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앞에는 자주 가는 중국집이 있었다. 물론 내가 가는 중국집이 아니라 회사에서 가는 중국집이다. 홍대라서 주변에 맛집과 회식할 공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반지하 중국집은 고정적인 장소였다. 우선 회사 정문을 나와서 20걸음 정도밖에 안된다. 그리고 내부 공간도 10명 남짓밖에 못 들어가는데, 회식을 하면 딱 우리 부서가 들어가면 가득 찼기 때문일까? 이유가 어떻든 간에 그 중국집은 많으면 1주일에 한 번,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갔다. 점심은 제외하고.
그러던 어느 늦가을, 그 중국집에서 따뜻한 깐풍기와 깐쇼새우, 볶음 짜장을 먹기로 했다. 날도 추워지니 뜨끈한 중화요리에 한 잔 하다는 의미였으나, 여름에는 이열치열이었다고 하고 평소에는 가까운 데 가자고 하고, 이유는 항상 달랐으나 목적지는 항상 같았다. 그리고 나는 제일 먼저 가서 자리와 메뉴, 시간을 예약하고 수저와 물을 세팅해 놨다. 그리고 시작된 늦가을 회식, 야근이 없었으니 모두가 참석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 시기 큰 고민이 있었다.
나는 졸업을 아직 하지 못한 상태에서 졸업시험을 보거나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고 (1주일에 일요일 하루밖에 못 쉬는데 어떻게 논문을 쓰는가!!) 졸업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연차를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분명했다.
"졸업이야 취직했으니까 그냥 F 받고 나오면 되는 거 아니야? 무슨 졸업시험이나 논문이 필요하냐"
네, 부장님 시대에는 그러셨을 수도 있겠지요. 연차는 쓰지 말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우리 대학은 졸업시험 또는 논문이 필수사항이었다. 나는 입사 후 6개월이 지났지만 하루도 연차를 쓰지 못했다. 그 부장님도 하루도 안 썼다. 매일 저녁까지 먹으면서 주식시장을 누비는 분께 연차가 필요하시랴! 그렇게 하루 연차도 못쓰게 되면서 결국 졸업시험도 물 건너가게 되었다.
방법은 2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부장님 말대로(그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겠지만) 대졸이 아닌 고졸로 끝내는 것, 두 번째는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회식 자리에서 모두가 취한 뒤, 부장님은 9시 전에 가고 과장과 대리만 남았을 때, 그들의 화재거리는 내년의 연봉이었다. 매우 솔직한 이야기가 오갔고, 서로의 연봉에 대해서 슬쩍 이야기를 했다. 모 대리가 첫 이야기를 꺼냈다.
"과장님 여기 오신 지 6년? 내년이 7년 차시죠? 내년에 얼마나 받으실 거 같아요?"
내가 들어오면서 일이 좀 더 빨라지고 그에 따라 일감도 더 많이 들어왔다. 당연하지만 과장님의 역할도 커지고 매출도 높아진 것은 기정사실, 과장님은 고민도 없이 바로 답했다.
"야, 어차피 안 올려줘~ 한 달에 200 좀 더 받으면 많이 받는 거지~ 10만 원이라도 더 올려주면 좋겠다~~"
"에이 과장님, 전 200도 안돼요. 저랑 2년 차이 나시는데 저는 200이라도 줬으면 좋겠습니다."
"욕심내지 말라니까? 어차피 안 올려줘~~ 사장님 알잖아~~ 부장님이 월급 다 가져가는데 뭐... 한 400 받으시나? 20년 일하셨지?"
어라, 과장님이 겨우 200 조금 더 받는다고? 예상보다 너무 적었다. 대기업 간 내 친구는 초봉으로 3,500만 원을 받았다. 실수령을 계산하면... 신입사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리고 부장님이 400? 아무 일도 안 하고 400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20년을 일해도 400만 원이면 이건 무언가 이상하다. 회식 자리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맑아졌고, 그렇다면 내 결론은 너무 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