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 Malaga
말라가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한다. 자는 환경이 바뀌어 그런가 아이들은 생각보다 일찍 기상. 베를린 숙소처럼 놀이방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 산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바쁘다. 부디 이 흥미가 여행 끝날 때까지 유지되길. 너무 큰 기대일까?
말라가에서는 그래도 3박이나 해서 여유가 있다. 우리는 천천히 아침을 차려 먹고, 세탁기를 돌리기로 했다. 세탁기 덕분에 빨래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 건조가 걱정이기 때문이다. 외출 전에 마무리하고 널고 나가야만 한다.
정리를 마치고 외출 준비까지 하니 11시가 되어간다. 유럽 여행을 와서 오전 내내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어찌 보면 엄청난 낭비일 수도 있다. 그 많은 돈을 써서, 이 멀리까지 와서. 숙소에서 반나절을? 하지만 여러 핑계를 대고서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할 때도 있다.
대학 시절 처음 유럽에 왔을 땐, 3주 동안 거의 십여 개의 도시를 거쳐 갔다. 런던과 파리를 제외하고 정말 다니는 모든 도시에서 짧으면 1박, 길면 2박을 했다. 여행사에서 대략적인 일정을 짜준 탓도 있었지만, 젊은 시절 그만큼 가고 싶은 곳이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체력도 있었다.
굳이 성향을 따지자면 나는 여러 도시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타입은 아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 성향은 점차 강해져서 한 도시를 긴 호흡으로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고 느낀다. 아내와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마다 하는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 도시에서 며칠 동안 머물 것인지. 일단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틀 정도 머물긴 아쉽다. 우리 부부는 어느 도시를 가든 2박은 짧다고 느낀다. 최소한 3박 이상 되어야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나도 아내도 한 도시에서 5일 이상 넘어가면 조금 느슨해지고 지겹다고 느끼긴 해서, 그 타협점을 찾기가 쉽진 않다.
사실 실제로 시간이 많아도 조급할 수도 있고, 시간이 없어도 여유를 가질 순 있다. 분명한 사실은 여행 중에 물리적인 시간 여유보다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훨씬 더 그 도시를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하는 내내 그 여유를 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쫓기는 듯한 심리적 압박 속에서 여행하고 싶진 않다.
이번 여행 중 가장 간편한 옷차림을 하고, 길을 나선다. 옷이 가벼우니 마음도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이제 본격적인 말라가 일정에 돌입이긴 한데, 사실 오늘 특별한 일정을 잡진 않았다. 말라가 시내를 중심으로 했을 때 아이들과 함께 갈 만한 공간이 많지는 않아 보였고, 그곳들은 내일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바다 근처에 나가 산책하기로 했다.
우리가 머무른 숙소는 말라가 번화가에서 약간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다. 때문에 시내 중심부, 더 나아가 바닷가로 가기 위해선 아주 완만한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게 된다. 조금 내려오면 있는 라 메르세드 광장(Plaza de la Merced)에 들러 아이들 음료와 커피를 한 잔 사 들고 우리는 계속해서 걸어 내려갔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해안 근처에 있는 말라가 대학교(Universidad de Málaga).
화창한 날씨, 경쾌한 발걸음으로 길을 가던 중 경사진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멋진 경치를 만났다. 멀리 뒤에는 내일 가려고 했던 말라가 알카사바(Alcazaba)가 놓여 있고, 가까이는 고대 로마의 원형 극장의 모습이 남아 있는 듯 보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기를 꺼내 구글 지도를 켜고 이곳이 어디인가 검색을 시작한다.
말라가 로마 극장(Teatro Romano de Málaga). 장소를 설명하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하니 1세기 초, 로마 제국 초기에 지어진 유물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1세기, 아니 1세기라니. 더 놀라운 사실은 극장이 지어지기 이전, 이곳에 목욕탕이 존재했다는 사실.
그간 학교 교실에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마치 기계처럼 기원전 또는 고대 시대에 대해 내가 뭔가 안다는 듯이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옛날 사람들의 삶과 인간 사회의 모습이란 것이 대체 어떠했을지 상상이 전혀 안 가고 그저 놀랍기만 하다. 내가 아는 것은 사실 극히, 정말 극히 일부분일 것인데. 그런데도 이 로마 극장을 보며 제국의 힘이 놀랍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들의 욕망과 힘이 조금 무섭다고 느낀다.
우리는 때때로 거대 권력에 대해, 그리고 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물론 우리는 그것이 가진 비판적 요소들을 늘 경계하고 살펴야 한다. 하지만 문득 내가 이 고대 로마 극장 앞에 서 있는 것 자체가 내 욕망과 힘(?) 덕분(때문)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아이들은 녀석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의 힘에 이끌려 왔으니 말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은 누구나 그럴만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사실. 내 그러한 모습도 충분히 경계하고 살펴야 한다는 깨달음.
그나저나 참 멋진 장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런 곳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구글 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길을 걷다가 멈춰 섰을 뿐이다. 이런 것이 여행의 즐거움 아닌가. 낯선 곳에서 갑자기 무언가(누군가)를 만나는 것. 아이들은 조금 넓은 광장이 나오자 유모차에서 내려 이곳저곳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다. 처음 보는 오렌지 나무 아래서 뛰어놀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곧 12시 점심 먹을 시간. 서둘러 극장과 멀리 알카사바를 배경으로 아이들 사진을 남긴 후에 우리는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구글 지도의 안내를 따라 말라가 대학교(Universidad de Málaga)에 도착했다. 예전엔 여행할 때면 그 도시의 대학에 꼭 가 보곤 했다. 돈 아끼기에 급급했던 10대와 20대 초반엔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교는 대학 입학을 두 달여 앞두고 갔던 교토대학과 내 대학 전공 교육학으로 유명한 홋카이도 대학이다.
무엇보다 대학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이 가진 자유로움에 대해 대리만족을 하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나와 아내의 젊은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오늘도 아내와 대학 근처에 살고 싶다고 이야기를 나눈다. 대학 근처에 가면 우리도 젊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인가 그냥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라가 대학은, 우리가 상상한 대학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대학의 도시라고 불리는 독일 뮌스터에 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넓은 대지의 종합대학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적당한 규모의 건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뮌스터의 경우 도시 곳곳에 그런 대학 건물이 숨어 있었는데, 사실 말라가 대학의 경우 어떤 규모와 형태인지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 즉흥적인 여행의 얕은 수준이란. 한없이 부끄럽지만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건물 하나 본 걸로 만족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바다에 가까워져 갈수록 스페인의 남부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벗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반대로 이야기하면 겨울 여행이 그만큼 힘든 일이란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도 날씨 때문인지, 컨디션이 아주 좋다. 커버를 씌운 유모차에 갇혀 있을 필요도 없다. 아이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멋진 야자나무 길을 걷다 보니 말라가 공원(Málaga Park)을 만나고, 이내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름답게 정비된 항만에 조성된 쇼핑몰에 멈춰 아내가 화장실에 들른 사이, 아이들과 바로 옆 CONICO라는 이름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한다. 점심 먹을 식당을 찾는 사이 아이들 허기를 달래줄 심산이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구글 지도를 열고 맛집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아름다운 경치의 해안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리라 생각했었다. 아침과 저녁을 집에서 해 먹기로 했으니, 점심만큼은 오래간만에 돈 쓸 각오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갈만한 식당이 보이질 않는다. 낮은 평점에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갈만한 식당은 현지인들에게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직 영업을 안 한다. 아니면 겨울에 말라가를 찾는 관광객이 적어서 그런 걸까?
아, 그렇게 수없이 여행을 다니면서도 아이들과 다니다 보면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된다는 사실을 또 잊었다. 항상 이런 루틴이다. 배는 점점 고파오고, 우린 결국 적당한 타협점을 찾게 된다. 그래도 항만과 해안의 중간지대에 적당한 가격대의 식당이 있어 우리는 발걸음으로 바로 옮겼다. 제일 나은 선택을 하는 일이 이렇게도 어렵다는 걸 또다시 깨닫는다.
차선으로 선택한 식당은 La Artesana라는 곳이었다. 고기와 해산물을 주로 판매하는 식당이고, 무엇보다 가격이 합리적이다. 역시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일까. 아마도 우리가 첫 손님인 듯싶다. 나와 아내가 해산물을 즐겨 먹는다면 더 좋았을 텐데, 사실 우린 해산물을 그리 즐기진 못한다. 날것으로 먹는 거도 초밥 아니고선 잘 안 먹고, 요리를 먹어도 매한가지다. 신혼여행 때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가서 큰마음먹고 생선 요리를 시켰는데, 둘이서 한점 떼어먹고선 전부 남기고 나온 기억이 있다. 이런 저렴한 입맛 취향에 따라,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스테이크와 오징어튀김, 그리고 닭볶음 밥.
2014년 아내와 바르셀로나 가우디 투어에서 만난 가이드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던 적이 있다. 당시 가우디 성당(La Sagrada Família) 내부의 그 따스한 느낌에, 그리고 가이드의 프로페셔널함에 감명받았었다. 투어를 마치고 람블라스 거리 인근의 맛집 정보를 물어볼까 하다가, 가이드를 아예 모시고 가면 정말 맛있는 곳을 데려가 주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함께 간 식당에서 파에야와 스테이크를 너무 맛있게 먹었는데, 이후로 스페인 음식에 대한 기대가 한껏 올라갔다고 해야 하나. 아니, 꼭 우리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스페인 음식에 대해 칭찬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경험이 충분 한진 모르겠지만, 영국, 독일에 비해선 이탈리아가, 그리고 이탈리아보다 스페인 음식이 더 우리 입맛에 맞는다고 느낀다. 아무 정보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온 식당이지만, 오랜 기억 속만큼의 맛은 아니어도 충분히 괜찮았다. 가격을 생각한다면 더욱이 괜찮다. 그리고 오징어튀김은 더 좋았다.
“오 역시 지중해 오징어는 뭔가 다르네”라고 아내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 지중해의 해안 도시에 와서 다른 메뉴도 아닌 기껏 ‘오징어튀김’을 먹으면서 말이다. 함께 준 레몬을 살짝 뿌려 먹는 오징어의 맛은 정말 괜찮았다. 이보다 더한 초등학생 입맛이 또 있을까. 하지만 부모가 이런 취향이라, 덩달아 아이들도 잘 먹어주니 참 다행이다. 볶음밥은 그저 그랬지만, 곁들인 오렌지 주스까지 포함해서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옆 넓은 백사장으로 이동했다. 식사 전 항만을 왔을 땐 이곳이 바다인지 아이들이 이해를 못 했는데, 드넓게 펼쳐진 모래사장을 보고 나서야 우리가 바다에 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듯 보인다. 항만의 반대편으로부터 시작된 모래사장은 말라가 동편으로 꽤 길게 이어진다. 지금이 겨울이라 다행이지, 조금만 더웠어도 아이들은 물에 들어간다고 이미 뛰어가고 있을 터.
모래사장 위에 다소 생뚱맞지만 놀이터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여행하며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놀이라는 것이 참으로 제한적이어서, 이렇게 놀이터를 만날 때면 그렇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놀이터가 생각보단 꽤 괜찮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오후 두 시, 한껏 올라간 기온 탓에 아이들은 외투를 다 벗어던지고 신나게 논다. 실컷 뛰어논 후 낮잠을 자야 한다는 부모의 야심에 찬 속셈을 모른 채, 아이들은 그저 신나서 30분 넘게 놀고 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낮잠을 자기 전 가족사진을 남기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 말라가에서 특별히 찍어야겠다고 미리 계획한 장소는 없었지만, Playa la Malagueta 조형물 앞에선 꼭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조형물의 길이가 너무 길다. 조형물을 프레임 안에 다 넣으려면 인물이 너무 작게 나온다. 그저 저 멀리 사람이 있다 뿐이지, 그것이 우리 가족인지 알 수 있는 건 나와 아내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10초 타이머를 해 놓고 뛰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아쉽지만 아내와 아이들만 사진을 남기고, 우린 더 중요한 낮잠 재우기 작전에 돌입한다.
피곤했는지 아이들은 금방 잠이 들었다. 아내와 인근의 슈퍼마켓에 들러 아이들이 잠에서 깨면 선물로 줄 오렌지 주스를 사고, 해변의 벤치로 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보다 더 달콤한 휴식이 또 어디 있을까. 따스한 햇볕, 지중해 해변의 잔잔한 파도. 붐비지 않는 길가 현지인의 모습들. 오전 내내 아이들에게 시달리면서도, 바로 이런 꿈같은 시간 때문에 여행을 지속할 에너지가 생긴다.
물론 아이들이 낮잠을 자기 시작해도, 사실 언제 깰까 조마조마하긴 하다. 유모차에 누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꿈틀대기 시작하면, 아내와 마주 보고 인상을 찌푸리곤 한다. 그래도 이런 시간이 있어 참 다행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 깨지 않고 자고 있다.
오후 5시. 이미 깰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유모차에 누워있다. 사실 아이들이 오래 자는 건 언제나 환영이다. 안 자려고 할 때가 문제이지, 자겠다고 하면 만사 오케이. 하지만 그 시간이 예상된 범주를 넘어가면 부모는 적잖게 당황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피곤하면 이렇게나 자는 걸까.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지. 이러다 밤에 안 자는 거 아닌가. 하는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아이들이 깨길 기다리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날씨도 추워지는 중. 아이들 패딩 잠바도, 유모차 커버도 없었기에 우리는 우선 숙소로 복귀하기로 한다. 시내의 옷 가게 구경도 잠시 하고, 숙소 근처 mia라는 이름의 커피숍에도 들러 커피를 사 들고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아이들은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부다페스트와 베를린에선 날이 추워 많이 걷지를 못했는데, 오랜만에 많이 걸었던 탓일까. 많이 피곤했나 보다. 이쯤 되니 고마운 걸 넘어서서 아이들이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 걱정.
아이들의 호흡을 확인(?) 후 짐 정리하고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걱정도 잠시, 아이들은 집에 들어온 걸 알았는지 금세 잠에서 깬다. 아이들이 기대 이상으로 오래 자는 동안 아내와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바로 말라가 밤거리 구경. 우리 가족에게 밤늦은 시간 외출은 지극히 드문 일이다. 여행에서도 아주 특별한 날에만 허락되는 금단의 영역 같은 것. 오늘만큼은 기분을 내기로 했다.
밤 9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우리 가족이 외출을 하다니. 밤이 되니 은근히 쌀쌀하다. 옷을 든든히 여미어 입고, 말라가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나가 사진을 남긴다. 거리엔 여전히 크리스마스를 위한 장식처럼 보이는 조형물이 남아 있고, 아직 한창인 듯 많은 이들이 활보하고 있다. 아마도 아이들에게 이 시간의 집 밖 풍경은 낯설게 다가오겠지. 아이들과 함께 밤거리를 걷는 나와 아내도 영 이 상황이 낯설기만 하다. 생각보다 날이 추워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말라가 시내 산책을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복귀했다.
늦은 시간까지, 유난히 긴 하루를 잘 보냈다. 처음 만난 말라가는 참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긴 잠으로 부모에게 쉴 시간을 준 아이들에게 특히나 감사한 마음을 품고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