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환경과 폭발적 더위의 향연
1월 집을 구하기 위해 첫 발을 딛긴 하였지만 다시 와이프를 만나고 '정착'하기 위한 진정한 의미로서의 첫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은 5월이었다. 국내에서 경험했던 내 인생 최고의 더위라고 말할 수 있었던 체감온도 40도와 견줄 정도의 더위였다. 사실 싱가포르 5~6월의 날씨는 국내와는 조금 다르게 폭염의 계절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시기에 딱 맞춰서 입국했으니.. 참으로 유별난 것 같다.
정작 이것이 싱가포르의 날씨인가? 체감할 정도로 걱정이 앞섰다. 우리가 구한 싱가포르 집은 작은 벽걸이 에어컨 4대가 갖춰져 있었는데 안방, 작은방, 부엌 그리고 거실까지 쉴 새 없이 돌려댔다. 조금 춥다 싶으면 끄고, 다시 덥다 싶으면 켜고.. 전기세를 걱정하기엔 우린 일단 이 살인적인 더위를 이겨내야 했다. 싱가포르 생활의 출발점은 더위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와 에어컨의 추위를 두려워하는 그녀와의 작은 투쟁으로 그렇게 시작됐다.
더위도 더위지만 난 이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있는 싱가포르가 마냥 신기했다. 사실 역사적인 점을 바라보아도 싱가포르는 중국인이 세운? 나라가 분명할 정도로 중국인들이 많다. 내가 다니는 어학원에서도 중국인이 50% 정도를 차지하고, 동네 마트에서도 계산하는 점원이나 손님들도 서로 중국어로 소통한다. 영어가 본국인 이 나라에서 중국어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이유는 어학원 중국인 친구가 알려준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Chinese come to learn English here at first."
즉,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이 영어를 배우러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이곳을 첫 번째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초대 수상이자 국부라고 일컫는 '리콴유'도 중국계 화교 출신이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심지어 그는 독재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를 미워하거나 정권교체를 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고 한다. 물론 반대파도 있었다. 하지만 독재를 이겨내는 그 무언가는 지속적이고 탁월한 행정능력과 자국민들의 삶의 질을 윤택하게 보장하였으며, 지도자들의 도덕적인 면에 흠잡을 구석이 없는 행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다음 인종으로는 말레이계나 인도계인들이 많다. 와이프의 말에 따르면 점포 및 창고 직원, 공사현장, 헬퍼(Helper)등 근무환경이 열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쪽 인종이라고 한다. 다소 민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지만 그들이 이런 험한 일을 하는 이유는 역시 값싼 노동력을 쓰기 위한 정부 정책 중 하나인 것 같다. 가끔 자전거를 타고 거리 구경을 하다 보면 정말로 공사현장이나 잔디밭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일들도 허다하고, 그 더운 날씨에도 길거리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빈부격차가 확연하게 느껴지는 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다.. 그 밖의 인종은 백인들이나 아시아계의 다른 인종들(한국, 일본, 태국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글로벌 기업이나 자국 기업의 주재원으로 이곳에 정착한 경우, 학업을 위한 이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더 구체적인 예로 와이프의 팀 동료들은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 말레이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이 근무하는데, 싱가포르인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이곳에서 모르면 서럽다고 할 기업인데 자국민이 없다니 정말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무슬림 직원들은 하루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신께 기도를 해야 하는 '살라트'라는 것을 행해야 하는데, 식사를 하다가 기도를 위해 사라지기도 한다고 한다. 난 참 이런 다양한 인종들 사이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물가는 정말 비싸다.
"오빠. 여기서 살려면 한 번 외식에 100 SGD 쓰는 게 이상하지 않아. 적응해야 돼."
라는 말을 하는 와이프를 보면 이제는 좀 이해가 간다. 처음에는 정말이지 왜 GST(세금) 7% + Service Fee 10%, 도합 17%를 음식값마다 추가로 징수하는 것인지 무엇인가 손해 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나니 당연한 듯싶더라.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시장물가가 그 나라의 가장 표본이 된다. 채소 가격, 육류 가격 등 마트에 한번 가보면 여기가 어떤 나라인지 실감할 수 있다. 이곳은 특히 술이 굉장히 비싸다. 소주 가격이 국내 마트에서 구입해도 1천 원 대면 구입이 가능하지만 여긴 2만 원이 조금 안된다. 다행이라면 다행인지 태생이 술을 잘 마시지 못한 까닭에 구입목록에서 술은 자주 빠지지만 가끔은 이곳에 계시는 많은 외국인들의 볼멘소리는 분명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차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종종 와이프와 Mall을 가는데 신차 전시장의 가격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보통 국내 자동차값의 약 3배 정도라고 보면 되는데, 아반떼 기준 8천만 원, 소나타 기준 1억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언젠가부터 우리의 교통수단은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자전거가 되었고, 하루의 걸음은 만보 걷기가 일상이 되었다.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은 결코 쉽지 않다. 더위, 인종, 물가 등 앞서 언급한 것들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난 그 이상의 적응이 필요했다. 특히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그 안에 섞여 들어가 조화되어야 비로소 본모습을 갖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버스정류장 앞에서 기다리는 분에게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길도 물어보기도 했고, 이미 몇 번 방문한 동네 빵집 주인에게 어떤 빵이 맛있는지 굳이 추천해달라고 하기도 했고, 현지에 온 지 두 달밖에 안 된 새내기가 뭘 안다고 학원 친구들을 죄다 끌고 가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한식당에서 저녁도 함께 하기도 했다.
또 검게 탄 나의 피부가 최근에는 제법 현지인들에게 최적화가 되었는지 내가 싱가포르인 인 줄 알고 영어로 길을 물어보는 부부도 있었다. 내게 먼저 말을 걸어준 그 부부가 무척이나 반가웠는지 정확하지 않은 문법으로 꽤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그들은 다행히 잘 찾아갔으리라 믿고 있는 지금 나는 아직도 열심히 적응 중이다. 찬란한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