯이 먹먹해지는 건 내가 원하는 사람이 나를 원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내가 반대의 입장이 되어, 누군가를 거절하면서도 함께 아프게 된 것이다. 내가 그를 원하지 않을수록 나는 더욱 쓸쓸해진다. 사람의 관계란 것이 망망대해 속에서 저을 노도, 펼칠 돛도 없이 떠도는 두 부표가 만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끝없이 반짝이는 푸른빛은 우리에게 희망도 주지만, 지평선 멀리까지 과도하게 펼쳐진 그 장엄함에 떨게 만드는 두려움도 함께 안겨 준다. 우리는 파도가 이끄는 대로 떠다니다 부딪혔을 뿐이다. 파도가 휩쓸어 그대로 당신을 지나쳐 버리면, 나는 그저 부표 위에서 지나쳐버린 쪽을 허망하게 바라볼 뿐이다. 나에게는 파도를 거스를 방법이 없어 다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둘 뿐이다. 내가 물고기였다면, 하늘을 나는 새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나만 그런 특권을 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 모두 부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늘도 정처 없이 떠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빠져들다가 어느새 빗물의 연주가 끝나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음악에 따라 나의 기분도, 하루의 테마도, 공간의 느낌도 달라지지만 반대로 내 기분에 따라 음악의 선율도, 리듬감도, 음악이 주는 메시지도 다르게 느껴진다. 다시 한번, 벽 위에 걸린 '흔들리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이 그림이 그저 흘러가는 강물처럼 보인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찾아서 하는 사람은 어떤 기억이나 사실에서 멀어지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경쾌한 외국 음악의 볼륨을 높이며 생각했다. 낮은 기타 리프의 선율 위로 도망치듯 곡선의 멜로디를 그리는 높은 목소리가 뻗어 나가는 것을 잠자코 듣다가 이내 꺼버리고는 원래의 적막한 공간으로 되돌린다.
[이따금 속이 쓰리고 기절할 것 같이 피곤해지는 증상은 죽음이라는 잔인하고 거대한 단어 앞에서는 아주 괜찮은 정도로 쳐줘야만 했다.]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살짝 걸을 겸 식사를 하러 나선다. 분명히 어제 이쯤에서 할인 중인 라면을 가판대에 진열해 놓은 편의점을 지나치며 적당히 한 끼 때울 식사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비도 오고 쌀쌀한 바람이 부는 지금의 날씨에 딱이다. 언젠가 답례의 표시로 받은 커피 교환권으로 카페에서 얼그레이 티를 하나 샀다. 너무 오래 우린 탓에 씁쓸함이 강하게 느껴지는 맛이었다. 향긋한 얼그레이 찻잎이 나를 포근하게도, 어지럽게도 만든다.
이 여행은 내가 오래도록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자유롭게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생각들을 하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일. 마음을 자유롭게 놔두고 그 방향을 지켜보고 싶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면 또 어느 쪽으로 가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보채는 내가 있다. 무언가 아주 큰 결심을 해야 할 것 만 같다. 그리하여 돌아가는 길엔 변화한 나 자신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갔던 기억이 그다지 없다. 발 길 닿는 대로 향하는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푸르름을 넘어 하얗게 밝아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분명 비가 와서 잔뜩 구름이 낀 것일 테지만 빈틈없이 하얗게 들어찬 하늘이 맑은 하늘보다도 더 밝게 느껴진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내일은 버스를 타고 이 주변을 이곳저곳 여유롭게 둘러보고 싶다. 아무 계획함 없이 마음껏 실망까지 만끽하고 싶다. 내가 머물고 있는 방은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객실이다. 뷰를 중점으로 두고 있지 않아 무려 4중으로 된 커튼으로 창문이 가려져 있다. 오리엔탈 풍 은은한 조명을 하나 켜고, 창문을 꼼꼼하게 가려 밤인지 낮인지 모르게 해 놓은 인테리어가 썩 마음에 들었다. 다도 식기가 있어 찻 잎을 오랫동안 우려내기 위해 멍 때리며 명상하듯 있다가 홀짝홀짝 마셔보았다. 멍 때리는 재능이 없는 탓에 결국 지루함을 못 이기고 너무 빨리 찻잎을 우려내 거의 맹물과 같은 맛이 나긴 하지만 좋다. 클래식 음악을 결국 끄지 못한 것은, 무언가 채워져 있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은은한 조명으로 채우고, 찻잎을 우려낸 향으로 채우고, 빈틈없이 빼곡히 쌓인 화음으로 공간을 전부 채운다. 적막 속에서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 자동차 경적 등에 주의를 빼앗기는 것보다야 화려한 피아노 선율이나 웅장한 트럼펫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는 편이 훨씬 낫게 느껴진다.
커튼을 비집고 기어코 새어들어오고야 마는 다이아몬드 조각 같이 흩어진 햇살에 눈이 부시다. 바람 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벚꽃이 한창인 봄 치고는 꽤나 차가운 바람이었다. 나는 샤워 가운을 하나 걸친 게 고작인 차림이었다. 씻고 말리느라 흘러내리게 두었던 머리카락이 한 곳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얼굴 옆으로 커튼을 쳐주는 것 같다. 혹은 나를 가두는 철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럼 내가 갇혀 있는 곳은 오랜 외로움의 감옥이라고 이름을 붙여 볼 수 있겠다. 적막 속에 다시 시트가 부스럭 대는 소리, 목재 가구가 작은 틈 사이로 삐걱대는 소리, 그리고 다시 외부의 바람소리, 누군가 지나가는 소리가 앙상블을 이루며 적막의 감옥을 두드려 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