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가정 자녀로 살았던 당신에게 쓰는 편지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당신은 부모님의 이혼을 막 목격한 10대 청소년일지도, 저와 비슷한 고통의 시기를 이미 건너온 2030 세대일지도, 또는 이제 40대가 훌쩍 넘어가서 부모님의 이혼을 일상처럼 받아들인 중년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두 가지 사실은 압니다. 첫째로 당신은 저처럼 가정에서 큰 전환기를 맞이한 사람이며, 둘째로 그 전환기로 인해 고통받았음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잘 아시겠지만, 평범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우리에게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요즘도 저는 때때로 이혼가정에서 자란 며느리, 사위를 들이기 싫다는 글을 읽고 있으며, 이혼가정에 속한 이들을 향해 가정 교육을 운운하며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폄하하는 사람들을 보곤 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사소한 실수마저도 할 수가 없습니다. 실수는 곧 내 가정을 욕 먹이는 행위가 되는 경험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을 겪을 때마다 아직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정상 가족이라는 프레임을 버리지 못하고 있단 생각이 많이 들어요.
게다가 간혹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에게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영향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질 때마다 우리가 설 자리는 더 좁아지곤 합니다. 역시 ‘정상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사람은 쉽게 범죄자가 되는 거구나, 같은 인식이 견고해질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낸 사람이 다수인데도 불구하고, 몇몇 범죄자에 의해 우리가 모두 지워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릴 향한 사회의 시선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계속 낙담하며 살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우릴 부정적으로 본다고 나까지 내가 살아온 환경을 부정하고, 미워하고, 원망한다면 결국 그들이 생각한 대로 살아가게 될 테니까요. 아마 이 편지를 읽는 당신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죠. 그래서 정말 열심히 살았을 테고요. 사회적인 편견에 일조하지 않기 위해서, 나답게 중심을 잡고 잘 살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이혼이 제 안에 상처로 뭉뚱그려져서 다른 이들을 올바르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실제로 부모님의 이혼이 남긴 흔적은 제 인생 곳곳에서 불쑥 고개를 들이밀고 튀어나와서 제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게 만든 적이 많습니다. 감정을 숨기게 만들기도 했고, 더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과도한 선의를 베풀게 되기도 했으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에게 벽을 치거나 혼자가 되길 자청했던 시간이 그러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감사하게도 아이들을 만나면서 제 안의 상처를 많이 치유했고, 나름 안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그 어려운 시기를 잘 건너온 저에게 그저 고마움만 느끼고 있습니다. 절 오랜 시간 괴롭히던 상처들이 이젠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됐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가 새길을 열어줬으니 이보다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요?
저는 여전히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지도 모르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우린 어디에나 있지만,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들이니까요. 또한, 각자 어려운 가정의 전환기를 잘 넘어가는 중이거나 이미 넘어온 사람들이니까요. 저 역시 그 시기를 지나온 사람이기에 당연히 당신이 몇 살이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무조건 응원할 수밖에요.
세상의 편견을 이겨내기 위해 더 많은 일에 마음을 쓰고, 오늘 하루도 꿋꿋하게 살아갈 당신에게 기쁜 일들이 가득하기를. 그리고 지금껏 아프게 걸어온 그 시간이 종국엔 자신을 가장 따뜻하게 안아줄 가정이자 집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저도 행복하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