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가장 미국같은 동네에서의 일상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지난 8년동안 많이 울었고 많이 웃으면서 이 곳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버렸다. 사실 이 곳에 이렇게 오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 없었는데 살다 보니 어느새 8년이나 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미국하면 화려한 불빛과 바쁜 일상을 뽐내는 뉴욕과 같은 큰 대도시들을 상상하기 마련이지만 사실 전통적인 미국인들의 생활은 국토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suburban 이라고 불리우는 작은 도시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고층건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며 녹음이 가득하고 아파트형태의 주거형태보다는 넓게 늘어선 주택들이 많으며 중심가에서 차로 10분정도 달리면 펼쳐지는 농경지대들. 내가 살고 있는 지역도 딱 그런 모습이다.
여기는 캠퍼스 타운이라 한국인들(학생과 교민)이 꽤 있는 편이지만 사실 아이오와(Iowa)라는 곳은 한국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조금 생소한 곳이기도 하다.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지인들과 친구들은 꼭 '니가 있는 곳이 그..오하이오?' 라고 한 일년간은 헷갈려 했으니 오하이오주보다 덜 알려진 주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이제는 조금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여기 처음 도착했을 때가 생각난다.
굉장히 추운 겨울이었고 눈이 어마어마하게 온 해였다. 이 곳의 겨울은 항상 매우 춥지만 4-5년의 주기로 꼭 극심한 추위가 돌아오곤 하는데 2014년이 딱 그런 해였다고 하는 얘기를 후에 들었었다. 눈만 뜨면 오름처럼 눈이 창밖에 쌓여있었고 학교를 가려고 나오면 발이 푹푹 빠져 양말이 매번 젖었다. 한국도 추위하면 저리가라하는 나라지만 나는 정말 살면서 코털이 얼고 숨을 쉴 때마다 폐가 시원해진다는 건 이 곳에서 처음 느껴봤기에 충격적이기도 했다. 아, 이게 영하 30도의 추위구나.
극심한 추위보다도 유학생들을 괴롭게 만드는 건 한국에 비해 너무나도 부족한 유흥거리였다. 지금에서야 이 느긋한 생활리듬에 완벽하게 적응해버려 이제 이 동네를 벗어나 바쁜 곳에서 살면 어떻게 살까, 하는 고민을 하지만 초반엔 나 역시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이 동네에서 어떻게서든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인구가 10만이 채 되지 않고 오후 6시가 지나면 다운타운의 식당과 카페를 제외한 일반 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한국의 중소도시에서 온 나에게도 그런 모습은 좀 낯설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는데 서울에서 온 학생들에겐 문화충격도 그런 문화충격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런지 다들 한 1년정도 지내고 나면 대충 적응을 하고 이곳을 떠나고 난 후엔 그립다는 말도 한다.
이렇게 단순한 생활이 반복되는 동네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문화가 생긴다. 미국은 전체적으로 지역상권 살리기에 정말 진심이다. 대기업 프렌차이즈의 나라에서 역설적이지 않은가 싶지만 사람들은 웬만하면 스타벅스보단 로컬카페를 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5월부터 10월까지 열리는 파머스 마켓에도 역시 굉장히 진심이다.
우리 지역의 파머스 마켓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가끔 일찍 일어나고 의욕이 있는 토요일 아침에 방문하면 꽤나 재밌는 곳이다. 요즘은 코로나때문에 밴드공연이 없지만 아주 머나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코로나 이전에는 밴드가 매주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농부들과 핸드크래프트 작가들이 상품을 가지고 나와 자신의 물건을 홍보하는 모습도 재밌고 온동네 강아지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요소중 하나이다. 정말 사람 반 개 반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반려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미국의 모습은 사실 작정하고 찾아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다. 이 곳은 유명한 여행지도 아니고 서부의 자연환경처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도 아니기에 미디어에도 잘 볼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 여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고 미국다운 미국의 생활을 전달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