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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비드 박 Jul 12. 2022

이역만리에서 벌어진 집 구하기 풍경

싱가포르에서 집 구하기

싱가포르 항공권 판매 중단 기사


COVID-19 친구가 극에 달 했을 때보다 요즘은  간소해졌지만  집 구하러 싱가포르로 떠났을 시기만 해도 요구하는 서류 및 준비물들이 10가지 이상은 되었다. 마치 선주가 선적을 할 때 원산지증명서, 포장명세서, 검역증명서 등 온갖 것들을 준비해오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 이릴까..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녀석'은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도 예외일 순 없었다. 뉴스 기사를 찾아보니 바로 내일 항공권 판매 중단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세상은 왜 우리에게 이토록 시련을 주시는 가에 대한 물음을 답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식으로 비싼 가격에 티켓팅을 해야 했다.


하지만 더 최악은 또 있었다. 불과 3~4개월 전(첫 번째 회사의 면접을 앞둔 시점에서의 검색) 2,000 SGD(싱가포르 달러) 대에서 구할 수 있던 월세 시세가 당시 1,000 SGD 이상 오른 3,000 SGD대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었다. 같은 집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무슨 개떡 같은 경우인지 무척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이 연봉에 이 월세라면 가는 것이 옳은 결정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와이프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일단 고!"


역시 쏘쿨한 그녀였다.




'못 먹어도 고'를 외친 와이프와 난 또 집을 미리 어느 정도 정했어야 했는데 HDB로 갈지, 콘도로 갈지, 아니면 일반주택으로 갈지 선택이 필요했다. HDB는 말 그대로 아파트를 말하는데, 한국의 아파트와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콘도는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콘도가 맞는데, 콘도 안에 수영장, 헬스장 등 다양한 퍼실리티가 혼재해있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일반주택은 마당, 차고지가 딸려있는 고급주택인데, 사실 현지에서 차량 구매를 포기한 우리에게 차고지와 마당은 말 그대로 사치에 불과했다.


결국 HDB와 콘도에서 나뉘었는데 결론은 보안시설, 퍼실리티를 이용할 수 있는 콘도로 결정되었다. 비록 HDB에 비해 콘도가 더 비싼 가격은 맞지만 보통 외국인 노동자들의 첫 번째 픽이기도 하고 이런 퍼실리티들을 포기할 수 없기에 콘도는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어떤 콘도냐 라는 물음에 배팅을 할 차례였다. 방 2개, 발코니 1개 이상 포함, 부분 가구 배치, 최소 30분 내의 직주근접의 옵션을 포함하여 6개의 후보들을 선정하였다. 우린 '프로퍼티 그루'라는 어플을 이용하여 집을 찾았다. 집의 성격과 위치, 기타 옵션을 포함한 상세조건 검색, 디테일한 뷰잉 사진까지 처음 접하는 것 치고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다른 어떤 준비보다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싱가포르는 역시 한국처럼 직거래를 통하거나 부동산 에이전트를 통해 거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거래는 말 그대로 집주인과 직접 원하는 날짜에 약속을 잡아 잘 알지도 못하는 계약서를 찾아야 하고, 현지 부동산 계약과 관련한 법률도 알고 있어야 했다. 물론 에이전트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찬스였지만 시간도 없었고, 직거래로 구할 자신도 없었다.


정착할 곳이란 의미의 '집'은 소중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오랜 시간 함께할 무엇보다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하다. 우린 이런 집을 허투루 보지 않고 '들인 만큼 얻는 것도 있는 돈의 의미'를 담기로 했다. 에이전트 비용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불행 중 다행히 와이프 지인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현지 에이전트에게 부탁할 수 있었고, 본래 마음에 두었던 6개의 콘도를 요청하였다.


룰루랄라 신나게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에이전트의 연락을 받았다. 미리 정해놓은 콘도 6개 중 4개가 계약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1,2개라면 그럴 수 있다고 넘길 수 있지만 4개라니 거짓말하는 것 같았다. 2개만 보고 가야 하는 사실에 투자한 시간과 돈이 너무 아까웠다.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속상한 사정이 딱했는지 다시 3개를 추가해줬다. 에이전트의 추천이 우리와 맞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어쩌면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냥 가야지 뭐.."


기운이 없었다. 지쳐있었다. 그래도 가야 했다. 다시 낼 수 없는 휴가였고, 이미 공항이었다. 찜찜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싱가포르에 터덜터덜 도착하였다. 그래도 여행 온 기분도 있어서 그런지 기분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에이전트가 우리가 잡은 호텔로 픽업을 해주었고, 반갑게 인사했다.


"Hi, Nice to meet you."

"Nice to meet you too."


이건 뭐 교과서에 충실했던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자동으로 툭 튀어나오는 아주 나이스 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에이전트의 속사포 같은 영어가 쏟아져 나왔다. 낯설었고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와이프는 제법 알아듣고 답변을 하였다. 와이프도 낯설었다.. 시간이 흐르자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혼자 스산해졌다. 나중에 대화가 끊어졌을 때 살짝 한국말로 물어보았다. 어쩐지 와이프의 리스닝 스킬은 그간 홍콩, 마카오 출장에서 다져진 귀를 갖고 있었고, 전부는 아니지만 50% 이상은 들린다고 했다. 어쩌면 천만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싱 영어가 낯설었던 이유는 보통 우리가 알던 영어와는 다르게 문장 끝부분에 'lah, leh'를 붙이기 때문이다. 뭔가 계속 붙이는 것 같은데 그 붙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억양도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알아보니 중국식 발음과 영어가 혼합되어 나오는 '그들만의 영어'였던 것이다. 실제로 현지 학교, 학원에서는 싱가포르식 영어를 쓰지 말라고 교육시킨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가능할 수 있어도 세계에선 통하지 않는 발음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자주 틀리는 'P와 F 발음의 차이'처럼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어려운 대화가 이어갈 때쯤 첫 뷰잉 콘도에 다다랐다.

 


Parc Condominium 내부 사진

현지 에이전트가 보여준 첫 집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Parc Condominium'이라는 곳인데 국내에서 미리 찜해둔 곳이기도 했고, 가장 평수가 넓었다. 그런데 역시 집은 직접 봐야 한다는 말이 백번 맞다. 곳곳마다 보수해야 할 곳이 투성이었고, 벽 페인트는 벗겨져 있었고, 쇠붙이는 녹슬어 있으며, 세면대도 갈라져 있었고 심지어 거미줄도 보였다. 집주인이 관리를 허술하게 했다는 정도의 범위를 넘어선 것 같았다. 첫 집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린 이제 첫 번째 집을 보았을 뿐이었다. 용기를 내어 다른 집으로 갔다.


두 번째 집은 'Clement Canopy'라는 콘도였다. 2019년 신축! 게다가 와이프가 수영장이 아름답다고 극찬한 곳이었다. 그곳은 입구부터 남달랐다. 프랑스 정원에 온 듯 반듯한 야자수들이 듬직하게 반겨주었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어렴풋이 보이는 에메랄드 빛깔의 수영장은 마치 여느 제주도의 바닷물과 같았다. 어느 한 백인이 책을 들고 썬베드에 누워 지나가던 우리와 눈을 마주쳤다. 자신은 행복하다는 표정이었다. 감동이었다. 이곳은 첫 번째 집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뷰잉 한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34층에 올랐다. 마침 우리처럼 다른 커플들이 임장을 하던 터라 문 앞에서 웨이팅을 했다. 맛집에서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 집이다 싶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외국인 부부와 작고 귀여운 아이가 집을 소개해줬다.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이 거실이었고 베란다였는데 그날따라 바람이 매우 심하게 불어 집안 곳곳에 있던 아이 장난감들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와이프는 직감했는지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무언의 어떤 교신이랄까.. 다시 방도 보고 하였지만 좁은 실내 공간과 인상 깊었던 강렬한 바람은 '우리 마음속의 수영장'으로만 남기기로 했다.. 이렇게 우리가 선택한 두 개의 집이 모두 끝이 났다..


Clement Canopy 수영장


세 번째 집은 'Sky Vue'. 에이전트 첫 번째 이었다. 가는 동안 이 집의 장점을 랩처럼 속사포로 말해주었다.. 싱가포르 중심부 bishan에 위치해 있어 동서남북 어디로 뻗어도 편하고, 푸드센터, 대형몰, 공원 등 주변 편의시설 역시 놓치지 않고 강조해주었다. 직접 고층에 올라 콘도 이름처럼 뻥뷰를 보여주기도 했고, 여기서 살면 어떤 장점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어필해주었다. 거의 마음이 기울어 가던 차 한 가지 놓치고 있던 점이 있었다. 우리가 중요시하게 생각했던 '직주근접'. 거리를 계산해보니 약 1시간 가까이 걸렸다. 타향살이하면서 왕복 2시간을 소비할 수 없었다. 그것만은 말리고 싶어 설득하였더니 설득당한 그녀였다.


네 번째 집은 'Centro Residence'라는 곳이다. 월세가 가장 저렴한 집이었다. 와이프는 집 구조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주방과 거실이 일체형이 아닌 분리된 공간과 주방이 가려지는 유일한 콘도였다. 하지만 어질러진 세입자의 잡동사니들과 쓰레기장 뷰, 'Sky Vue' 보다 먼 거리 때문에 다시 길을 나서야 했다. 집을 구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네 번째 집부터 시작된 것 같다.


마지막 다섯 번째 집. 'Commonwealth Towers'. 정문 입구에 폭포수가 있었다. 조경에 힘을 쓴 것 같았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블랙 칼라를 갖고 있어 모던하고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수영장이 있었는데, 2층에 한 곳이 더 있었고, 프라이빗한 자쿠지도 있었다. 지나가면서 본 테니스장, 헬스장, 바베큐장도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사설 도서관과 파티룸(다이닝룸)도 있었다. 당시 에이전트는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이 콘도와 바로 연결되었다고 한마디 더 보탰다. 이만한 곳이 없었다.


"내 평생 초역세권, 버세권에서 언제 살아볼까.."


이곳도 역시 세입자가 있었다. 중국인 부부였는데 아이도 있었지만 나름 깔끔하게 사용 중이었다. 본래 있던 소파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런 사소한 부분에 신경 쓸 정도의 여유는 버린 지 오래였다. 이미 콘도 외부에서 쏙 마음에 들었던 터라 나쁘지 않은 내부도 한몫 더해주었다.


이튿날 이 집으로 계약하려고 마음먹었다. 다 좋았는데 조금 비싼 월세가 마음에 걸렸다. 집주인과 딜이 필요했다. 얼마를 부를까.. 중요한 순간이었다. 여차하면 집주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여 대사를 그르칠까 걱정했다. 너무 적은 네고는 다소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그 어디 중간 지점에서의 가격을 생각해내야 했다. 다시 부동산 어플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끼리 집주인, 세입자 시물레이션도 돌려보았다.


셋째 날 중간지점 그 가격으로 딜을 했다. 운이 다하지 않았는지 원하는 가격을 한 번에 승인해주었다! 조금 지나면 마음이 변할까 봐 에이전트에게 얼른 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싸인이 끝나자 묵혀있던 마음이 어느 정도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된 소식이지만 콘도 앞 버스정류장에 회사 셔틀버스도 온다 했다. 집 주변에 공원 산책로까지 있어 금상첨화였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내 머릿속엔 'Clement Canopy 수영장'이 어렴풋이 스쳐갔다. 하지만 우리 집은 'Commonwealth Towers'로 결정되었다.

Commonwealth Towers 야경


이번 싱가포르 집 구하기 프로젝트는 집을 구하는 과정도 까다로웠지만 ART 검사가 우릴 몹시 괴롭혔다. 모든 병원이 실행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지정된 전문병원을 찾아 직접 예약하고, 검사받고, 결과지를 받아 정부기관 어플에 업로딩을 해야 비로소 외출이 가능했다. 자가 키트 검사나 PCR 검사는 내가 있는 곳이나 가는 길목에 있어 빠른 납득이 되었지만 ART 검사는 우리의 시간을 반나절은 잡아먹었다. 그래도 누가 우릴 쫒았다니며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유난히 걱정이 많은 탓에 열심히 하였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랄까.. 여하튼 우리의 집 구하기는 성공의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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