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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비드 박 Aug 04. 2022

싱가포르에 첫 발을 딛다

낯선 환경과 폭발적 더위의 향연

'Kepple bay'로 가는 길목에서

1월 집을 구하기 위해 첫 발을 딛긴 하였지만 다시 와이프를 만나고 '정착'하기 위한 진정한 의미로서의 첫 발을 딛기 시작한 것은 5월이었다. 국내에서 경험했던 내 인생 최고의 더위라고 말할 수 있었던 체감온도 40도와 견줄 정도의 더위였다. 사실 싱가포르 5~6월의 날씨는 국내와는 조금 다르게 폭염의 계절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시기에 딱 맞춰서 입국했으니.. 참으로 유별난 것 같다. 

정작 이것이 싱가포르의 날씨인가? 체감할 정도로 걱정이 앞섰다. 우리가 구한 싱가포르 집은 작은 벽걸이 에어컨 4대가 갖춰져 있었는데 안방, 작은방, 부엌 그리고 거실까지 쉴 새 없이 돌려댔다. 조금 춥다 싶으면 끄고, 다시 덥다 싶으면 켜고.. 전기세를 걱정하기엔 우린 일단 이 살인적인 더위를 이겨내야 했다. 싱가포르 생활의 출발점은 더위 때문에 힘들어하는 나와 에어컨의 추위를 두려워하는 그녀와의 작은 투쟁으로 그렇게 시작됐다.


더위도 더위지만 난 이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있는 싱가포르가 마냥 신기했다. 사실 역사적인 점을 바라보아도 싱가포르는 중국인이 세운? 나라가 분명할 정도로 중국인들이 많다. 내가 다니는 어학원에서도 중국인이 50% 정도를 차지하고, 동네 마트에서도 계산하는 점원이나 손님들도 서로 중국어로 소통한다. 영어가 본국인 이 나라에서 중국어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이유는 어학원 중국인 친구가 알려준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Chinese come to learn English here at first."


즉,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이 영어를 배우러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이곳을 첫 번째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초대 수상이자 국부라고 일컫는 '리콴유'도 중국계 화교 출신이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심지어 그는 독재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를 미워하거나 정권교체를 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고 한다. 물론 반대파도 있었다. 하지만 독재를 이겨내는 그 무언가는 지속적이고 탁월한 행정능력과 자국민들의 삶의 질을 윤택하게 보장하였으며, 지도자들의 도덕적인 면에 흠잡을 구석이 없는 행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싱가포르 초대 총리 '리콴유'


그다음 인종으로는 말레이계나 인도계인들이 많다. 와이프의 말에 따르면 점포 및 창고 직원, 공사현장, 헬퍼(Helper)등 근무환경이 열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쪽 인종이라고 한다. 다소 민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지만 그들이 이런 험한 일을 하는 이유는 역시 값싼 노동력을 쓰기 위한 정부 정책 중 하나인 것 같다. 가끔 자전거를 타고 거리 구경을 하다 보면 정말로 공사현장이나 잔디밭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는 일들도 허다하고, 그 더운 날씨에도 길거리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빈부격차가 확연하게 느껴지는 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다.. 그 밖의 인종은 백인들이나 아시아계의 다른 인종들(한국, 일본, 태국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글로벌 기업이나 자국 기업의 주재원으로 이곳에 정착한 경우, 학업을 위한 이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더 구체적인 예로 와이프의 팀 동료들은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 말레이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이 근무하는데, 싱가포르인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이곳에서 모르면 서럽다고 할 기업인데 자국민이 없다니 정말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무슬림 직원들은 하루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신께 기도를 해야 하는 '살라트'라는 것을 행해야 하는데, 식사를 하다가 기도를 위해 사라지기도 한다고 한다. 난 참 이런 다양한 인종들 사이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물가는 정말 비싸다. 


"오빠. 여기서 살려면 한 번 외식에 100 SGD 쓰는 게 이상하지 않아. 적응해야 돼."


라는 말을 하는 와이프를 보면 이제는 좀 이해가 간다. 처음에는 정말이지 왜 GST(세금) 7% + Service Fee 10%, 도합 17%를 음식값마다 추가로 징수하는 것인지 무엇인가 손해 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나니 당연한 듯싶더라.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시장물가가 그 나라의 가장 표본이 된다. 채소 가격, 육류 가격 등 마트에 한번 가보면 여기가 어떤 나라인지 실감할 수 있다. 이곳은 특히 술이 굉장히 비싸다. 소주 가격이 국내 마트에서 구입해도 1천 원 대면 구입이 가능하지만 여긴 2만 원이 조금 안된다. 다행이라면 다행인지 태생이 술을 잘 마시지 못한 까닭에 구입목록에서 술은 자주 빠지지만 가끔은 이곳에 계시는 많은 외국인들의 볼멘소리는 분명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차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종종 와이프와 Mall을 가는데 신차 전시장의 가격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보통 국내 자동차값의 약 3배 정도라고 보면 되는데, 아반떼 기준 8천만 원, 소나타 기준 1억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언젠가부터 우리의 교통수단은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자전거가 되었고, 하루의 걸음은 만보 걷기가 일상이 되었다.

식당 'Prive'에서

낯선 환경에서의 적응은 결코 쉽지 않다. 더위, 인종, 물가 등 앞서 언급한 것들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난 그 이상의 적응이 필요했다. 특히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그 안에 섞여 들어가 조화되어야 비로소 본모습을 갖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버스정류장 앞에서 기다리는 분에게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길도 물어보기도 했고, 이미 몇 번 방문한 동네 빵집 주인에게 어떤 빵이 맛있는지 굳이 추천해달라고 하기도 했고, 현지에 온 지 두 달밖에 안 된 새내기가 뭘 안다고 학원 친구들을 죄다 끌고 가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한식당에서 저녁도 함께 하기도 했다.

또 검게 탄 나의 피부가 최근에는 제법 현지인들에게 최적화가 되었는지 내가 싱가포르인 인 줄 알고 영어로 길을 물어보는 부부도 있었다. 내게 먼저 말을 걸어준 그 부부가 무척이나 반가웠는지 정확하지 않은 문법으로 꽤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그들은 다행히 잘 찾아갔으리라 믿고 있는 지금 나는 아직도 열심히 적응 중이다. 찬란한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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