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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Oct 30. 2022

Day 7. 말라가

200110 Malaga

8시가 조금 안 된 시각 아이들과 함께 잠에서 깼다. 기상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어 다행이다. 우리의 말라가 일정은 3박. 다른 도시보다는 긴 시간이라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여유가 많았다. 하지만 정작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 말라가라는 도시가 꽤 맘에 들었나 보다. 우리에게 주어진 3주라는 시간이 야속할 따름. 더 오래, 추운 겨울, 언젠가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그런 도시이다.

오늘 우리 가족 아침 식사 메뉴는 카레. 멀리 여행하러 와서 이보다 더 좋은 메뉴가 또 없다. 매우 저렴하고 신선한 양파와 버섯, 기타 부가 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는 카레의 맛은 가히 훌륭하다. 카레와 계란 프라이, 김 정도 올려진 간소한 식사이지만, 네 명 모두 배불리 먹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래도 이웃에게 카레 냄새가 전달되어 불쾌감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겐 워낙 생소한 향기 아니겠는가. 우리가 지내는 집의 환기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빈틈없이 잘 갖춰져 있어 별문제가 없길 바라보지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 그렇다고 해서 이웃을 만나기도 어렵고, 설령 만난다고 해도 말이 안 통해 괜찮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짧게 지내고 돌아가는 여행객은 그저 마음으로 양해를 구해볼 뿐이다.

                                                         

스페인의 맛있는 식재료를 넣어 만든 카레 (2020.1. 스페인 말라가)


식사를 마치고, 어제와는 다르게 바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말라가에서의 실질적인 마지막 날. 이 아름다운 도시에 대한 예를 갖춰, 조금은 부지런한 척 노력해 본다. 오늘 우리의 계획은 오전에 말라가 서편 쇼핑몰 밀집 지역을 방문한 후, 다시 해변으로 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 부부에게 방문한 도시의 큰 쇼핑몰을 방문하는 것은 필수 코스. 돈도 없고, 딱히 살 게 없어도 마찬가지다. 그냥 가서 구경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다. 더운 여름, 추운 겨울, 아이들과 함께라면 더욱이 그렇다. 웬만한 규모의 도시엔 보통 여러 군데 쇼핑몰이 존재한다. 우리 부부는 항상 ‘ZARA’ 브랜드의 유무로 큰 쇼핑몰의 기준을 삼는다. 검색해보니 Centro Comercial Larios Centro라는 이름의 쇼핑몰이 적당해 보인다.

오늘도 날씨가 너무 좋다. 파란 하늘은 물론이고, 어제보다 기온도 더 높은 듯하다. 도시를 떠나는 날엔 알게 모르게 기분이 다운되기 마련인데, 좋은 날씨 덕분에 기분이 썩 괜찮다. 집 인근 커피 전문점 mia에서 커피를 한잔 사 들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까진 그리 멀지는 않았다. 걸어가면 20분 남짓. 버스를 타려고 해도 해안 근처까지 어차피 가야 하기에, 우리는 걸어가기로 결정을 내린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도 소도시 여행의 매력 중 하나 아니겠는가!


이틀 연속 들른 커피 전문점 / 너무도 화창한 날씨의 말라가 시내 (2020.1. 스페인 말라가)


기분 좋은 산책을 마치고 쇼핑몰에 도착했다. 오늘은 말라가 방문 기념으로 아이들 장난감을 사주기로 했다. 장난감 용품점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 세현이는 다소 실망한 눈치. 그래도 여행에 와 한껏 관심이 생긴 비행기 모형 장난감을 골랐다. 온이 녀석은 아직 장난감에 크게 관심이 없어 어찌나 다행인지. 아내와 항상 온이가 물욕이 없어 신기하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다고 아무런 욕구가 없냐고 하기엔, 식욕은 아주 아주 왕성하다. 큰 녀석과 반대로. 두 형제가 어찌 이리 다른지.

아이들 시간을 마치고선, 부모를 위해 자라 매장으로 향한다. 매장 밖 겨울 세일을 한다는 커다란 안내문을 보고 신나서 입장하지만, 언제나 우리가 살만한 옷은 너무 한정적이다. 더 멋진 옷을 입어보고 살 수 없는 나의 체형(키가 작아도 너무 작다)의 한계 때문에, 그리고 아내는 자라 옷 디자인이 영 취향과 잘 안 맞는 거 같아 보인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니트가 하나 있어 구입하고선, 다시 길을 나선다. 나오는 길 쇼핑몰에 아이들이 간단히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있다. 사실, 이런 류의 놀이기구를 타기엔 아이들이 조금 크긴 하지만. 그래도 타고 싶다면 오케이. 즐거워한다면 그저 감사하다.

                                                 

이젠 조금 유치해도 즐겁기만 한 놀이기구 타기 (2020.1. 스페인 말라가)


쇼핑마치고, 우리는 곧장 점심 식사를 위해 해변으로 향했다. 쇼핑몰에서 단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불편함 없이 이동할 수가 있다.

오늘 점심 메뉴는 파에야. 스페인에 왔는데 파에야를 안 먹고 그냥 돌아갈 순 없다. 요즘 꼭 그 지역을 가야 현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호들갑이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음식이 여행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음식물을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서, 음식 속에서 나와 우리의 좋은 추억을 곱씹는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지역은 특정한 음식으로 기억될 때도 있고, 어떤 음식 때문에 그곳을 다시 찾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듯이 말이다. 수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먹물 파에야도 그리웠고, 고기와 해산물을 같이 넣은 일명 ‘갈비 파에야’(우리 부부가 붙인 이름)도 그리웠다. 바르셀로나 파에야에 대한 추억은, 결혼 후 나와 아내 둘이서만 온전히 시간을 보냈던 시간의 이야기이다. 요즘 세상에 6년 연애하며 해외여행 한 번 못해보고 결혼을 한지라, 둘이서만 해외여행을 했던 그 시절에 대한 독특하고 소중한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실 지금의 이 여행도 그 감정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복잡한 심경쳐두고라도, 이제 배가 고파온다. 누가 뭐래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거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오늘은 미리 식당을 정했다. 해변 인근에 있는 Restaurante de Sancha라는 식당.  그렇듯 적당한 가격대와 적당한 평점의 식당을 찾는 일이 핵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리뷰를 남기고 평점이 좋은 곳은 적어도 실패는  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

식당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 1시가 된다. 신기하게도 부지런을 떨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낀다. 그러다 보면 점점 쫓기고, 마음의 여유는 사라지게 되겠지. 우선 주문부터 한다. 계획했던 대로 해산물 파에야와 오징어 튀김, 주스 등을 주문한다. 요리 특성상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만큼 배고팠던 우리 가족은 순식간에 음식을 처리했다. 기대했던 대로 만족스러운 식사였고, 솔직히 말하면 파에야보단 오징어 튀김과 오렌지 주스가 아주 좋았다.

이제 오후 일정을 시작할 차례. 식사를 마무리할 시점,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이게 참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다. 식당에서 블랙베리, 그린애플, 레몬 향이 나는 schnapps(독하고 향을 내는 술의 일종)을 후식으로 준비해 주었는데, 우리는 그것이 술인지 몰랐었다. (슈납스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나중에 검색해보고서야 알았다.) 덕분에 과일 그림이 그려진 음료가 나오자 세현이가 자기도 먹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별 의심 없이 아이에게 세 가지 맛 음료(?)를 조금씩 나누어 준다. 블랙베리와 그린애플까지는 괜찮았다. 아마도 알코올이 적게 들어갔나 보다. 그런데 레몬을 먹는 순간 우리는 화들짝 놀라 세현이로부터 컵을 빼앗았다. 세현이도 조금 맛을 보고선 이게 뭐냐며, 되려 부모에게 핀잔을 준다. 그렇게 여행을 다니면서도, 이 음료의 정체를 몰라 아이에게 술을 주다니. 부끄럽고 미안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아내와 이 상황이 웃겨 한참을 웃다가, 씁쓸한 입안을 오렌지 주스로 헹구고 다시 길을 나섰다.


우리의 점심 메뉴 해산물 파에야와 세현이의 인생 처음 술 (2020.1. 스페인 말라가)


말라가에 와본 이들은 공감하겠지만, 말라가 남쪽에 넓게 펼쳐진 해변을 보면 그냥 걷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냥 걷기만 해도 좋은 길이다. 누군가 말라가를 여행한다면, 2시 정도 이곳을 산책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도 소화시킬 겸, 아이들도 재울 겸 이 길을 걷기로 했다. 지금이 한겨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온화한 날씨. 도로는 무척 한산하다. 

말라가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하다,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조금 욕심을 부려 높은 지대에 있는 히브랄파로 성(Castillo de Gibralfaro)에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검색을 해보니 성에 올라갔다가 도보로 알카사바를 거쳐 시내로 돌아오는 루트가 있다. 유모차를 끌고 과연 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 가보지 않았으니 낼 수 있는 용기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자는 사이 마트에 들러 음료와 물을 사서, 버스를 타고 일단 성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올라가는 길부터 심상치가 않다. 예상보다 더 높았고, 한껏 고부라진 길은 나와 아내에게 걱정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내와 대화를 시도한다. 이대로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갈지, 아니면 우리가 원래 계획한 대로 걸어서 내려갈지. 대체로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우리 부부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다소 무모한 판단을 하곤 한다. 여느 때와 같이, 우린 계획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판단의 근거는 아이들이 아직 자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말라가 해안의 한적한 도로에서 산책 (2020.1. 스페인 말라가)


잠시 성 주변을 구경한 후, 구글 지도의 도움을 받으며 한걸음 한걸음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도상 내려가는 길은 대략 1킬로미터, 15분 소요 예정이다. 사실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이다. 실제로도 그리 오래 걸릴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유모차. 유모차를 끌고 내려가기엔, 경사가 생각보다 가파르다. 자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 몸무게가 고스란히 유모차에 실려 있고,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에 처할까 내리막을 걷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제 막 신생아를 유모차에 태우고 처음 집 밖에 나온 부모처럼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었다. 

중간 지점, 세현이가 잠에서 드디어 깼다. 아이가 잠에서 깨는 게 이렇게 반가울 때가 있었던가. 당장 세현이에게 유모차에서 내려 걸어 주시겠느냐고 호소한다.  아직 잠에 취해 있는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유모차에서 내렸다. 조금 걷다 보니 멋진 경치가 나온다. 높은 지대에서 보는 말라가 해안의 모습이 절경이다. 우리는 한술 더 떠 아직 잠에서 덜 깬 아이에게 사진을 찍자고 요구한다. 세현이가 걸어주니 한결 수월하다. 나는 유모차를 끌고, 아내는 세현이를 챙기며 걷다 보니 무사히 평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히브랄파로 성(Castillo de Gibralfaro) 방문과 내려오는 길에서 (2020.1. 스페인 말라가)


평지로 내려오니 시계는 어느덧 5시를 향해 가고 있다. 점심을 먹으며, 오늘 마지막 일정으로 아이들과 바닷가 놀이터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아이들이 잠시라도 놀기 위해선 해 지기 전에 가야 한다. 우리는 말라가 공원을 거쳐, 기념품 판매점에 들르기 위해 Muelle Uno 쇼핑몰로 향했다. 세현이가 말라가 자석 장식품을 사고 싶어 했다. 녀석이 아마도 어제 지나가며 봐 둔 게 있는지, 자기가 꼭 살게 있단다. 바닷가 쇼핑몰의 옷 가게도 들렀다가, 세현이가 좋아하는 초록색 말라가 자석 기념품을 구입한다. 

5시 온이도 드디어 잠에서 깬다. 우리는 바로 놀이터로 향했다. 유모차에서 내린 온이의 모습을 보니, 이마에 땀띠가 난 모양이다. 조금은 우스꽝스럽지만, 아내는 온이의 앞머리를 고무줄로 묶어 주었다. 아마 나랑 온이만 있었다면 "조금만 참아"라고 이야기해주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을 텐데, 역시 엄마는 다르다. 아마 세현이라면 머리 묶는 게 싫다고 할 텐데, 온이 녀석은 확실히 이런 부분에 무디다. 굳이 따지자면 온이는 나를 더 닮은 편이긴 한데, 그래도 나는 그런 부분에선 참 예민했던 거 같다. 그래서 어떨 때엔 그런 무딘 면이 본받을만하다고 느낀다. 


말라가 공원과 근처 쇼핑몰에서의 쇼핑 시간 (2020.1. 스페인 말라가)


해 질 무렵 바닷가 놀이터는 지나칠 정도로 한산했다.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진 않지만, 놀이터에 너무 사람이 없어도 조금 이상한 느낌이다. 뭔가 옆에서도 재밌게 떠들고 그래야 나도 즐거운 법. 조용한 모래사장 위 놀이터에서 놀다 보니,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놀이터로 왔다. 서로의 낯선 모습에 선뜻 다가가진 못하지만, 함께 놀고 싶어 하는 눈치다. 젊은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아이들이 같이 놀아도 좋겠다고 생각해 인사를 건네본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영국에서 왔는데, 놀라운 건 나와 아내의 짧은 영어실력으로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뭔가 영어 듣기 평가를 하는듯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쉬운 영어였다. 

사실 우리 부부의 영어가 짧아도 너무 짧은 탓에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사실 그 친구가 대화 중에 말라가에 왜 왔는지 등등 깊은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추측건대 왠지 말라가 대학에 와서 언어 공부를 하는 학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듣기 좋은 영어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아마도 학생이고,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온 건 몇 시간 아이와 놀아주는 아르바이트 중인 거 같다고 아내와 결론(?)을 내렸다.

짧은 시간 만난 그녀를 떠올리며, 사람의 말하는 능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려운 용어를 섞어가며 남이 단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을 되뇌는 사람은 사기꾼이 아닌가 조심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듣는 이가 듣기 좋게(쉽게) 말하는 일. 그리고 읽는 이가 읽기 좋게 글을 쓰는 일.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그것이 얼마나 큰 능력인지 나이를 먹을수록 알아간다. 알아듣기 쉽게 말하는 방법까지는 무리라고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만큼은 조금만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하는데, 쓰면 쓸수록 어렵다. 쓰고 난 뒤 다시 읽어볼 때의 그 참혹함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다. 읽기 좋은 글쓰기 능력, 그것도 과연 타고나는 것일까?


말라가 해변 놀이터에서의 즐거운 놀이 시간 (2020.1. 스페인 말라가)
말라가 해변 놀이터에서의 즐거운 놀이 시간 (2020.1. 스페인 말라가)


6시 30분, 말라가에 어둠이 찾아왔다. 이제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의 말라가 일정은 거의 마무리된다. 원래 저녁은 집에 들어가 해 먹으려고 했는데, 시간이 조금 늦어져서 고민이다. 집 방향으로 걸어가는 중 와플을 파는 가게를 발견.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고민 끝에 일단 와플을 간단히 먹고, 숙소로 들어가 저녁을 먹기로 했다. 길거리에 걸터앉아 초코가 잔뜩 얹힌 와플을 한입씩 먹고선 다시 발걸음을 집으로 옮겨 갔다. 아내와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들어가는 길이었다. 집에 거의 다다를 무렵,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피자(케밥) 테이크아웃 전문점이 보인다. 저녁 차릴 에너지가 부족했던 터에 많은 현지인들로부터 인정받은 가게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다.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들여보내고, 나는 피자를 포장 주문했다. 메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하와이안 피자. 그리하여 무사히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조명이 켜진 말라가의 멋진 모습 / 길거리에서 먹는 와플의 맛 (2020.1. 스페인 말라가)


집에 들어온 시간이 정확히 저녁 8시. 우리는 만사 제쳐두고 피자를 손에 쥐었다. 허기만 달래고 일찍 잘 요량으로 한판만 포장을 해왔는데, 이게 웬걸 적은 양이 너무 아쉬운 훌륭한 피자였다. 아이들도 생각보다 너무 잘 먹는다. 나와 아내는 한 조각씩 맛만 볼 수 있었다. 나가서 한판 더 사 올까 고민도 해봤지만, 나도 아내도 그럴 힘은 없었다. 식사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의 짧은 저녁시간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위해 욕조에 물을 받아주었다. 그렇게 바다를 보고도 물에 들어갈 수가 없었는데, 작은 욕조이지만 아이들은 한껏 신이 났다. 잠깐의 물놀이를 마치고, 아이들을 씻기고 잠자리에 눕혔다.

말라가의 멋진 밤도 이렇게 마지막. 도시 매력에 반할수록 마지막 밤은 언제나 아쉽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정말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도시. 이곳의 시간이 끝나가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내일 비행을 위해 부모도 눈을 감는다. 


늦은 시간, 잠 자기 전 맛있는 피자는 진리 (2020.1. 스페인 말라가)
말라가 숙소 욕조에서의 물놀이 시간 (2020.1. 스페인 말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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