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아무 Aug 27. 2022

자기계발서는 원래 안 읽는데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를 읽고.

    자기계발서를 가장 많이 읽었을 때는 중고등학생 때였다. 유행처럼 아이비리그에 진학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쏟아져 나왔었고, 그들이 얼마나 독하게 공부했는지는 내게 발전적인 자극이 되었다.『마시멜로 이야기』나 『시크릿』 같은 책들도 읽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무장해야 하는지도 되새기려고 했다. 그때의 나는 강한 목표 의식이 있었고, 그런 나를 계속해서 채찍질해줄 책이 필요했다. 호랑이를 그리려 해야 고양이라도 그린다고 그런 책의 주인공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입시 성과를 내는 데 성공했다.


    

    거짓말처럼 그 이후에는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았다. 십 대 때 너무 많이 읽어 지겨웠고, 이 책이나 저 책이나 하는 말이 거기서 거기 같고, 어차피 읽어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안 읽어도 내가 하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자기계발서는 별 가치가 없는 책이라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시나 소설처럼 예술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문학 도서만큼 내용적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를 읽는다고 하면 취향의 수준이 낮은 것처럼 은근히 무시를 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얼마 전 서점에 갔는데 베스트셀러 책장에『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가 진열되어 있었다. '난 없는 게 체력인데?'라는 생각에 무심코 그 책을 집어 들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았는데, 다음의 문단이 쓰여있었다.



직장인들이 느끼는 이런 소모감과 무력감은 다양한 이유에서 시작되겠지만, 보통은 30대 초반, 직장생활을 5년 정도 하고 나면 찾아온다. 정확히 말하면 대학 시절 직업의 세계에 들어오기 위해 학습한 것이 바닥까지 고갈되는 시점이기도 하고, 넘치는 의욕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다가 직장생활이 맘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실감하며 심정적으로 바닥을 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중략)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써버리고 있는데 다시 채워지지 않는 느낌. 주어지는 일을 하기에 급급해 비우기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채운 것이 없이 탈탈 털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최근에 가졌던 고민과 감정을 정확힌 서술한 이 문단에 완전히 꽂혀버렸다. '30대 초반, 직장생활을 5년 정도'라는 묘사에도 소름이 돋았다. 그제야 흥미가 생겨 저자의 정보를 확인하니 '구글 디렉터', '실리콘밸리', '다섯 개의 대학원', '나이 오십에 수영을 시작', '14년째 검도', '대금을 7년 넘게 불고', '재직 중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나는 직장 생활 하나도 빌빌대면서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이걸 다 어떻게 한거지? 직장, 학업, 운동, 취미, 사이드 프로젝트. 이 모든 걸 저글링하는 것이 가능했단 말인가? 도서관에서 빌릴까 하다가 호기심에 당장 읽고 싶어 책을 구매해버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보다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내 삶에 작은 변화들이 생길 것 같다. 하기 싫었고, 몇 번이고 꾸준히 해보려고 했지만 실패한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자 마음먹었다. 하고 싶었고 꽤 꾸준히 하기도 했지만 무슨 의미냐 싶어서 오래 전에 그만두었던 미술도 다시 시작하려고 학원에 등록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여행을 가볼까 했다가도 집도 없는데 무슨 여행이냐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냥 갔다 올 것이다. 직장이나 미래를 생각할 때 느꼈던 답답함도 어느 정도 풀렸다.



    가장 와닿았던 내용은 work와 life로 나누는 대신, '채우는 일'과 '비우는 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일과 삶의 경계는 모호하다. 업무에 쓰일 지식을 집에 와서 공부하는 것은 일인가, 삶인가? 전쟁 같은 육아는 일인가, 삶인가? 단순히 돈을 받는 시간 동안은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삶이라는 구분은 뭔가 명쾌하지 않다. 저자는 에너지를 채우는 일과 쓰는 일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여기서 에너지는 삶의 활력이나 성장에 대한 열정 같은 것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은 이미 채운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안하다. 회사에서 고갈되고 싶지 않다거나 회사에서 일도 하며 에너지도 채우고 싶다는 것은 불가능한 염원이다. 이제 고민의 포커스는 어떻게 회사 밖에서 에너지를 채워 넣을 것인지다. 



    운동을 하면 더 피곤할 것 같지만 오히려 체력이 좋아져서 덜 피곤하다고들 한다. 저자는 정신도 마찬가지여서 오히려 정신을 바쁘게 창조성과 배움으로 단련시키면 덜 지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취미는 여유나 사치가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다. 예전에 미술을 배우다가 그만둔 이유는 "내가 이걸 열심히 한다고 한들 전문 작가가 되어 돈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만두고 나서 시간과 돈이 많이 아껴진 것 같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 시간만큼 누워서 유튜브를 봤고, 그 돈만큼 배달 음식을 시켜먹었다. 책을 읽고 나의 정신에 새로움을 불어넣는 시간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취미 미술의 효용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계기로 열정이 솟아올랐을 때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식는다는 문장이 있어 바로 미술 학원에 등록해버렸다.



    에너지를 채우는 일에는 즐거운 취미 생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힘든 공부도 있다. 하는 동안에는 괴롭지만 무언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느낌은 명확한다. 내 의지와 노력과는 무관하게 회사의 사정과 방향은 계속 바뀐다. 그래서 연차가 쌓일수록 무력감과 불안감에 시달렸고, 그 스트레스를 핑계 삼아 공부하는 것을 게을리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한 저자는 무력감에서 꺼내 주는 것은 바로 성장의 경험인데, 성장은 일만 잘한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공부를 따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회사에서 일은 열심히 해도 성장의 느낌을 받을 수 없어 불만이었는데, 원래 그런 것이었다니!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믿을 것은 나의 실력밖에 없으니 시간을 투자해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긴 호흡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나도 놀랄 만큼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은 뻔하지만 위안이 된다. 시간을 잘게 썰어 업무, 공부, 취미, 영어, 운동,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찔끔찔끔 한다고 뭐가 나아질까 싶다. 하지만 누적된 시간이 승리한다고 믿는다. 재테크도 자산을 배분하듯 나의 열정도 배분해 놓아야 한쪽에서 열정의 불씨가 꺼져갈 때, 다른 쪽의 불씨를 빌려와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직접 만날 수 없는 선배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것도 나의 에너지를 채운 일이었다. 좋은 에너지로 가득 차 여러 가지 결심을 했는데, 이것도 작심삼일이 되어버릴 수 있어 브런치에 발행한다. 지금의 생각을 까먹고 또 게으르게 살다가도 이 글을 목록에서 보고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작심삼일을 여러 번 하면, 결국 시간이 쌓일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활동적인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