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가정 상처를 사랑으로 바꾼 순간 4
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아이마다 자라는 속도가 천차만별이란 것을. 똑같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결코 같은 속도로 자라지 않는다. 단순히 키나 체격의 성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회성, 책을 읽고 이해하는데 필요한 어휘력과 문해력, 더 먼 곳을 그릴 수 있는 상상력과 아는 정보는 조합해서 활용하는 응용력 등 아이마다 전부 성장하는 속도가 다르다.
모든 면에서 성장이 빠른 아이는 누가 봐도 영특해서 눈에 잘 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할 일을 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물어보고, 배운 것을 어떻게든 써먹으며 자신의 것으로 잘 흡수해서다. 이런 아이는 가르칠 때도 별로 어려운 것이 없다. 지금 자라는 속도에 맞춰주는 것만으로도 잘 따라오는지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선생님 입장에서 더 신경이 쓰이는 아이는 성장이 조금 더딘 아이다. 목소리 데시벨 조절이 잘되지 않아서 툭하면 큰 소리로 말하거나 산만해서 몸을 가만히 두질 못한다거나 혼자 힘으로 활동지를 해내지 못해서 눈물부터 흘리는 그런 아이 말이다. 이런 아이를 보면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잘하는 것을 먼저 끌어주는 게 우선인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게 우선인지 판단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물론, 누군가는 일개 학원 선생님이 아이에게 무슨 큰 영향을 주겠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학교 선생님도 아닌데 수강료 값만 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수업만 하고 돈만 챙기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아이들은 언젠가 사회에서 크게 자라야 할 묘목이기에 단 한 명의 어른이라도 더 붙어서 정성스럽게 돌봐야 한다는 것이 내 교육관이었다. 그래야 뿌리가 썩지 않고, 가지가 휘지 않고, 병충해에 시름시름 앓지 않고 건강히 자랄 테니까 말이다. 이혼가정에서 자라면서 다정한 어른의 손길을 절실히 바랐던 나였던지라 아마도 이런 교육관이 생긴 모양이었다.
아픈 삶이 빚어낸 교육관을 따르고 싶었다.
그건 스스로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만난 성장이 더딘 아이 중 우주는 사회성 및 언어 발달이 느린 축에 속했다. 대화를 나누다가 아는 것이 나오거나 흥미로운 소재가 나오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하곤 했다. 사회성이나 언어 발달이 느린 반면에 감정 표현이 아주 풍부했던 것이다.
“어! 저 이거 알아요! 저 이거 봤어요!”
“우주야. 우주가 기쁜 건 잘 알겠지만, 수업 시간엔 조용히 해야 해. 다른 친구들이 책을 읽고 있잖아. 그렇지?”
우주는 다른 친구의 수업에 방해되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 번 인지시켜줘야만 겨우 납득 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이다. 내가 다른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또 다시 목소리와 행동이 커져서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럴 때마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지만 화를 낼 순 없었다. 아이가 악의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 성장이 더딘 게 문제겠니. 네가 순수하게 기쁨을 느끼며 잘 자라면 된 거지. 하고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교육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학원에서 활동지 제작을 하고 있었다. 그림도 그리고 손글씨로 직접 발문하고 있었는데 우주가 내 앞을 지나가다가 또 큰 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뭐해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주야. 목소리 조금만 작게 해야지. 그제야 내가 했던 말들이 생각났는지 작은 목소리로 한 번 더 물었다. 선생님 뭐해요? 라고.
“아. 선생님은 우주랑 친구들이 쓸 활동지 만들고 있지.”
우주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망울로 내가 작업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성격상 누가 앞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집중력이 잘 흐트러지는지라 조심스럽게 우주에게 물었다.
“우주야. 책 다 읽고 선생님이 활동지 만드는 거 구경하는 거야?”
“아뇨. 책 덜 읽었어요.”
“그럼, 책 읽으러 가야지.”
자연스럽게 자리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우주는 그럴 생각이 없는지 역으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있잖아요. 선생님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아요?”
당시 나는 활동지 제작에 정신이 반쯤 빼앗긴 상태로 우주의 물음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잘 모르겠네. 우주는 알 것 같아?”
“네. 저는 알아요. 선생님은 그림도 잘 그리고 글씨도 예쁘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라서 여기 있는 거예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려와서 잠시 활동지 제작을 멈추고 우주를 쳐다봤다. 우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제 책 읽으러 갈게요,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별안간 직장에서 우는 이상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 머릿속으로 온갖 웃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울음을 참았다.
배움의 성장이 느리다고 해서 마음의 성장까지 느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보고 마음에 품느라 배움이 더뎌진 것임을 깨달았다. 우주는 내가 그림도 잘 그리고 글씨도 예쁘니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우주처럼 순수하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이혼가정 자녀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