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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결 Oct 13. 2024

서운함에 대한 단상

레드 다이어리



   꽤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내가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그 서운함이 배가 되어 커진다. 내가 이렇게 힘든 거 알면서 어떻게 아무 연락도 없지, 같은 생각이 들면 서운해지다 못해 그 사람이 미워지기까지 한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가던 8월의 마지막 날, 할머니께서 갑작스럽게 뇌경색으로 의식을 잃으셨다. 수술을 받으셨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지난 뒤여서 할머니는 중환자실에서 무려 한 달이 넘도록 사경을 헤매셨다. 나는 매일 병원 중환자실 앞에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보냈고, 피가 마르는 기분으로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울다가 잠들길 반복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내 일처럼 계속 걱정해주었지만, 단 한 번도 연락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그게 생각할수록 서운하고 미웠다. 특히, 그 사람이 내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일수록 부정적인 감정의 골이 더 깊어졌다. 사람이 큰일을 겪으면 인연 정리가 된다더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같은 생각마저도 들 정도였다.

   결국, 그해 가을 끝자락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떠나시고 매일 같이 울었다. 현실도, 마음도 지옥과 같았다. 나에게 할머니는 엄마였기에 이별의 고통이 더욱 컸다. 매일 같이 들리던 할머니의 목소리와 걸음 소리, 좋아하시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온 집안이 적막해서 견딜 수가 없었고, 나에게 서운함을 안긴 사람이 미워서 더 괴로웠다. 다행이었던 건 이런 나를 걱정한 몇몇 친구들이 자주 연락도 해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며 진심으로 위로해주었단 점이다. 그 마음을 발판 삼아서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갈 수 있었다. 할머니를 마음에서 천천히 놓아드렸을 때가 되어서야 나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부정적인 감정도 천천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것이 성숙의 증거였는지, 해탈의 증거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단지 서운함을 오래 안고 상대를 미워하며 사느니 내가 다르게 생각하고 마음에서 놓아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에게 크게 서운함을 안긴 그도 한때는 나에게 많은 기쁨을 선사했던 사람이었다. 함께 웃었던 기억도 많고, 나에게 도움이 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수많은 기쁨은 단 한 번의 서운함 앞에 빛이 바래졌다. 누군가에게 느낀 한 번의 서운함 때문에 수십 번의 추억과 애정을 잊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그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연락하지 못했던 이유가 생활이나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일 수도, 또는 나를 위해 일부러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는 걸 수도 있다. 정말 소식을 몰라서 그랬을 수도, 어쩌면 인연이 딱 거기까지였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연락해 주고 위로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일일 뿐.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미워하는 일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동안 계속 엇나갔던 건 아니기에 한 번의 서운함이 열 번의 추억과 애정을 집어삼키는 일은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냥 운이 나쁘게 엇갈린 때가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래서 모든 일엔 양면성이 있는가 보다. 좋지 않은 일에서조차 깨달음을 얻어낼 수 있는 거 보면. 나는 아직도 미약하고, 여리고, 부족함이 많은 존재지만 이러한 성찰의 시간 속에서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거라고 믿는다. 미움보다는 이해와 사랑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내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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