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떠나고 내게 남겨진 시간은 약 1 달이었다. 이 시간 안에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무척 많았는데, 그중 가장 집중했던 부분은 중고 판매였다. 만약 팔지 못하면 2년 이상은 방치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약 50개 정도 팔았던 것 같다. 하루 평균 1개 이상은 팔았다. 냉장고, 다이닝 테이블, 의자, 침대 등 굵직한 것들 포함 잡동사니들 까지 닥치는 대로 팔았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50개를 팔다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오죽하면 친구가 '봉고차 끌고 나가야 할 것 같다'라는 소리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주로 국민 중고장터인 중XX라, 당XX켓을 이용했다. 역시 가입자수가 많아 문의 속도가 빨랐다. 업로드 후 1분 만에 연락이 와서 1시간 안에 구입했던 사람도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할 속도였다. 나는 이참에 '중고 판매 노하우'를 공개하고자 한다. 별 대단한 일도 아니고, 팔지 않고 버려도 그만이다. 하지만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공개하고 싶다.
첫째, 적절한 가격을 선정하라. 첫 번째도 가격 두 번째도 가격 세 번째도 가격이다. 가격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방치되는 물건일 뿐이다.라는 스스로의 구호를 마음에 새겼다. 우선 타인의 중고 가격을 참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분명 같은 제품이 1개 이상은 있기 때문에 그 가격의 평균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10만 원 어떤 사람이 8만 원에 올렸다고 하자. 두 개의 평균 가는 9만 원이기 때문에 우선 그 가격을 잡는다. 그런데 다시 보니 8만 원은 이미 팔리고 없는 상품이고, 10만 원은 아직 팔리지 않은 상품이라면 9만 원을 판매가로 선정한다. 하지만 두 개다 팔리지 않은 상품이면 8만 원보다 저렴한 7만 원 or 7만 5천 원 정도로 가격을 선정한다. 결론은 최저가로 만들어 놓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는 점이 포인트이다.
둘째, 처음 1회 업로딩 후 익일 새로고침 업로딩은 필수. 꾸준히 노출되어야 그만큼 판매될 확률도 높아진다. 특히 업로딩 시간은 오전 8시 30분으로 정했다. 너무 이른 새벽 시간은 피하고 아침 출근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볼 것이라 판단하고 그 시간으로 정하였다. 사실 퇴근시간도 가능할 수 있지만 새로고침의 업로딩은 하루 단위로 계산된다. 최대치의 노출시간을 위해 오전 출근시간으로 정했다.
셋째, 상세한 사진도 필수. 사진 1,2장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첫 판매는 와이프와 나의 커플 신발이었는데, 업로딩 한 사진은 전체 사진 딱 1장이었다. 인기 있는 브랜드의 신발이라 연락이 많이 왔음에도 판매까지 3~4일이나 소요되었다. 원인을 분석해보았다. 문의자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신발 밑창 사진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만약 보여주지 않으면 읽씹이 일쑤였다..
"왜 굳이 밑창일까" 하고 알아보았더니 정품과 가품을 구별하기 위해 밑창 사진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역시 만족할만한 사진 전달이 안되어 판매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 모든 제품의 사진은 5장 이장이 되었다. 그 뒤로 정말 판매가 잘되었던 것 같다.
넷째, 구매자가 원하는 답만 하기. 쓸데없는 논쟁을 피하기도 좋다. 묻지도 않은 답을 하면 상대방은 짜증이 난다. 항상 원하는 답을 먼저 해주었다. 그리고 다른 질문이 와도 그 질문에 원하는 답만 해주었다. 길지 않게 핵심만. 특히 가격 네고에 관한 문의가 상당했는데, 너무 심한 네고는 죄송하다. 미안하다 식의 더 접근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답변보다는 얼마 얼마까지는 허용하겠다 라는 식의 구체적인 답을 주었다. 확실히 선을 그어주니 본인도 어느 정도 판단히 섰는지 서로 간에 허비하는 시간이 없었다.
다섯째, 구매자와 만나는 장소는 최대한 합리적으로 정하기. 판매자와 구매자의 거리가 10km 이상 차이가 나면 무조건 선입금 후 택배 방식을 사용했다. 판매를 위해 직접 찾아갈 수 없는 노릇이고, 구매를 위해 10km 이상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 택배는 우체국과 상당히 거리가 있어 편의점 택배를 우선적으로 선택했다. 또 직접구매자, 판매자 및 제품 정보를 편의점 택배 홈페이지를 이용해서 사전 업데이트하였다. 그리하면 편의점에서 따로 주소지 등등을 입력할 필요가 없어 상당한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편의점 택배 키오스크는 정말 느리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10km 이내 분들은 딱 1회를 제외하고 정말이지 고맙게도 집 앞까지 와주셨다.
마지막 여섯째. 택배박스는 미리 구하기. 박스가 없으면 택배를 보낼 수 없다. 특히 편의점은 반드시 박스의 크기가 가로 x 세로 x 높이 합이 160cm 이내여야 했다. 만약 1cm라도 초과하면 절대 접수되지 않았다. 참고로 반값 택배는 100cm가 초과되지 않아야 한다. 박스는 예전온라인 구매 후 받았던 택배박스를 최대한으로 재활용했고, 되도록 깨끗한 박스만 사용했다. 급할 땐아파트, 빌라 앞 길에서 주웠다.. 물론 우체국에서 구입할 수 있었지만 거리가 있었기에 시간을 아껴야 했다. 이 자리를 빌려 폐지를 수거하시는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
한 편의점 택배 접수 키오스크에서
중고 휴대폰을 판매 후 받은 현금
그럭저럭 중고 판매를 진행하면서 나의 몸은 점점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컴퓨터 책상과 의자가 팔리고 난 후 온라인 작업은 대부분 누워서 해야 했는데, 누워서 하는 일이 극도로 불편했던 나는 다시 일회성 테이블과 의자가 긴급하게 필요했다. 평소 중고 판매 때문에 들락날락했던 앱을 이용해 다시 구매를 도전했다. 당XX켓은 특히 거주지역 근처의 판매자만을 확인할 수 있어 근거리에서 쉽게 원하는 제품을 구할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나는 이점을 이용하여 단 1시간 만에 테이블과 의자를 한꺼번에 구했다. 심지어 구매하러 가는 노선에 두 명의 판매자가 한꺼번에 묶여 있었다. 운도 따라 주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테이블과 의자는 유용하게 사용한 뒤 출국 바로 이틀 전 판매하지 않고 미리 찜한 친한 친구에게 주었다. 당시 친구가 웃으며 했던 말이 인상 깊었다.
"이렇게까지 팔아야 했냐?"
맞는 말이다. 물론 나 조차도 느꼈던 점이다. 하지만 시간을 거듭할수록 집안에 있는 것들이 하나씩 팔려나가고 눈앞에서 사라질 때마다 무언가 모를 짜릿한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 속 시원하기도 했다. 특히 팔지 않으면 보관이 어려워 버려야 하는 것들은 매우 아까웠다. 구입한 지 1년 된 거의 새 제품 들이기 때문이었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있다. '곤수유투'. 회사 지원서에 사자성어를 묻는 질문란에 항상 고민 없이 이 단어를 적었던 것 같다. '궁지에 빠진 쥐가 고양이를 문다'라는 말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더욱 저항한다는 뜻이다. 나는 궁지에 몰리게 되면 체면이고 뭐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해내고야 마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잘 다니고 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약 1년간 독학으로 편입학했던 것. 또 입학 후 어려운 집안 환경에 홀로 전 학기 학비를 벌어야 했는데,호텔 및 음식점 서빙, 학원 수업 강사, 임상 테스트 실험, 중고가전센터 배송, 이삿짐 운반, 백화점 창고정리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조건 뛰어들었던 것. 더불어 학비 버느라 소홀했던 학업으로 인해 뒤쳐진 학점을 원하는 회사에 지원할 수 있도록 만든 것 등등. 곤수유투란 내 인생 그 자체였다.
스스로 불합리하다고 여겨졌을 때 그것을 새롭게 재탄생시킬 수 있다면 현재의 이 하찮은 몸뚱이보다는 미래의 값진 어떤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나 그리고 내 주변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 것이며 한번 사는 인생에 좀 더 후회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