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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Oct 30. 2022

Day 8. 말라가 포르투

200111 Malaga Porto

도시를 이동하는 날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다. 포르투로 향하는 비행기는 오후 3시 30분이지만, 집 정리를 하고 점심을 먹고선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한다.

8시가 조금 안된 시각,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준비한다. 점심으로 인근 카페의 브런치를 먹기로 했기에 아침은 밥으로 준비. 메뉴는 어제 점심에 먹고 싸온 오징어 요리와 달걀, 그리고 한국에서부터 넘어온 짜장과 김이 전부. 다소 부족해 보이지만, 스페인산 오렌지 주스(물론 한국에도 있다.)까지 곁들인 식사는 꽤 훌륭하다. 

식사 이후 아이들은 그들만의 놀이 시간. 나와 아내는 짐 정리와 청소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 우리 편의 때문에 침대 매트리스까지 이동을 해 놓은 터라 정리할 게 적지 않다. 설거지와 빨래 정리, 청소, 짐 정리까지 마치고 나니 11시가 되어간다. 체크아웃 시간은 12시. 생각보다 지체되긴 했지만, 점심식사 후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가면 딱 알맞은 시간이다. 


우리의 말라가 마지막 아침 식사 메뉴 (2020.1. 스페인 말라가)


우리가 찾은 카페는 Café Tramezzino(2022년 현재 폐업)라는 곳이었다. 집에서 세 블록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었는데, 아담하고 따뜻한 느낌의 카페이다. 가게 안에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자리에 앉아마자 폭풍 주문을 시작한다. 아침식사 양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분위기에 취한 건지. 우리는 분명 간단하게 먹기 위해 카페에 왔는데, 시키다 보니 욕심이 생긴다. 이것저것 시키고 나니 테이블 한가득 쟁반이 놓여 있다. 빵과 커피 과일, 시리얼을 실컷 먹고서도 남을 양이었다. 

 물론 오늘은 아침이 아닌 점심이긴 하지만, 호텔 한 명 조식 비용으로, 이렇게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사실 호텔 조식을 먹어도 찾는 메뉴는 늘 비슷하지 않은가. 물론 호텔 조식이 주는 편의성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더 저렴하고, 더 맛있는 식사(정말 고급 호텔의 조식은 먹어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를 할 수 있다면야 조금 수고해도 괜찮겠다 싶다. 더군다나 아이들이 커 가면서 조식 비용을 따로 내야 하는 경우 부담이 더욱이 커진다. 웬만한 유럽 호텔에서 네 명 조식을 먹으려면 하루 숙박비용보다도 커진다. 아마도 앞으로 우리 가족은 호텔 조식보다는 이렇게 가까운 카페를 찾는 일이 잦아지지 않을까? 


Café Tramezzino에서의 멋진 브런치 식사 (2020.1. 스페인 말라가)
말라가에서 우리의 보금자리가 되어 준 숙소의 전경 (2020.1. 스페인 말라가)


훌륭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정말 말라가의 모든 일정 마무리. 

정확히 12시, 셀프 체크아웃을 완료했다. 그리고 호출한 택시가 바로 집 앞에 도착. 아이들 핑계로 타기 시작했지만, 이것도 점점 습관이 되어간다. 이 지역 택시비용이 많이 비싸지 않아 다행이고, 무엇보다 말라가 공항이 많이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정말 다행이다. 말라가로 들어오는 길엔 해가 진 이후였는데, 오후 시간에 공항으로 가는 길은 또 느낌이 전혀 다르다. 택시 기사의 능숙한 운전 솜씨 덕분에 공항까지 금세 도착. 공항으로 들어가는 순간 말라가의 아름다운 풍경도 진짜 안녕이다. 

빠르게 수속을 마치고, 바로 탑승구역으로 들어갔다. 비행기에 타기 전 아이들을 재웠으면 싶었다. 말라가에서 포르투까진 비행기로 1시간 20분 정도 소요 예정. 그래도 공항에서 시간 여유가 있어 미리 자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 녀석들이 자라 자라 해도 잘 생각이 없다. 유모차에 누워서도 인형과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바쁘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공항 내부에 햇볕이 너무 잘 들어 잘 분위기가 아니긴 하다. 눈가리개를 들고 다녀야 하나? 결국 버티고 버티다 비행기에 탈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눈을 감는다. 아, 이럴 거면 비행기에 타서 자면 좋을 텐데, 아이들을 비행기 자리까지 안고 가야 한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조금 과장하면 단 한 가지도 내 맘처럼 되는 일이 없다고 느낀다.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선 내 계획도, 내 목표도, 내 감정까지도 언제든 거부되고, 부정당할 수 있는 것들임을 배운다. 30여 년 전 내가 자식이고 어렸을 땐 부모님이 내 마음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님은 거의 대부분 자식에게 맞춰 주셨다. 상대방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건 부모님이 아니라 나였다. 지금 "부모님의 감정이 어떠실까?"라고 고민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었나. 아이들이 어쩌면 나에게 이럴까 싶다가도, 나를 키워준 부모님도 똑같은 과정을 겪으셨을 거라 생각하면, 내가 아이들에게 뭐라 할 처지가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적어도 내 부모님이 나에게 해준만큼, 내가 내 자식들에게 해 주는 것도 참 쉽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참 어렵고, 불편하다.

 

낮잠은 안자고 놀기 바쁜 두 형제 녀석 (2020.1. 스페인 말라가)
말라가 공항에서의 마지막 시간 / 말라가 공항 화장실 창문의 아름다운 장식 (2020.1. 스페인 말라가)


탑승구 앞에서 유모차를 맡기고, 아이와 짐을 챙겨 힘겹게 비행기에 올라탄다. 땀이 나고, 숨이 가파오지만 그래도 잠든 아이들 덕분에 편하게 기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오히려 짧은 비행시간이 아쉽다. 착륙하기 전 세현이는 잠에서 깼고, 온이는 어쩔 수 없이 깨운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포르투에 도착했다. 세현이는 활주로에 놓은 여러 항공사의 다양한 기종을 구경하며 금방 잠이 깬 눈치다. 

항공기 뒤편에 연결된 임시 계단으로 내려와 부모도 아이들도 처음 포르투갈 땅을 밟는다. 날씨는 말라가보다는 추운 듯 느껴졌지만, 청명한 하늘을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춥다기 보단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 참 와보고 싶었다. 예전에 아는 분 통해 세현이가 아주 잠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다. 그때 피아노를 알려준 선생님이 유럽에서 유학을 하고 온 청년이었는데, 유학 시절 가장 좋았던 곳이 포르투갈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서 유럽 여행 중 포르투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 그리고 TV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나온 모습도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여기에 와 볼 생각을 미처 못했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어쩌면 대륙이 여기서 끝난다는 느낌 때문일까. 대륙의 끝이란 이미지가 나의 무의식 속에서, 뭔가 인생의 마지막에 가야 하는 곳이라는 느낌을 심어주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니 학교에서 세계사 수업을 하면서도 이 지역 이야기를 할 때도 미지의 땅을 다루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긴 했다. 소위 대항해시대, 이곳 포르투갈에서 동양이라는 미지의 땅을 발견하기 위해 그 먼 항해를 떠났던 많은 이들이 있지 않았던가. 그들에게 내가 사는 동양이 막연한 미지의 세계였을 것처럼, 나에게 포르투갈이 그동안 그래 왔던 거 같은 느낌이다. 그 막연한 느낌 속에서 여행을 미루고 미루다, 오늘 여기에 드디어 왔다. 


드디어 도착한 포르투갈 땅 / 포르투 공항의 한적한 모습 (2020.1. 포르투갈 포르투)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구글맵을 켰다. 처음엔 그냥 택시를 타려다가, 시내까지 가는 철도가 있길래 한 번 타보기로 했다. 택시가 아무리 습관이 됐더라도, 아낄 수 있을 땐 또 아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우리 부부의 습성에 더 잘 맞는다. 편한 것도 좋지만, 아끼는 데 성공해야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마침 세현이도 매트로를 타보고 싶은 눈치다. 찾아보니 매트로는 시내의 Trindade역까지 연결된다. 그럼 그곳에서 택시를 타면 숙소까진 아주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택시를 타도 부담이 없을 거 같다. 오후 5시 무렵 목적지인 Trindade역에 도착했다. 1시간 느린 시차 때문인지 해는 이미 지고 있고, 역이 비탈에 위치해 있어 나오자마자 덜컥 겁부터 났다. 도로에 차도 많았고, 경사진 도로에서 유모차와 짐 끌기 쉽지가 않다. 숙소 방향으로 가기 위해 길 건너편으로 택시를 호출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택시가 호출에 응해주었고, 10분 정도 걸려 집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좀 더 편안한 감정을 주었던 말라가와는 달리, 포르투의 첫인상은 다소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느낌이긴 하다. 나도 아내도 포르투갈엔 아예 처음이라 그런 걸까. 첫인상이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뭔가 낯선 만남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존재한다고 느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숙소 호스트가 지나칠 정도로 친절했다. 포르투 성당(Porto Cathedral) 인근에 있는 아파트인데,  호스트가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사실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로 한참을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었는데, 고개는 끄덕였지만 무슨 말인지 거의 못 알아들었다. 그래도 그 친절함 덕분에 앞선 두려움이 조금은 가라앉은 느낌이다.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위해 집을 나섰다. 마침 숙소 바로 옆에 Casa Balsas라는 식당이 있다. 문 밖에 서서 안을 보니 현지인들이 꽤 자리에 앉아 있었고, 우린 별다른 고민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여행객들은 아마 거의 안 오겠다 싶은 허름한 외관의 식당이긴 하다. 주문한 메뉴는 달걀 프라이를 곁들인 소시지, 감자튀김과 스테이크. 고급스러운 느낌은 아니지만 가격 대비 맛이 정말 괜찮았다. 내일도 마땅히 먹을 곳이 없다면 방문해서 먹고 싶을 정도로. 이렇게 저렴하고 맛있는 로컬 식당을 찾아가는 과정도 분명 여행의 소소한 기쁨 중 하나이다. 

식사를 마치고 주변 산책을 할까 잠시 고민을 하는데, 문득 이곳 시간이 스페인보다 한 시간 느리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사실 1시간 시차가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아이들의 잠 시간에 예민한 부모 입장에선 꽤 크게 다가온다. 일단 오늘은 들어가 쉬고, 내일 밤까지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을 내렸다. 

집에 들어와 아이들을 씻기는데, 침실도 욕실도 조금 춥다. 말라가 집도 처음엔 조금 춥다고 느꼈는데, 이곳과 비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어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최대한 빨리 씻고 옷을 껴 입는 수밖에 없다. 어느새 돌고 돌아 포르투갈까지 왔버렸다. 그리고 우리 여행은 벌써 중반을 지나가고 있다. 남은 여행 시간, 좀 더 의미 있는 시간들로 꽉 채워지길 기도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포르투 공항철도(?)의 내부 모습 / 포르투 집 앞의 로컬 맛집 (2020.1. 포르투갈 포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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