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툰 날이 좋은 날이 되는 기적

이혼가정 상처를 사랑으로 바꾼 순간 5

by 박다결


두 개의 길의 인물 -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jpg 두 개의 길의 인물 -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아이들도 취향이 있다. 단순히 좋아하는 색깔이나 취미 활동뿐 아니라 사람도 나름대로 자신만의 기준을 두고 가려서 만난다. 학원에서 선생님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학원 규모가 작아서 선생님이 단 한 명뿐인 경우라면 모를까. 학원 선생님이 다수인 경우, 아이들은 꼭 자신과 결이 잘 맞는 선생님과 수업을 하길 원한다. 그러나 늘 마음에 드는 선생님하고만 수업할 수는 없다. 여러 선생님이 한 아이를 돌아가면서 살펴봐야 그 아이의 장점과 보완점을 보다 면밀하게 살필 수 있기에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특정 선생님과 정서적인 교감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면 최대한 아이의 의사에 맞춰주긴 한다. 학원 분위기에 적응이 필요한 친구라거나 평소 불안도가 높은 아이라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간혹 한 선생님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면 부득이하게 다른 선생님이 데리고 가기도 한다. 그때 아이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망울로 좋아하는 선생님을 쳐다본다. 저도 선생님이랑 같이 수업하고 싶어요. 하는 애절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아이가 서운함을 표현하는 상황에서 웃으면 안 되지만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자꾸만 웃음이 난다. 그럴 땐 한껏 올라간 광대를 누르고, 다음에 선생님이랑 같이 수업하자. 부드럽게 달래고 보내는 수밖에 없다.




이렇듯 마음이 가닿는 대로 움직이는 아이가 태반이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다. 누구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마치 망망대해에서 구명보트를 타고서 홀로 표류하는 것 같은 아이. 연우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 나보다 먼저 이곳에 계셨던 선생님들은 연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연우가 이곳에 다닌 지 꽤 됐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겉돌았으며, 종종 폭력성이 드러나서 제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모든 선생님이 돌아가며 정 붙이길 시도했지만 전부 실패했다는 사실도 알려주셨다.


연우를 꾸준히 관찰해본 결과, 동료 선생님들 말이 맞았다. 연우는 평소에 아주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때때로 이상하리만큼 분노를 잘 참지 못했다. 선생님들이 수업에 몰두한 사이 다른 친구가 읽고 있는 책을 빼앗고 울려 버리거나 방석이나 쿠션을 집어 던지며 괴롭혔다.


어디 그뿐인가. 구석에서 선생님 모르게 활동지를 조각조각 찢어서 바닥에 흩트려 놓기도 했다. 선생님이 혼내면 뭐가 그리도 불만인 건지 화가 난 얼굴로 입술을 꾹 다물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대화가 이어질 텐데, 그마저도 불통이었다. 게다가 독서 중인 누나에게 지우개나 연필을 던지는 통에 연우의 누나는 물론이고 주변에 앉아있던 아이들마저 독서에 방해를 받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원에서도 선생님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오죽했으면 회의 때마다 연우 이름이 거론될 정도였을까. 연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에 그 어떤 선생님도 쉽사리 좋은 대안을 내놓지 못하셨다. 그저 한숨만 내쉴 뿐. 이때,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희결쌤이 연우 한 번 맡아보는 건 어때요?”


말도 안 되는 제안에 황당했다. 나보다 학원에 더 오래 종사하신 선생님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초짜인 내가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는 못 할 것 같은데요. 다른 선생님들도 어려워한 일을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들 돌아가면서 실패했으니까 우리도 답이 없어요. 시도하지 않은 건 희결쌤 뿐이니까 한 번은 해 보는 걸로 해요.”








그때부터 나와 연우의 다사다난한 수업이 시작됐다. 부담감을 덜어주려고 쉬운 활동지 위주로 내주고, 조금 소란을 피우더라도 꾹 참고 지나갔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연우는 여전히 다른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했고, 종종 활동지를 찢어댔다.


처음엔 어떻게든 이 행동을 이해해보려 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점점 더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점점 더 연우를 바라보는 내 표정이 무거워지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아이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내색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참 어려웠다. 마음 같아선, 저도 못 하겠습니다. 백기 들고 항복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쉽게 포기하기도 곤란했다. 나까지 놓아버리면 연우는 이곳에서 의지할 선생님이 단 한 명도 없는 셈인데 그렇게 만들기는 또 싫었다.


달라지는 게 하나 없어도 아이를 차마 놓을 수는 없어서 간신히 붙잡고만 있는 상황이 몇 달간 이어졌다. 그 지난한 시간 속에서 나는 연우에게 어떤 선생님이 되기보단 그 자리에 기다려주는 선생님만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그곳에 있다는 걸 알아준다면 고맙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여기며 마음을 비운 것이다. 그것만이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우와 수업을 진행하던 때였다. ‘다툰 날’이라는 시를 읽고 왔길래 연우에게 넌지시 물었다.


“연우는 다른 사람들과 다툰 적 있어? 학교 친구나 누나라던가.”
“저는 다른 사람들이랑 한 번도 다툰 적 없어요.”


학원 내에서만 여러 아이를 괴롭히는 광경을 목격했고, 누나에게 지우개와 연필까지 던지던 연우였기에 그 말을 선뜻 믿어줄 수가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기가 싫은 건가, 짐작만 하던 그때 연우가 말을 이어갔다.


“다툰 적은 없지만, 저 혼자서 다른 사람을 미워한 적은 있어요.”


연우가 이런 얘길 꺼냈던 적이 있었나 되짚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불리한 상황에 놓이면 바로 묵비권을 행사하기 바빴던 터라 다른 선생님도 연우와 대화가 길게 이어진 적은 없다고 했다. 직감적으로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럼, 누굴 미워한 적이 있는지 선생님한테 말해줄 수 있어?”


연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우리 누나요.”


연우가 말한 상대는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연우의 누나였던 연주는 참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독서도 꾸준히 하고, 활동지도 꼼꼼하게 완성해와서 선생님 모두가 연주를 좋아했다. 심지어 연우가 자신에게 지우개와 연필을 던져댈 때도 선생님께 고하지 않고 참았을 정도였으니 인내심도 대단했다. 차분하고 성실한 연주와 다르게 연우는 겉돌기를 반복하고 있으니 다들 이게 무슨 당황스러운 남매 조합인가, 의아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연우가 일방적으로 미워한 사람이 연주라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누나가 왜 미웠어?”
“우리 누나는 다 잘해요. 공부도 잘하고, 글씨도 예쁘고,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려요. 그런데 난 아니에요. 누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글씨도 못났고, 글도 잘 못 쓰고, 그림도 잘 못 그려요. 그래서 누나가 미웠어요. 누나는 날 미워하지 않는데, 나는 누나가 미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연우가 아무 이유 없이 겉돈 것이 아니란 걸. 내면에 누나보다 잘난 것이 없다는 열등감이 쌓여서 여기까지 온 거란 걸 말이다.


“그랬구나. 연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몰랐어. 선생님에게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이야기 해줘서 고맙단 말에 연우의 표정이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그런데 연우야. 연우가 그림을 못 그린다는 건 인정 못 하겠는데? 선생님이 보기에 너 정말 그림 잘 그려.”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연우는 그림을 그려올 때 또래 친구들보다 굉장히 섬세하게 그려오곤 했다. 예를 들어서 다른 친구들은 나뭇잎의 앞면만 그려온다면 연우는 나뭇잎이 살짝 들려서 보이는 뒷면까지 그렸다. 사물을 보는 눈이 예리했고 그만큼 입체적으로 그리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건 미술 학원에 다녀서 그런 거예요. 미술 선생님이 다 가르쳐 주신 거예요.”


연우는 자신이 잘하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쪽에 힘을 실어주기로 작정한 것처럼 말했다. 이렇게 말하기까지 스스로 내면을 얼마나 좀먹는 과정을 거쳤을까 싶어서 마음이 짠해졌다.


“미술 선생님도 연우가 열심히 하고, 잘하기 때문에 가르쳐주실 수 있으셨던 거야. 연우가 아무 의욕도 없었다면 선생님이 그렇게 도와주실 수도 없었고, 연우도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릴 수 없었을 거야.”


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잘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빠져서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나는 연우에게 자기 확신을 주고 싶었다. 그림 외에도 평소에 연우가 쓴 글을 보며 표현력이 뛰어났다는 걸 설명해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잘 섞어 문장을 실감 나게 만드는 점이나 배운 것을 잘 응용해서 문장을 쓰는 것을 장점이라며 크게 칭찬해주었다. 묘하게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던 표정이 차츰 편안해지더니 이내 수줍은 미소까지 지었다. 얘가 이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아이였구나, 라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고 있을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마음속 얘기도 들어보고, 따뜻한 말도 건네줄걸. 당장 크게 보이는 문제 행동에만 눈길이 가서 연우의 마음을 신경 써주지 못한 것 같아서 어른으로서 미안했다.


“이제 연우도 잘하는 일이 있다는 거 알았지?”
“네.”
“그래. 연우야.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서 살면 마음이 무거워져서 행복해질 수가 없어. 연우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누나를 너무 미워하진 마.”


차마 연우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서 살지 말라는 조언은 나 자신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나를 고통스럽고 외롭게 만든 엄마를, 비수 같은 말만 골라서 던지던 어른들을, 이혼가정 자녀란 이유만으로 나를 함부로 평가하거나 연민하던 사람들을 이제 마음에서 놓아주라는 뜻이기도 했다. 연우를 위해 꺼낸 그 말로 나 역시 지난 기억들에 초연해진 기분을 느꼈고, 비로소 아프기만 했던 나의 유년기를 보내줄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날 이후로 연우는 조금씩 달라졌다.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도 않았고, 차분하게 앉아서 책을 읽었으며 활동지를 찢지 않았다. 또한, 누나를 시기 질투해서 물건을 던지는 행위도 더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참 고맙게도 나에게 정을 붙이기 시작했다. 웬만하면 내가 수업을 봐주려 했지만, 상황상 다른 선생님께 가야 할 때면 나를 아련한 눈길로 쳐다보는 일도 생겼다. 아무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던 아이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귀엽기도, 기특하기도 했다. 역시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아이는 없음을. 이래서 마음을 들여다 봐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다시 한번 더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언젠가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연우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선생님. 저 내일 학교에서 달리기 나가요. 잘할 수 있게 응원해주세요.”


응원해달라는 그 말이 선생님은 언제나 내 편이 되어달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 달리기 잘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응원할게. 잘하고 와.”


그렇다면, 기꺼이 네 편이 되어주겠다는 답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고 싶었다.







*아이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이혼가정 자녀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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