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경험 없는 초등학교 고학년의 학원 탐방기
만 10세로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4학년 1학기까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조력으로 혼자 등하교하는 일 없이, 마치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그 후에 피아노 학원에 다니며, 일주일에 몇 번은 수영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숙제'만' 하는 그런 한가롭고 여유로우며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왔다.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나와 남편이 모두 재택 시스템에 돌입하자, 딸의 등하교를 모두 직접 같이 해줄 수 있어, 2년 반 동안 우리 집에 살면서 딸을 케어해주던 우리 아빠를 집으로 보내드리고, 우리 셋 시스템에 돌입했다.
그러다, 6월부터는 내가 전일 출근하고, 남편이 주 몇 회 재택을 시행하게 되어, 5월 말부터 부랴부랴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봐줄 수 없어서 학원 보내는 일은 없었으면... 했지만, 결국 그런 날이 오고야 말았는데, 그뿐만 아니라, 학습적으로도 조금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낀 시점이었다.
공부를 집에서 1도 하지 않는데, 학교에서 단원평가, 수행평가를 치면 90-100점 사이라, 딸이 천재인가도 생각해보고, 아무래도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잘 듣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수업시간에라도 잘 들어야지!)
하지만, 5학년 1학기 중반 즈음부터, 수학이 80점 대도 보이고, 내가 봐도 쉽지 않은 문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노력하면 가르쳐줄 수야 있겠고, 다른 집들도 엄마나 특히 아빠가 자녀의 수학을 봐주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라떼는...생각하면,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게 아니었나? 꼭 학원에 가야 하는지, 집에서 스스로 공부하고, 문제집도 몇 권씩 사서 풀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부모 없이 혼자 집에서 공부할 수 있기는 조금 이른 듯하고.
결국,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학습교육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는 남편과 나의 합의가 있었기에,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는 학원이 몇 개 없지만, 그중 잘 가르친다는 학원이나 친구들이 많이 다닌다는 학원에 전화도 해보고, 그 외의 학원에도 전화를 해 본 뒤, 수학학원만 4군데 정도 온 가족이 출동하여 상담을 받아보았다. 전화를 건 학원 중에는 초등학생반은 없다는 곳도 있었다.
몇 군데 상담을 다니면서, 여태까지 학원을 안 다녔다는 사실에 놀라는 원장 선생님의 반응이 한결같아서였는지, 처음에는 친한 친구 (한 명 있다)와 같이 다니는 게 아니면 학원은 싫다는 스탠스를 취하던 딸도, 학원을 다녀야 할 때가 왔다 싶었는지, 내가 조금 미안해하는 시점에 딸이 이야기해주었다.
"엄마, 나 이제 학원 다닐 때도 된 거 같아. 내가 좀 많이 놀았잖아. 충분히 놀았다!"
오잉. 의외의 반응에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다.
5월 말 학원 상담부터 바로 그저께인 6월 15일, 학원을 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또 순탄치만은 않았다.
먼저, 반이 여러 개인 학원도, 그렇지 않은 학원도 반편성을 위해서 또는 어느 정도 실력인지 학원에서 파악하기 위해서 테스트라는 것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 유명한 레. 테. (레벨 테스트!) 나는 처음 들어봤지만, 대치동은 빈자리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예약하고, 돈까지 내야 한다지만, 우리 동네는 비용도 없고, 예약은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니라 약속만 잡으면 되는 것이었다.
첫 번째로 집 근처 학원으로 수학 레벨 테스트를 하러 갔다. 딸은 연필 하나 들고 혼자 교실에 들어갔고, 나는 바로 옆 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기다리면서 원장 선생님과 이야기도 하고, 원장 선생님이 나가시고 책 읽고 있는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환청이겠지?... 했지만 아니었고, 딸이 테스트 치르고 있는 방에 가보니, 엎드려서 울고 있었다.
처음에 꼼꼼하게 잘 풀다가, 점점 어려운 게 나오자 못 풀고 당황해서 울고 있는 것이었다.
가여워라.
원장 선생님도 딸이 훌쩍이고 있는 걸 보더니, 식도 잘 쓰고 잘 풀었다고 격려해주시고, 뒤에는 경시대회 문제라 어려운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일단 달래서 집으로 데려왔다.
두 번째, 매우 잘 가르친다는 수학학원이 주중에는 전화를 안 받아서 주말에 전화를 해봤더니 받길래, 그 길로 곧장 레테를 하러 갔다. 1시간 동안 푼다기에, 초콜릿 하나 넣어주고 나는 근처 카페에서 기다렸다. 마칠 시간 돼서 또 우는 거 아닌가 하고 마음 졸이며 데리러 갔더니, 한 번 경험해 봐서 그런지 다행히 울지는 않고 나왔다.
"에잇, 풀 수 있는 것만 풀었어. 못 푸는 건 할 수 없지!" 하면서 씩씩하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전화로 알려주신 평가 결과는 47점, "어머니, 따님이 공부를 안 한 거 같아요. 하지만 5학년이니 늦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셨다.
딸이 공부를 집에서는 안 했지만, 학교에서는 열심히 했을 텐데요...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딸이 좋아하는 태권도 스케줄 때문에, 스케줄이 맞는, 그 잘 가르친다는 두 번째 학원으로 보냈다.
두 시간 반 수업이라 좀 너무 길다 싶으면서도 은근 첫 번째 두 번째 수업 모두 잘 다녀오길래, 잘 적응하나 싶었는데... 세 번째 수업 마치고 나오면서, 오늘 괜찮았냐고 의례히 물어보니, 딸은 눈물을 터뜨린다. 선생님이 너무 무섭다고 했다. 모르는 걸 가르쳐주면서 왜 모르냐고 혼냈다고 한다. 아니 몰라서 학원에 가는데?!
딸이 그렇게 느끼는 이상, 이 학원에 보내기는 싫어서, 그만 보내겠다고 통보하고, 첫 번째 학원으로 다시 가기로 해서, 6월 14일 최종 결정하고 6월 15일부터 눈물로 레테를 보았던 그 학원에 등록했다. 태권도를 한번 포기해야 하지만 딸이 이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태권도를 하루 빠지려는 다짐을 하게 할 만큼 열렬히, 무서운 선생님께는 배우기 싫었던 것 같고, 나도 아무리 잘 가르친다고 해도 화내고 짜증 내는 선생님께 딸을 몇 시간만이나마 맡기기 싫었다.
어제 첫 수학 수업을 오면서 갔다가 웃으면서 나오는 딸의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영어로 말할 것 같으면, 딸은 퐈닉스만 한번 훑은 상태이다. 아직 b와 d를 막 바꿔 쓰는 정도면... 자세히 말 안 해도 어느 수준인지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들은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능력은 좋아서, 발음은 괜찮은 것 같다.
주변 몇 군데, 영어학원과 공부방에 전화를 해보니, 당황스럽게, 딸 수준의 학생이 들어갈 수 있는 반이 없다는 곳이 많았다. 이 수준이면 1-2학년과 같이 공부해야 하는데 시간이 안 맞고, 행여나 시간이 맞더라도, 학생들이 자존심 상해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과외를 해야 하나... 도 생각하고, 우리 집 원칙을 깨고, 남편이 가르쳐야 하나... 하는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다행히도, 감사하게도, 최종 결정된 수학학원에는 영어가 메인이라, 레테 할 것 없이 가장 낮은 반의 영어수업도 같이 해보기로 했다. 가장 낮은 반이지만 원장 직강!이라는 엄청난 혜택이 있어서 좋았다.
첫 수업 마치고, 딸이 본인이 같은 반 친구들에게 천재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Bricks Reading 50으로 리딩을 하는데, 반에 (4학년, 5학년, 6학년으로 구성된) 5-6명 학생들 중, 책에 적힌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학생이 딸 밖에 없었다고... 원장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그 반 일등이라고 ㅎㅎ
그래, 딸이 자리를 잘 찾은 것 같다. 지금은 시작 반이지만, 여기서 자신감 얻고 열심히 해서 점점 더 레벨이 높은 반으로 가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실력도 는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 결정된 학원에서 이제 영어, 수학 각각 한 번씩 수업을 들었을 뿐이지만, 딸에게 학원에 가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 물어보았는데, 나보다 더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딸은,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잘 알고 그 부분들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해주었다.
앞으로 학원에서 도움을 받아 스스로 학습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스킬도 장착하길 바라 딸.
엄마가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