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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카 아카이브 Sep 30. 2023

빅딜의 불발탄,
삼성 PX 프로젝트

[아카이브 프로젝트 : 29]

SM5의 각진 외관은 찾아볼 수 없다. ⓒ Samsung

SAMSUNG PX PROJECT

[Archive 029] 1999, Designed by Samsung. ⓒ Dong Jin Kim


1999년 1월 22일, 서울역 광장에서 신차 발표회가 열렸다. 이 발표회는 여느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곳에는 차량의 출시를 자축하는 임원단도, 플래시라이트를 터뜨리는 기자들도 없었다. 그저 회사를 지키고자 하는 3,000명의 임직원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이들이 서울역으로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삼성그룹과 대우그룹 간 '빅딜'이 있다. IMF 사태 이후 대기업들은 법정관리의 두려움에 사업부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이로 인한 대규모 실업자 발생과 국가 경쟁력 감소를 우려한 정부는 기업과 기업 간 사업부를 통합-교환하는 형태의 '빅딜' 매각을 추진한다. 머지않아 현대전자-LG반도체, 현대정유-한화에너지와 같은 전력 사업부가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가 있었다.


빅딜 의사를 먼저 밝힌 건 삼성이었다. 1998년 11월 말 삼성은 금감위에 자동차 사업의 빅딜 의사를 밝혔다. 이윽고 빚 상환의 굴레에 시달리던 대우가 의사를 수용한다. 삼성은 적자 사업부를 청산해 채무를 덜고자 했고, 대우는 이번 빅딜을 구실로 정부에게 지원을 받아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심산이었다. 이윽고 1999년 12월 7일에 열린 대통령 주재 정·재계 간담회에서 삼성과 대우 간 빅딜 기본합의 사실이 공표되면서 빅딜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이 날 코스피 지수는 514.52로 급등해 약 8개월 만에 500선을 회복하게 된다. 금융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테스트용 임시번호판을 단 모습 ⓒ Samsung

하지만 빅딜은 '구조조정'이라는 고통을 불가피하게 동반한다. 기흥 중앙연구소와 부산공장에서 몸담고 있던 삼성자동차의 임직원들은 '삼성자동차 빅딜 거부 총 연대'를 결성하여 전국 곳곳에서 빅딜 반대 집회를 열어 저항했다. 그리고 1999년 1월 22일, 이들은 붉은 머리띠와 조끼를 입은 채 서울역 광장에 모여 본인들이 만든 비운의 미완성차, PX를 공개하게 된다. PX는 시위 현장에서 공개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대외적으로 프로젝트가 알려진 적이 없는 차량이었다.


PX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1997년 5월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처음 공개될 당시에는 SM5 KPQ형의 후속 모델로 알려졌었지만, 사실 PX는 SM5의 윗급으로 개발된 준대형차다. 정확한 제원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축거가 기존 SM5보다 70mm가량 늘어나 거주성이 크게 개선된 것이 특징이다. 이에 편익을 본 곳이 바로 뒷좌석으로, 보다 넓어진 레그룸과 슬라이딩 전동 시트를 적용해 차량의 쇼퍼드리븐 성향을 강화했다. 이외에도 각종 편의장비와 우드그래인 소재 채용으로 고급화를 꾀했다. 파워트레인은 닛산의 VQ30 DOHC MPI 엔진을 장착했다. 다른 엔진이 염두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블랙 모델과 화이트 모델이 동시에 서 있다. ⓒ Samsung

PX는 개발단계에서부터 수출을 염두한 프로젝트이다. 이미 1998년 6월에는 베이징에서 SM5 신차발표회를 개최하고, 칠레에 SM5 500대를 수출하는 등 해외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PX의 수출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사의 미래를 본인들이 불태워버렸다. 시위 현장에서 공개된 프로토타입은 SM525의 휠을 단 블랙 모델과 SM530L의 휠을 단 화이트 모델 총 두 대였는데, 그중 블랙 모델은 시위 현장에서 전소당했으며 화이트 모델은 이후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폐차장에서 최후를 맞았다.


이후 삼성자동차는 르노의 품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르노삼성자동차는 신차 포트폴리오를 대거 정리하는데, 빅딜 이전부터 소문이 돌았던 Sm3 N17형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젝트는 무산되기에 이른다. PX 역시 이를 피해 갈 수 없었고, 공석이 된 플레그쉽 자리는 이후 2004년 출시된 SM7가 채우게 된다.


TIMELINE

1999.01.22~1999.01.22 : 삼성자동차 빅딜 반대시위 출품

현재 소재: 2대 모두 폐차


REFERENCE

매일경제 '삼성차 칠레에 차 500대 첫수출' 1998.06.26

매일경제 '삼성차 베이징서 SM5 신차발표' 1998.06.19

조선일보 '[부산 시민단체]"삼성차 빅딜 철회를"' 1998.12.08

동아일보 '삼성-대우 『빅딜후 고용승계』합의' 1998.12.16

연합뉴스 '삼성자동차 임직원 3천여명 빅딜거부 집회' 1999.01.22

조선일보 '대우, 삼성자동차 인수 타결' 1999.03.23

시사저널 '‘길 없는 길’ 달리다 추락한 삼성차' 1999.07.15

연합뉴스 '삼성자동차 설립부터 매각까지 일지' 2000.04.25

서울경제 '[秘錄, 김우중신화의 몰락] <2막 5장> 빅딜1: 삼성의 비밀' 2005.06.23

한국경 '정부가 주도한 '5대그룹 빅딜'…좌초된 '삼성자동차, LG반도체' 꿈' 20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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