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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무 Mar 01. 2023

자연은 여지를 열어둔다

『차이에 관한 생각』 11장 ~ 12장 리뷰

우리는 ‘자연스럽다’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것을 별다른 노력 없이 간단하게 전한다. 아이는 엄마가 돌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들 한다. 엄마에게는 모성 본능이라는 것이 장착되어 있어 아이에게 자동적으로 애착을 느끼고 능수능란하게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성 간의 성행위만을 자연스럽다고들 한다. 이성애는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위로 설명될 수 있지만, 동성애는 그러지 못하는 무용한 행위로 자연에서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연스럽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일까?




11장. 양육


이타적 행동은 어미 포유류의 보살핌에서 시작했다. 어미는 자식의 필요를 알아채고, 자식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안다. 이런 역지사지 능력은 한때 인간만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유인원 또한 남의 곤경을 이해하고 기꺼이 도우려는 의지를 보인다는 것이 밝혀졌다. 공감 능력은 뇌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에 따른 것인데 옥시토신은 탁월한 모성 호르몬이다. 옥시토신은 분만을 유도하고 모유 수유 중에 분비되며 정서적 유대를 촉진한다.


어미가 자식과 유대를 맺는 방식은 흔히 사랑에 빠지는 것에 비유된다. 그러나 이것은 진화의 순서를 틀리게 기술한 것이다. 모성애는 다양한 종류의 낭만적 사랑보다 먼저 나타났다. 젊은이들은 사랑에 빠질 때 ‘애기‘ 같은 애칭을 사용하고, 고음의 선율로 귀여운 아기 말투를 쓰고 서로에게 음식을 먹여준다. 이 행복한 상태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혈액과 뇌에서 옥시토신 수치가 상승하는 것과 함께 나타난다. 사랑의 원형은 어미와 자식 간의 정서적 교감인 것이다.


우리는 ‘모성 본능’이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본능'이라는 말을 쓰면 어미의 보살핌을 미리 프로그래밍된 로봇의 행동처럼 즉각적이고 기계적인 반응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미 포유류의 보살핌이 항상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처음 어미가 된 암컷은 특히 그렇다. 모성 본능은 학습된다. 심지어 자연적인 수유 행동조차도 그렇다. 성공적인 수유를 위해서는 어머니와 아기 둘 다 많은 학습이 필요하다.


암컷은 어릴 때부터 남의 새끼를 친엄마처럼 돌본다. 이것은 수컷이 보이지 않는 행동이다. 어린 시절에 남의 새끼를 돌보는 데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는 암컷의 새끼는 생존율이 높다. 반면 남의 새끼와 접촉하지 않고 자란 암컷은 자신이 처음 낳은 새끼를 잘 돌보지 않는다. 이런 암컷들에게 새끼를 돌본 경험이 있는 암컷을 보여주어 모성을 훈련시키기도 한다. 많은 포유류에서 이런 식의 모성 훈련이 일어나며, 모성 훈련을 받아야 제대로 모성을 발휘할 수 있다.


양육은 학습되는 것이지만 암컷이 갓난아기에게 크게 끌리지 않는다면 학습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자 아이는 남자 아이에 비해 아기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여자 아이는 인형 장난감을 선호하며 보살핌 놀이를 한다. 아기에 대한 여성의 관심은 모든 문화에서 가장 일관되게 나타나는 젠더 차이 중 하나이다. 아기와 인형에 대한 여자 아이의 선호는 편견과 젠더 기대로 인한 정형화된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원형적인 것이다. 새끼를 돌보는 기술은 너무나도 복잡해서 본능에만 맡길 수 없기 때문에, 진화는 그 기술이 가장 필요한 젠더에게 그 훈련을 원하도록 만들었다.


수컷에게도 양육 잠재력이 있다. 붉은털원숭이 수컷 어른 한 마리와 암컷 어른 한 마리가 있는 우리에 새끼 한 마리를 집어넣으면 새끼에 반응하는 쪽은 언제나 암컷이다. 수컷은 새끼를 거의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새끼 원숭이를 혼자 있는 수컷 어른의 방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 대다수 수컷은 결국 암컷이 한 것과 똑같은 일을 한다. 수컷 영장류는 새끼에 완전히 무관심하지 않다. 수컷은 새끼를 보호하고, 어미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새끼를 돌본다. 가끔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새끼를 입양하기도 한다.


아비의 역할에 관해서 사람은 다른 영장류와 상당히 다르다. 남성은 기본적인 보호와 보살핌을 넘어 가족에게 실제적인 지원을 제공하도록 진화했다. 남성은 많은 영장류보다 부성이 훨씬 강하게 발달했다. 인간은 1) 수컷의 유대, 2) 암컷의 유대, 3) 핵가족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특징으로 한다. 1)은 침팬지와 2)는 보노보와 공유하는 요소이고, 3)은 인간만의 독특한 요소이다. 남녀 한쌍 결합의 유대가 인간을 다른 유인원과 구분한다.


인간이 남성을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엄청난 이점이 있었다. 새끼의 보살핌을 오로지 어미의 능력을 맡기는 대신에 수컷은 고기를 집에 가져와 새끼를 보살피는 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5~6년인 유인원 친척들의 출산 간격을 현생 수렵 채집인은 3~4년으로 줄일 수 있었고, 인류의 번식 속도가 빨라져 일부 가족은 자녀를 10명 이상까지 두게 되었다. 이것은 유인원에게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어미 유인원 혼자 새끼들을 데리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그 가족 규모는 심각한 제약을 받는다.


성적인 자유로움을 제약하는 결혼 제도는 남녀 모두에게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불리할 수 있는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문화 속에서 지속된 이유가 이것이구나 싶었다. 여성은 한 남성의 자식만을 낳는 대신 안정적인 지원을 얻고, 남성은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자신의 자식만을 안정적으로 길러낼 것을 보장받는 것이다.


뇌는 유연해서 상황과 행동에 따라 변화한다. 남성의 뇌도 육아를 얼마나 많이 책임지느냐에 따라 변한다. 자녀 양육에 많이 관여하는 아버지들의 혈액에서 옥시토신 수치 증가와 뇌에서 더 활동적이고 더 잘 연결된 편도가 발견된다. 신경학적으로 그들의 뇌는 어머니의 특성을 가진다. 첫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의 옥시토신 수치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감소한다. 짝짓기 상대를 물색하는 젊은 남성에서 가족에게 더 헌신적인 남성으로 변해간다. 아버지는 양육에 관여할 능력 혹은 잠재력이 있으며, 그것이 우리 종의 생물학에서 본질적인 부분이다.


아버지의 말고도 우리 종에게는 다른 양육 조력자가 있다. 바로 어머니의 어머니인 외할머니이다. 할머니의 조력은 인간 종의 이른 폐경을 설명한다. 우리는 영장류 중에서 유일하게 암컷의 수명이 가임기를 훌쩍 넘어가는 종이다. 여성 중 약 1/3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나이를 넘어선다. 반면 암컷 침팬지는 노쇠해도 계속해서 출산과 양육에 시달린다. 이른 폐경은 진화적 혁신으로 하나의 생식 전략이다. 나이 든 여성이 자신의 유전적 유산을 늘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딸의 자녀 양육을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장류 공동체는 어미의 양육 노력을 모두가 인정하고 존중한다. 어린 암컷 원숭이는 처음 어미가 되는 순간 지위가 상승한다. 갓난 새끼를 안고 있으면 즉각 존중과 후한 대접을 받는다. 한동안은 자신보다 서열이 훨씬 높은 원숭이 바로 옆에서 먹거나 마실 수도 있다. 아이를 낳는 순간 잠재적 민폐 유발자로 멸시되는 현대 한국 사회가 다른 영장류 사회에서 본받을 점이라고 본다.




12장. 동성 섹스


동성애 행동을 보이는 동물의 섹슈얼리티는 동성애를 정상화하는 데 놀라운 역할을 했다. 그것은 동성애가 자연의 법칙을 거역한다는 주장이 엉터리임을 드러냈다. 이 엉터리 주장은 만약 이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동성애는 비정상적인 것이 틀림없다는 논리를 펼쳤다. 마치 둘은 양립할 수 없다는 듯이!


사실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압력은 최근에 생겨난 현상이다. 그전에도 동성애 행위는 많았지만,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은 없었다. 성적 지향성을 단 두 가지 범주로 나누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우리는 동성애와 이성애에 둘 다 끌릴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범주로 자르고 쪼개 억지로 넣으려고 하면 진실에 닿기 어렵다.


사람들은 동물의 섹슈얼리티를 ‘번식 행동’이라고 부르면서 순전히 기능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재미도 사랑도 만족도 변화도 없고 성숙한 수컷과 가임기 암컷이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수행하는 업무인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실천해야 한다고 믿는 성생활을 동물에게 투영한 것이다. 인간은 성적인 죄 목록에 동성애, 항문 섹스, 심지어 산아 제한까지 포함시키며 생식과 관련 없는 성행위를 죄악으로 본다. 그러나 일부 종에서 전체 성적 행동 중 3/4는 생식과 아무 관계없이 일어나고, 생식이 성공할 수 없는 조합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정자를 난자 가까이에 보낼 수 없는 형태로 일어나기도 한다.


동성애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진화의 수수께끼라고 부른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생식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적 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가 있을까? 진화론은 이런 성적 가능성을 허용한다.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진화했지만 다른 이유로도 쓰이는 특성은 차고 넘친다. 우리의 양육 경향은 생물학적 자녀를 키우기 위해 진화했지만 귀여운 강아지에게 향할 수 있다. 동물은 종이 다른 새끼를 입양하기도 하고, 사람 역시 입양을 한다. 공감 능력은 새끼를 키우기 위해 발전된 것이지만 공감이 진화적인 의도로만 쓰이지 않으며, 가족을 벗어나서도 심지어 종이 다른 개체들에게도 적용된다.


이런 맥락은 섹스에도 적용할 수 있다. 생식기와 성적 충동이 생식을 위해 생겨난 것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결과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섹스를 한다. 짝짓기와 생식의 관계를 모르는 동물들은 더욱 그렇다. 동물이 수정에 대해 생각한다는 증거는 없으며, 동물이 짝짓기를 하는 이유는 서로에게 끌리거나 즐겁기 때문이지 생식을 원해서가 아니다. 모르는 것을 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동성애 행동은 특이한 것이 아니다. 


사람과 동물의 섹슈얼리티는 놀랍도록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성적 지향성이나 표현을 바탕으로 한 거부는 다른 영장류에서 단 한 번도 보고되지 않았다. 그들은 잘 통합되어 지낸다. 진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성애자 남성이 게이에게 나타내는 증오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남성 이성애자는 다른 남성이 여성을 둘러싼 경쟁에 뛰어드는 대신 서로에게 자신의 씨를 낭비하는 것을 보고 기뻐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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