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먼저 자도 내 옆에 와서 자. 알았지? 아침까지 꼭.”
아빠를 기다리다가 먼저 잠들 것 같으면 아이는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말한다.
남편은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다. 그렇다 보니 아이는 평일 저녁에는 한두 시간만 아빠 얼굴을 볼 수 있다. 아빠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는 남편이 늦은 저녁을 먹는 동안 인내심을 발휘하며 옆에서 기다린다. 아빠와 잠깐 놀고, 같이 씻고, 책을 읽은 뒤 나란히 누워 장난을 치다가 잠들기 위함이다.
마지막 관문은 불 꺼진 방에 누워서 아빠가 씻고 나오길 기다리는 때다. 남편이 저녁을 먹은 후 아이를 씻기면 나는 로션을 발라주고 잠옷으로 갈아입힌 뒤 같이 누워서 책을 본다. 책을 다 읽으면 아이는 뒤척이며 아빠를 기다린다. 먼저 자라고 해도 초인적인 힘으로 버틴다. 눈꺼풀을 손으로 들어 올리고, 손뼉을 친다. 잠을 쫓기 위해서다. 앉거나 돌아다니는 건 안 되고 책을 다 읽은 뒤에는 누워 있어야 한다고 했더니 누워서 할 수 있는 건 다한다(물론 남편이 오기 전까지 방에는 내가 함께 있다).
이윽고 남편이 오면 나는 아이 방에서 나오는데 불 꺼진 방에서 둘이 속닥속닥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은 간지럼을 태우는지 레슬링을 하는지 우렁찬 고함과 웃음소리가 나기도 한다. 잠자기 전 책을 읽어주며 고요한 분위기를 조성하느라 공들였는데 그런 둘의 행동이 마뜩잖다.
저렇게 흥분하면 취침 시간이 뒤로 밀린다. 그럼 다음 날 늦게 일어나고, 어린이집 등원 시간이 늦어진다. 한마디 할까 싶어 일어나려다, 관둔다. 아이가 일곱 살이니 이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서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을 그렇게 떠들다가 남편의 코 고는 소리와 아이의 숨소리가 번갈아 들린다. 살짝 문을 열어 보니 둘이 찰싹 달라붙어서 자고 있다. 아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피곤한 날에는 아이도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빠가 씻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잘 것 같은지 아빠에게 저렇게 당부의 말을 전한다. 자기가 먼저 잠들어도 안방으로 가지 말고 자기 방에서 같이 자자는 거다. 남편은 고분고분 대답한다. “응, 알았어. 걱정하지 말고 먼저 자.” 아이는 저 말을 끝으로 정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를 보고 남편은 모처럼 자기 자리에서 잘 수 있다며 행복해했다. 아이와 살을 맞대고 자는 것도 좋지만 자는 동안 몇 번씩 발에 차이거나 얼굴을 가격당하기 때문이다.
이날 아이가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잔 덕분에 (새벽에 깨서 안방에 오면 우리 둘 중 한 명은 아이 방으로 가야 하는데 아이는 대부분 아빠를 지목한다) 남편은 모처럼 자기 자리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아침이 되어 아이와 밥을 먹는데 새벽에 출근한 남편에게 영상통화가 왔다. 아이는 전화를 받자마자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내 옆에서 잤어? 아침까지?” 어제의 당부를 잊지 않고 매섭게 확인한다. 남편은 싱글싱글하며 대답한다. “그럼, 아빠 아침까지 옆에서 자다가 왔어. 몰랐어?” 아이는 아빠의 확신에 찬 대답에 “그랬구나” 하며 벙실벙실 웃는다.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남편과 그걸 또 진짜로 알고 흐뭇해하는 아이를 보자니 어처구니가 없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쓰디쓴 커피를 홀짝인다.
사진: Unsplash의 Ryan Fran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