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등산 후엔 (놀이) 동산이지
첫 등반으로 382.4m인 다랑쉬 오름을 다녀왔으니, 306m인 구룡산은 문제없을 거라며, 단풍구경 겸, 10월 마지막 주 주말에 동네 뒷산(이 맞긴 하지) 오르는 심정으로, 물 하나씩 챙기고 등산에 나섰다.
다랑쉬 오름 외에 첫 등산인, 그러므로, 가족 전체가 등린이인 우리는, 입구부터 헤맸다.
풉.
구룡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여러 개인데, 우리는 네비와 블로그를 동원하여 찾은 능인선원 옆으로 난 입구를 찾아 올라갔고, 들어가자마자 다시 멘붕이 와서, 한 수녀님을 붙잡고 길을 물었더랬다. 수녀님은 따라오라는 말을 남기신 후, 평지 걷듯이 스윽 스윽 앞장서가셨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심정으로 따라온 딸과 '등산은 싫어하지만 한번 해보지' 정도의 마인드의 남편과 그저 신난 나로 구성된 우리 가족은 눈 똥그랗게 뜨고 수녀님 뒤를 쫓아갔다.
수녀님이 이제 길 따라가면 된다고 알려주신 지점까지 함께 해주셨고, 그 뒤로 길과 계단을 이어 올라가니, 산스장(산속 헬스장)이 나왔다. 거기서 조금 쉬다가 다시 올라가는데 계단 지옥이 기다리고 있어서 조금 올라가다가 딸이 너무 힘들어해서 다시 내려오게 되었다. 초콜릿이라도 하나 있었다면, 그걸로 좀 어떻게 해볼 수도 있었을까... 해서, 내려오면서, 이제 추워지면 등산이 어려워질 테니, 다음 주엔 김밥 싸고 단거 들고 올라오자는 결심을 했었더랬다. (겨우 300미터 올라가는데 말이다).
일주일 후...
8시 반 즈음, (김밥은 내려와서 사 먹기로 하고) 전날 딸이 손수 만든 호떡과 커피, 물을 바로바로 챙겨 다시 구룡산으로 향했다. 입구는 바로 찾았지만, 우리는 그전에 갔던 길 외에 더 짧아 보이는 코스로 가보자며 이전과 다른 길을 택해서 올라갔다. 더 짧지만 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선...
전 주에 갔던 길은 사람들이 많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인지 계단도 많고, 잘 닦여(?) 있었다면, 이번에 간 길은 조금 오버해서 암벽등반 수준의 가파른 코스가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으른인 남편과 나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이는 길이 아니라 돌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게 무서웠는지 훌쩍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온몸을 들썩여 가며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아마, 본인이 왜 그 고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을지도... 거의 확실히...)
보통 이런 경우라면 우리는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내려간다. 하지만, 이번엔 암벽 타기로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딸을 달래가며, 쉬어가며, '거의 다 왔다'는 희망고문을 몇 번이고 해 가며 꾸역꾸역 올라갔고, 끝내 구룡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네가 다 내려다 보이고, 멀리는 남산, 롯데타워, 법원까지 다 보이는 정상에 올라서 너무 감격스러웠고, 힘들지만 정상까지 와준 딸이 대견스러워서 많이 칭찬해주었다. 사실, 나는 자연을 즐긴다는 생각에 너무 신이 나있었고, 특별히 힘들지도 않았다. 그저, 딸이 체력단련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조금 있었고, 약간의 힘듬을 경험한 후 정상에 섰을 때의 성취감을 경험해보기를 기대했는데, 나는 딸이 얼마나 힘들지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 정도로 힘들어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조금 안쓰럽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도 딸도 모두 정상에 오른 사실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뿌듯함이 있었으리라...
고 감상에 젖은 순간 문자가 도착했다. 놀이동산 조인해도 좋다고...
사건인즉슨, 등산 전날, 친구가 놀이동산 간다고 해서 딸도 가고 싶어 하길래, 친구 엄마에게 문자를 넣어놨었다. 혹시 그 반 친구들끼리 가는 건지...
밤사이 연락이 없다가, 정상에 올라간 그 시점에 회신이 온 것이다.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이 가는 거라 같이 가면 좋겠다고. 그리고 다행히(?) 12시에 만나기로 했단다.
나는 잠깐의 고민을 하였더랬다. 그때 하산하면 12시 전에 여유 있게 집에 도착해서 준비할 시간도 충분했기에, 그리고 딸에게 물어보면 100% 가고 싶다고 할 것임을 알았기에... 말할까 말까...
그래도 우린 주로 딸과 나, 또는 남편까지 셋이 단출하게 놀고, 그래서 딸이 친구와 왁자지껄 놀아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 기회까지 뺏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딸에게 물어보았다.
놀이동산 콜?
콜!!
그래, 가자. 그래서 그날 2차는 놀이동산이 되었고, 5-6시쯤 파할 거라 예상했던 놀이동산 나들이는 저녁 9시 반, 문 닫기 전까지 계속되었고... 맨투맨 하나에 맨발로 갔던 나는 얼어 죽을 뻔했지만, 딸의 해맑은 모습에 그저 핫팩 하나에 의지하여 정신력으로 추위를 이겨냈다.
그리하여, 그날, 1부는 등산, 2부는 (놀이) 동산으로 하얗게 불태웠다.
딸, 대모산은 구룡산 보다 10m 정도 더 낮다네.
다음 주엔 대모산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