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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비드 박 Jul 19. 2022

10년의 직장 생활 그리고 퇴사 결심까지

나의 퇴사 일기


누구에게나 퇴사는 다르게 다가온다. 명예퇴직을 하는 사람, 창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 회사에 어떤 큰 손실을 입혀 잘리는 사람, 그냥 백수가 되고 싶어 떠나는 사람 등등 퇴사를 결심하는 사람들은 이렇듯 각자의 사정이 있다. 나는 이들과는 다르게 해외 이민으로 퇴사를 결심했다. 사실 주재원으로 간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배우자의 해외취업으로 인한 자발적 퇴사이다. 조금은 다른 그렇지만 색다른 경험을 하는 중이다.


기러기가 될 수 있었다. 당장 해외취업을 할 수 없는 난 국내에서 커리어를 계속 이어갈 수도 있었다. 역시나 가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다. 너무 섣부른 판단은 아닌지 모험하는 건 아닌지 당장 가면 무얼 할 것인지 걱정만 앞선다고 했다. 하지만 신혼 1년 만에 기러기가 될 수 없었다. 무조건 같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와이프의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 수 도 없었다. 어쩌면 인생에 단 1번만 올 수 있는 순간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왜 가지 않았을까?'라는 후회 섞인 말을 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나도.. 살면서 후회했던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떠났어야 했던 것이 정답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현재로써는 일단 만족이다. 퇴사를 만족했다는 것은 아니다. 퇴사를 했음에도 시간적 여유, 정신적 여유, 다른 일을 찾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만족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 이렇게 한가롭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퇴사를 했기 때문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퇴사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이상은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애써 위로하는 중이기도 하다. 역시 돈을 번다는 의미는 가장으로써 한 가정을 책임진다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느낌이다. 만약 내가 돈을 벌지 못하면 그 자격을 잃게 되는 느낌도 들 수 있겠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기에 여유가 생겼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격도 잃었다..


친구가 기억에 남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네가 평생 살면서 어디에 제일 오랫동안 있을 것 같냐?"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가 다르다. 일찍 퇴사하는 사람은 집이 될 확률이 높고, 명예퇴직을 하는 사람은 회사일 경우가 높다. 퇴사의 시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물론 나도 이미 퇴사를 한 경우지만 다시 회사에 입사할 수 있다. 이곳 싱가포르가 될 수도 있고, 다시 한국에서 재취업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회사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 있겠다.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나의 인생이 바뀔 수 도 있겠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직장은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곳이라고.. 나도 그런 것 같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뛰어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얻고 싶은 것도 많았음에도 분명 나와 같이 마지못해 취업전선에 뛰어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처음엔 졸업장 하나만 믿고 뛰어들었다. 지원하면 1곳 정도는 바로 될 줄 알았다. 무식하다 못해 생각조차 없었다. 그래도 그 용기 한번 백번 칭찬해 주고 싶었던 것이 운이 좋아서 말이지 취업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10년간 재직한 직장만 4개다. 그 정도면 평범하게 잘 다녔다는 사람도 있고, 끈기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네가 다른 조건이 좋아서 떠나는데 어떻게 붙잡느냐는 사람도 있다. 뭐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모두가 부질없다고 본다. 어찌 되었든 나는 현재 퇴사자이고,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남겨진 이 이역만리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 중심에 이 브런치 작가가 있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미친 듯이 즐기고 있다. 글쓰기가 힐링타임이 될 줄은 한국에선 미처 몰랐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유독 싱가포르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살던 고향이 아닌 낯선 땅이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고객을 찾아가는 영업사원들

제약회사, 외국계, 바이오 회사의 영업직 업무를 담당했다. 첫 회사가 모 제약회사였는데 내가 처음 맡은 업무는 약국에 투입할 독일산 화장품을 제품설명회를 어 소개하는 것이었다. 전국 방방곡곡 어느 한 곳 소홀이 안다녀 본 곳이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엔 서울, 경기지역을 담당하다가 나중엔 전라도 전주, 익산, 광주, 목포, 여수, 광양까지 갔다. 그리고 나와 같은 부서에 배치되었던 동기가 빠지는 날이면 부산도 담당하기도 했다. 이제 막 취업을 했기에 차도 없었다. 그래서 새벽이슬 맞으며 매일 KTX를 탔어야 했고, 다음날 피드백을 바랐던 상사의 지시에 그 먼 곳까지 당일치기를 했다. 그 무거운 샘플들을 잔뜩 들고 말이다. 이제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무척이나 고되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조금 일찍 퇴근한 날 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숟가락을 든 채로 졸았던 적도 있다. 그 모습이 어쩜 안쓰러웠는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으셨다고 한다..


그 뒤로 약사들을 상대하는 약국 세일즈 부서에 배치되었다. 약사들에게 자회사 약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을 정해져 있는 루틴 그대로 하루 15개의 콜을 찍어야 했다. 여기서 '콜'이란 약국 근처에서 내가 방문했는지에 관해 회사 모바일로 GPS 위치를 체킹 하는 것이다. 상당히 비 인간적인 시스템이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이직하는 동기들도 꽤 있었다. 누군가 나를 항상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을 하고 다른 제약회사에서 같은 업무로 2년을 더 보냈다.


운이 좋아 글로벌 외국계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선 조금은 다른 업무로 4년을 더 보냈다. 소매점 업무도 하였지만 기업체들을 담당하는 팀장직까지 겸하게 되었다. 연봉도 만족할만한 수준이었고, 주변에서 소개팅도 많이 들어왔다. 스스로 어떤 자만심 같은 게 생겨 소개팅도 골라서 선택했다. 굉장히 오만했고, 주제 파악도 못했다. 이맘때쯤이었나.. 나는 알 수 없는 내 직업에 대한 권태기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하는 일이 맞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점을 갖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막 퇴사를 할 것 만 같았다. 그 순간 잘 나가던 회사가 점점 무너져 갔다. 적자가 심해 사람들을 자르고 있었다. 나 그리고 선후배 할 것 없이 구조조정 소용돌이에서 피해 갈 수 없었다. 바로 그 맘 때 즈음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고, 그녀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날 떠나지 않았다.. 고마웠다.


그 뒤로 마지막 바이오 회사에 가게 되었다. 수그러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나의 자만심은 온데간데없고 내한 몸 건사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회사였다. 10년도 안 된 신생회사였지만 매출도 크게 상승하는 중이었고, 단번에 코스피 또는 코스닥으로 직행할 수 있는 엄청난 것들을 개발 중이었다. 거대한 희망을 품고 입사 후 정말 열심히 달렸더니 과장을 달아주었고, 다음 해 차장까지 달아주었다. 초고속 승진이 아닐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업직 특성상 성과가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 회사를 끝으로 퇴사를 했다..


친한 친구가 가끔씩 '너는 영업이 천직'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가슴 한편엔 '다른 일'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늘 하던 일이었고, 생존을 위해 했어야 했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 놓여 상어와 힘겹게 싸우던 '노인과 바다'의 그 노인처럼 말이다. 이제 그만 싸움터에서 내려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이렇게 글쓰기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는지 몰랐다. 학창 시절 유독 교과서에 쓸데없는 낙서를 했었는데 그게 다 어떤 그림 낙서가 아닌 글쓰기였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퇴사를 결심하고 이제는 전반적인 생활패턴이 상당 부분 바뀌었다. 한국에서 죽도록 하기 싫었던 운동을 글쓰기보다 더 집착하게 되어 짧은 시간 동안 체중도 꽤 감량했다. 또 글쓰기를 포함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을 꿈꾸기 시작했다. 실제로 몇 가지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 와이프에게도 비밀로 부친 것들도 있다. 잘되면 말하고 싶다. 아마도 이 글을 언젠가 보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비밀로 부칠 테니까.

누구나 휴식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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