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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카 아카이브 Dec 15. 2023

미완으로 남은 브리티시 슈퍼카,
팬서 솔로 (상)

[아카이브 프로젝트 : 40]

김영철의 야망은 끝내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미완으로 끝나버렸다. ⓒ Ssangyong

PANTHER SOLO

[Archive 040] 1984-1990, Designed by Ken Greenley. ⓒ Dong Jin Kim


1972년 창립된 '팬서 웨스트윈즈'는 자본가들의 차고를 메울 클래식카를 제작하는 소규모 공방에 불과했다. 주 수익원은 재규어 SS 100를 본뜬 리마 (칼리스타의 전신). 백야드빌더가 주목받는 슈퍼카 브랜드로 탈바꿈한 것은 1980년이었다. 제계에서 손꼽히는 진성 차덕 중 하나였던 진도그룹 김영철 회장은 로버트 얀켈 (Robert Yankel)로부터 팬서를 인수하고 본인의 이상을 실현하는 장으로 삼았다.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건 저렴한 미드쉽 스포츠카였다. 그는 동일 포지션의 피아트 X1/9가 이미 8년 넘게 판매한 노령차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이 블루오션을 신모델로 장악하려 했다.


팬서 본사 앞에 서 있는 솔로와 솔로 2.

연간 수백만 대를 생산하는 대기업과 누적 수백여 대를 생산한 백야드빌더가 경쟁이 될 리 만무했다. 하지만 김영철 회장은 낙관했다. 곧이어 프로젝트의 적임자로 로버와 포드에서 몸담은 레오날드 빌레이 (Len Bailey)를 영입하면서 이 무모한 시도는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는 포드에서 GT-40의 새시를 개발한 명장이었고 아무도 결정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문제는 디자인이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를 물색했지만 그들의 요구는 소규모의 백야드빌더가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낙담한 김영철은 오히려 발상을 뒤집어 영국왕립예술대학 (RCA)의 아마추어들을 영입하기로 한다. 그는 포드 에스코트 XR3의 미드쉽 스포츠카를 디자인하는 교내 대회 기사를 보게 되었고, 학과장을 맡고 있던 켄 그린리 (Ken Greenley)에게 이들의 영입에 도움을 청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과적으로는 켄 그린리 본인이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지휘하게 되었다.


빌레이가 전두지휘한 솔로의 새시.

지지부진했던 개발은 이러한 인력 문제가 해결된 1983년부터 순항한다. 이윽고 1984년 브리티시 모터쇼에서 공개된 '솔로 (Solo)'는 팬서가 보여준 자신감을 증명했다. 켄 그린리가 빚어낸 에지 스타일에 포드 에스코트의 4 기통 1.5리터 XR3i (푸조 205의 T16도 염두.)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솔로는 최고 속도 193 km/h, 최고출력 103 hp를 발휘했다. 뛰어난 성능은 아니었지만 825 kg에 불과한 공차중량으로 모든 단점을 상쇄시켰다. 더욱이 1984년 말부터는 미국시장을 겨냥한 4륜 구동 사양을 추가로 개발하면서 부족한 성능을 보완할 계획이었다.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솔로는 영국 내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프로토타입에 불과함에도 단숨에 100여 대의 사전 계약을 이끌어냈다. 영국의 오토카와 오토위크는 앞다퉈 특집기사로 다뤘다. 이들은 시승기에서 미흡한 냉각시스템과 좁은 풋웰 (좌석의 발 공간)을 지적했지만 훗날 양산화 과정에서 충분히 고쳐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모터쇼 이후 개량을 거친 후기형 솔로.

하지만 솔로도 '백야드빌더'라는 태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개발이 진척되면서 어느덧 목표 판매가였던 10,000 파운드 (한화 1,700여 만원)를 훌쩍 넘어버리는 예상 판매가가 책정된 것이다. 솔로는 개발 목표를 잃어버렸지만 이미 관성을 받은 프로젝트는 멈추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중단된 시점은 솔로의 개발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였다. 태평양으로 휴가를 간 김영철은 마침 그곳에서 토요타 MR-2 AW형을 탈 기회가 생겼다. 마침 MR-2도 솔로처럼 개발 과정에서 피아트 X1/9를 밴치마킹한 차량으로, 훗날 솔로가 출시된다면 유력한 경쟁자였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MR-2를 탄 그는 가격부터 기본기, 신뢰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솔로가 이길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김영철은 영국에 전화를 걸어 솔로의 개발을 중단하라 명령했다.

디자인을 지휘한 켄 그린리와 솔로 2.

그의 시선은 고급 스포츠카로 높아졌다. 마침 솔로를 보고 감명받은 포드 유럽지부 사장 밥 러츠 (Bob Lutz)가 4 기통 2.0리터 터보차져 시에라 코스워스 파워트레인을 지원하면서 프로젝트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솔로 2의 시작이었다. 머지않아 팬서는 사륜구동 기반의 2+2 시터 고급 스포츠카로 방형을 선회했다. 그리고 커진 배기량과 크기를 감당할 수 있도록 기존 솔로를 손보았다. 우선 포드의 인력망을 이용해 레이마르 (Raymar)에 새 새시와 전용 변속기를 의뢰했다. 레이마르의 수장인 로드 맨스필드 (Rod Mansfield)는 현역 시절 포드에서 고성능 차량을 제작하는 부서인 SVE (Special Vehicle Engineering)을 운영하며 시에라 RS 코스워스라는 명차를 설계한 바 있다. 켄 그린리는 어김없이 솔로 2의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는 열악한 사내 환경에서 전동 톱으로 직접 솔로의 차체를 절단하여 본인만의 스타일링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물은 기존 솔로의 테마와 정반대였는데, 그는 인터뷰에서 '솔로의 디자인이 너무 진부하다는 의견을 의식해 차량의 퍼포먼스를 여감 없이 드러내고자 했다'라고 토로했다.


솔로 2의 차체.

머치 엔지니어링 (March Engineering)과 자회사 콤텍 (Comtec)은 자사의 포뮬러 데이터를 기반으로 솔로 2의 바디를 구성할 복합 신소재와 공기 역학 테스트 시설, 그리고 디자인 아이디어를 제의했다. 때마침 알루미늄과 유리섬유 모두 솔로 2의 차체 소재로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 팬서는 콤텍의 복합 소재를 차용하기로 결정했다. 솔로 2의 모노코크 바디는 케블라 섬유로 구성되었고, 유리섬유 천에 싸인 2개 층의 에폭시 레진과 알루미늄 허니콤을 차용했다. 상부 도어 프레임에는 탄소섬유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결정은 팬서에게 악몽이 되었다. 포뮬러에나 시범적으로 쓰이던 복합 신소재는 로드카가 갖춰야 할 내구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복합소재로 만든 바디 패널은 사출 이후 휘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페인트는 달라붙지 않았다. 


그리고 변수가 생긴다, 팬서의 든든한 자금줄이 되어 준 김영철이 1987년 6월, 팬서의 지분 80%를 동아자동차에 넘겨버린 것이다. 회사의 오너가 바뀌는 상황에서 사내 분위기는 뒤숭숭해졌고, 자금은 바닥을 보였다.


(중) 편에서 계속...


REFERENCE

매일경제 '쌍용자 스포츠카 생산' 1991.01.25

한겨레 '세계6위 자존심 걸고 절정의 컨셉트카 13대 출품' 1995.04.24

경향신문 '미리 보는 '서울 모터쇼' 이것이 국산 '컨셉트카'' 1995.04.24

한국경제 '쌍용자동차, 컨셉트카 서울모터쇼에 출품' 1995.04.24

매일경제 '꿈의 자동차 수요자 초청' 1995.04.26

매일경제 '해외 166개사 해외 37개사 참가 "내가 최고" 맵시 자' 1995.05.03

한겨레 '톡톡튀는 자동차맵시 기성 시대 '활짝'' 1995.06.12

조선일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현장 인터뷰 쌍용회장' 1995.09.17

모터트랜드 'Frankfurt Motor Show - Trends' 1996.01.01

모터트랜드 '금주의 차 |PANTHER| solo 2' 2007.12.14

네이버 블로그 (모몬트) '쌍용차 디자인의 흥망 - 켄 그린리를 중심으로 (펌)' 2008.10.22

오토앤뉴스 '한국인이 만들어 영국을 들썩이게 했던 스포츠카, 솔로2' 2017.09.20

Below The Radar 'Panther Solo 1'

Automobile Catalog '1984 Panther Solo Prototype'

Readly 'A singular 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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