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활 근 10년동안 나도 모르게 요리실력이 너무 늘어버렸다. 이제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요리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더군다나 한국이 아닌 대형 한인마트가 아닌 작은 슈퍼같은 한인/아시안마트가 있는 미국의 작은 동네에 살다 보니 가끔은 조금 낯선 재료들로 한식을 만들어 내야 했으니 응용력은 내가 한 발 앞선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처음 자취를 시작했던 대학교 1학년, 스무살엔 다들 뚝딱 만들어내는 것 같은 떡볶이조차 너무 어려웠다.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고춧가루와 고추장은 얼마나 넣어야 하며 간장을 넣어야 하는지 소금을 넣어야 하는지조차 잘 몰랐다. 사람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 다르다 보니 수많은 레시피 중에 내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찾아내는 것도 어려웠다. 재료를 사다가 버리기 일쑤였고 맛은 없지만 그래도 먹을 수는 있는 음식을 먹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맛없는 것을 먹고 살 수는 없었기에 수행을 시작해야 했다. 게다가 원하는 한국음식을 사먹을 수도 없는 환경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손을 바삐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자주 해먹었던 아이템은 닭갈비를 가장한 무언가였던 것 같다. 미국생활 1년 차에는 여전히 양념의 비율과 물을 얼마나 과감하게 사용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만들어내는 모든 것이 상당히 짜게 먹는 내 입맛에도 좀 짰다(왜인지 자존심이 상해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은 맛도 비주얼도 꽤 그럴 싸한 음식을 연성해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잡채는 물론이고 갈비찜도 뚝딱해낼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먹고 싶은 것을 참았다 다음에 한국에 나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실력이 늘어버릴 것이라곤 상상해보지도 않았고 기대도 없었다. 그냥 적당히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타국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맛이 훅 늘어버렸다. 뭔가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면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기는데 그 사진들을 나중에 보면 굉장히 뿌듯하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친구들에게 보내어 친구들의 군침을 돌게 만들면 묘한 만족감도 든다. 그리고 요리를 해서 남에게 대접하는 것이 취미는 아니지만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면 확실히 기분은 좋았다.
2020년 코로나 판데믹이 터진 후에는 요리뿐만 아니라 그 전엔 전혀 관심없던 베이킹에도 눈이 좀 뜨이기 시작했다. 판데믹으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심심함과 무료함을 달랠 무언가가 필요했고 손을 움직이고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베이킹은 집안에서 즐길 수 있는 좋은 취미생활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각을 재고 계량을 해서 요리하는 습관이 들어있지 않던 나는 최대한 손쉬운 베이킹레시피들을 찾았다.
간단한 레시피를 얻기에는 트위터만큼 좋은 플랫폼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타임라인에 나타난 재료 4가지로 만드는 크림스콘의 레시피는 내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그렇게 바로 퇴근 후 마트에서 생크림을 구입해서 따라 만들어 보았는데 이게 웬걸. 스콘이 이렇게나 간단하게 만들어지는 것이었단 말이야?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고소하고 맛이 좋았다. 한 번 성공한 후에는 말차도 넣어보고 이것저것 넣어 보며 응용도 해보았다.
요즘은 조금 체력적으로 지쳐서 전보다는 다양한 요리를 하고 있지 않다. 사실 부엌이 조금 쉬는 중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무언가를 연성해서 먹고 싶다는 열망과 의욕이 조금 떨어진 상태라 그냥 그저 그런 똑같은 메뉴만을 반복해서 먹는 중인데 뭐 언젠가는 그 의욕이 되돌아 오지 않을까. 그 때가 된다면 또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