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양재천
해가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았을 때, 3월 초 즈음이었나 보다.
이제 봄이 오나보다~ 싶었고, 그래서 패딩과 목도리 등 방한장비를 모두 세탁소에 맡겨버리고 봄 옷들을 꺼내보았지만, 3월 내내 정말 추웠다. 너무 일찍 봄 준비를 한 탓에 입을 옷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 후에는 정말로 패딩이 필요 없는 봄이 왔고, 웬일로 미세먼지가 좋은 날도 꽤 있었다.
미세먼지가 양호 이상인 날은 손꼽아야 하는 요즈음이기에, 공기가 좋은 날이면 반드시 나가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우리 집은 양재천과 양재 시민의 숲이 가까운, 나름 '숲세권'이므로, 기회만 되면 자연을 즐기러 나가고 있다.
최근 우리가 온몸으로 봄을 느껴보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1. 주중 양재천에서 런치
양재천에는 벤치와 의자가 많이 있고, 평상같이 널찍한 곳도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샌드위치를 사 가거나 집에서 간단히 먹을 것 들고 양재천으로 나가서 그늘에 자리 잡는다. 주중 양재천 런치는, 나와 남편이 둘 다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 가능하다. 널찍한 자연을 마주하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먹는다.
왜가리, 청둥오리, 가끔 백로... 매우 자주 비둘기... 도 볼 수 있고(bird watching이 따로 없다), 만개한 벚꽃과 개나리도 감상할 수 있으며, 물 멍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전거와 라이더들의 패션을 감상할 수도 있는 점이 재미있다.
어제는 떨어진 벚꽃잎들이 양재천을 타고 흐르는데, 은하수 같이 보여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딸이 알면 큰일 난다. 우리 둘만 데이트 한 걸 알면, 삐칠 것이므로...
살짝 둘이서 점심때 양재천 다녀온 걸 이야기했더니, 딸은 학교에서 코로나 걱정되는 사람은 점심 안 먹고 집으로 와서 먹어도 된다며, 본인도 점심 먹지 않고 오고 싶다고 해서 식겁했다. 며칠간 그러다가 학교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메뉴가 이틀 연속 나오자 집에서 점심 먹겠다는 농성이 멈추었다.
2. 주중 시민의 숲에서 런치
시민의 숲은 양재천보다는 좀 더 걸어야 하지만, 시민의 숲도 가 보았다. 도시락 만들어 손수건에 싸서 들고 가니 정말로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시민의 숲 안쪽 벤치에 앉아, 광합성도 하고, 바람이 불어 내리는 벚꽃비에 감탄하면서 싸온 도시락을 먹으니 (조금 오버하자면) 여기가 베를린의 티어가르텐인지 양재 시민의 숲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시민의 숲에서는 청설모가 '인간아 나를 찍어라. 밥도 좀 주고...' 하는 모습으로 이리저리 사람 앞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주중 시민의 숲 런치도 딸에게는 비밀.
주중 야외 런치는, 재택 덕분이기도 하므로 회사에도 감사한 일이다.
3. 주중 저녁 산책
주중에 딸이 혼자 쉬는 동안 둘이서 잠깐 양재천 산책을 나갔다 올 때도 있다. 딸이 어렸을 때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20-30분 정도, 어떤 때는 조금 더 길게도 혼자 있을 수 있기에...(thanks to 사춘기?)
간편하게 입고 나가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벤치 앞에 앉아 '아 정말 좋다.'를 연발한다. '흐르는 물에는 음이온이 많아서 좋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저녁에는 특히 산책 나오는 멍멍이들이 많아, '아 정말 귀엽다'도 많이 한다.
마무리는, '우리 동네는 정말 좋아!'
4. 불금
바람이 선선하니 춥지는 않고 딱 기분 좋은 정도이고 공기도 좋으니, 노천에서 맥주를 그렇게 하고 싶었다. 어느 날, 양재천 변, 노천에서 맥주를 할 수 있는 카페로 갔는데, 음식 준비에 30-40분이 걸린다고 해서, 그 길로 나와 편의점에서 각자 먹고 싶은 메뉴 고르고 양재천 벚꽃길 앞 테이블까지 놓인 벤치에서 불금을 즐겼다. 나는 당연히 맥주에 감자칩!
마, 이게 노천에 맥주다!
해가 질 때 즈음, 하얀 벚꽃이 더 강한 하얀빛을 띠는 듯했고, 노을과 함께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마무리하기 아쉬워, 다시 편의점 들르고, 이번엔 아예 양재천 가까이로 내려가 평상에서 2차. 딸도 불금을 이렇게도 하냐며 재밌어했다.
5. 주말 피크닉
피크닉 매트 들고, 책도 들고, 어떤 날은 헬리녹스 의자도 들고나가서, 나무 그늘 아래 매트 펴고 누워서 하늘 보다가 앉아서 책 보다가... 역시 사람 구경, 멍멍이 구경도 하고...
픽업해온 샌드위치 먹고, 집에서 들고 온 커피도 마시고...
햇빛이 강한 날도 있었는데, 그늘에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누워서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니,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지옥에는 바람이 없다고 했던가?)
이제 막 푸릇푸릇하게 자라나는 나뭇잎, 풀들 보면서 '언제 이만큼 자랐지?' 하고, '오리들 어디 갔지?'하고 오리 가족들도 찾아보고, 왜가리가 날아가는 모습이라도 본다면 '와 진짜 멋지다'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코로나 '때문에' 재택 한 '덕분에' 남편과 둘이서 점심시간에 잠깐 자전거로 양재천 라이딩도 다녀오고, 양재천 주변 카페에서 브런치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한다.
남편과 자연 속에서 손잡고 걷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것이 그중 제일이긴 하다.
'이런 날이 언제 또 오겠어...' 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는 기적 같은 요즘 이 시간들이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